기사상세페이지

[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산책과 함께 하는 홍콩의 가을

기사입력 2023.11.15 11:15

SNS 공유하기

fa tw gp
  • ba
  • ka ks url

    산책과 함께 하는 홍콩의 가을1.jpg

     

    홍콩 생활의 특권 – 바닷가 산책!

     

    오늘은 나의 취미 활동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바로 산책이다. 

     

    요즘 홍콩은 산책하기 좋은 시기이다. 기온은 한여름 대비 5도 정도 떨어졌을 뿐인데, 습도도 낮아져 선선함을 느끼게 한다. 

     

    특히 아침과 저녁이면 집에만 있기 아까울 정도로 바깥의 날씨는 쾌적하다.

     

    한여름에도 종종 나가는 산책이 이런 이유로 요즘 더욱 즐거워졌다. 원래 나는 달리기를 좋아했다. 

     

    하나 몸이 무거울 때면 산책으로 전환한다. 요즘 나이 탓인지, 산책에 맛을 들여서인지 달리기보다 걷는 빈도가 잦아졌다.


    홍콩은 주변이 바다로 둘러싸인 도시이다. 조금만 외곽으로 발걸음을 돌리면 바다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해변 공원도 곳곳에 조성되어 있다. 

     

    우리 교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들도 보통 바닷가와 인접해 있다. 타이쿠싱, 사이완호, 홍함, 서구룡, 퉁청, 정관오 등이 대표적이다. 


    바닷가에서의 달리기나 산책은 홍콩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홍콩은 집값이 비싸기로 유명하다. 

     

    나는 집값에 해변 공원 이용료가 포함되어 있다 말하곤 한다. 그러니 본전 뽑으려면 주변 환경도 최대한 누려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은 타이쿠싱인데, 쿼리베이–타이쿠싱-사이완호-샤우케이완까지 연결되는 해안 공원이 매력적이다. 

     

    시원한 가을 바람, 바다를 잔잔히 비추는 달빛, 넓게 펼쳐진 바다, 수목으로 아름답게 조성된 공원은 밤마다 내 발걸음을 이끈다.


     

    산책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산책과 함께 하는 홍콩의 가을.jpg

     

     

    나의 산책 코스는 노스 포인트가 맞닿아 있는 쿼리베이부터 시작하여 가형만 아파트 뒤 샤우케이완까지의 해안가이다. 

     

    왕복 총 소요 시간 100분 정도이며 거리로는 약 10km, 걸음 수로는 만 보를 찍는다.  

     

    100분 동안 걷기만 하면 지루할 수 있다. 산책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물론 아무 생각없이 자연 그대로를 느끼며 머리를 식히는 것도 좋다. 

     

    이것이 산책의 고유 기능일 수도 있다. 하나 나의 산보는 지식 쌓기와 명상, 그리고 사색으로 이루어진다.


    문밖을 나서는 순간 우선 내가 좋아하는 유튜브 방송을 듣는다. 예전 같으면 라디오를 들었겠지만 요즘은 유튜브가 그 영역을 대신한다. 

     

    나는 지식을 전달해주는 유튜브 방송을 좋아한다. 최신 즐겨 듣는 방송은 영화 평론가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인데, 영화 및 인문 교양에 관한 얘기를 들려준다. 

     

    개인 소장 서적 2만 4천권에서 뿜어져 나오는 평론가의 방대한 지식은 간접 독서를 경험하게 한다. 

     

    직장인들 중에는 퇴근 후 집의 소파에서 유튜브를 즐기는 이들도 꽤 많은 것 같다. 

     

    사무실에서도 하루 종일 앉아 있었는데, 기왕이면 밖에 나와 걸으며 유튜브를 듣는다면 운동도 되니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이후 공원 중간 지점에 다다르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구간이 나온다. 왼쪽으로는 바다, 오른쪽으로 공원이 펼쳐져 있는 작은 오솔길이다. 

     

    여기서는 아무 생각없이 걸으며 명상에 잠긴다. 명상을 꼭 앉아서 해야 하는 법은 없다. 걸으며 주변 환경과 호흡하는 것 역시 명상의 한 방법이다.


    잠시 후, 가형만 뒷자락에 다다른다. 많은 어선과 요트가 정박해 있는 곳이다. 

     

    한번은 토요일 낮 시간에 수면 위 약 1미터까지 뛰어오르는 물고기를 목격한 적이 있다. 

     

    걷다 보면 가끔씩 예상치 못한 장면과 만나게 되는 것도 산책의 즐거움이다.


     

    칸트, 아리스토텔레스, 랭보, 베토벤의 공통점은?

     

    산책과 함께 하는 홍콩의 가을2.jpg


    샤우케이완을 찍고 돌아오는 구간은 사고의 시간으로 채워진다.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를 점검하며 미래를 계획한다. 

     

    거창하게 표현했지만 이런저런 잡념이 섞여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가끔씩 반짝하고 떠오르는 생각은 산책이 주는 선물과도 같다. 

     

    그럴때면 휴대전화를 꺼내 녹음 메모를 한다. 사무실에 앉아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있어도 생각나지 않는 것이, 걸으며 뇌를 자극하면 떠오를 때가 종종 있다.


    기독교에는 ‘에피파니’라는 말이 있는데, 우연한 깨달음이란 뜻이다. 

     

    갑자기 얻게 되는 영감이나 어떤 질문에 대한 답안 같은 것들이다. 이런 에피파니는 몸이 이완되었을 때, 일을 하고 있지 않을 때 나타난다고 한다. 

     

    목욕, 산책 등이 대표적이다. 심리학 이론에서는 이를 두고  ‘우리의 마음에 창의력이 흐를 수 있도록 유도하는 휴식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장점 때문인지 유명한 인물들 중에도 산책을 즐긴 사람들이 많다. 

     

    위대한 철학가 칸트는 매일 오후 5시면 어김없이 산책을 나갔다. 그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마을 사람들이 시계를 맞춰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 외에도 아리스토텔레스, 교육 철학자 장 자크 루소, 시인 아르튀르 랭보, 음악가 베토벤 등도 산책을 즐겼던 유명인들이다. 이들은 걸으며 영감을 떠올리고 생각을 정립했을 것이다.


    사실 산책을 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가족이나 부부가 함께 하는 산책도 좋다. 

     

    각자의 방에만 틀어박혀 있어 가족간 얼굴 보기가 힘든 현대인들에게 산책은 좋은 대화의 기회를 제공한다.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좀더 보폭을 빨리해서 걷는 산보를 권장한다. 

     

    재미있고 유익한 방송을 듣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감상하며 걷는 즐거움은 운동이 꼭 힘들어야 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한다.  


    이쯤되면 산책의 장점은 충분히 설명되었다. 바다를 끼고 걸을 수 있는 행운의 시간이 평생 얼마나 주어지겠는가? 

     

    홍콩 거주가 준 선물같은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지 말자. 오늘 밤은 TV를 끄고 밖으로 나가 보길 권한다.


    < 참고 자료 >

    https://www.sciencetimes.co.kr/news/왜-기가-막힌-아이디어는-샤워-중이나-산책-중에/

    걷기의 미학, 산책의 철학 https://www.dtnews24.com/news/articleView.html?idxno=350469


    이승권 원장.jpg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