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원숭이와 아름다운 저수지가 반기는 싱문 하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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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원숭이와 아름다운 저수지가 반기는 싱문 하이킹

평일의 한적함을 하이킹과 함께


평일이었지만 오늘 아침 내 발걸음이 향한 곳은 출근길 노스 포인트가 아니었다. 

이날 나는 스스로에게 휴가를 부여했다. 오전 9시 30분쯤,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집 밖을 나섰다. 

 

평일에 췬완선 지하철에서 여행자 배낭을 둘러 멘 나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오늘 나의 행선지는 싱문 저수지(Shing Mun Reservoir)였다.

 

전망대에서 본 모습.jpg

 

백천층 나무 공원.jpg

 

이곳에 가고 싶었던 이유는 며칠 전 우리 학원 원어민 영어 교사와 수강생 한 명이 다녀온 후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되면서부터다. 그리고 이내 호기심이 생겼다.


오늘은 날씨도 도와 주려는지 어느 때보다 화창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나에게 주어진 특별한 하루를 온전히 즐기고 싶어졌다.         


등산객을 마중나온 원숭이들

 

[크기변환]마중나온 원숭이.jpg


종점인 췬완역에 내려 B1 출구로 나간다. 82번 미니버스를 타려고 시우워가(Shiu Wo Street)를 찾았다. 

길이 좀 복잡했지만 친절한 경찰의 도움으로 출발지에서 대기중인 82번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운 좋게 두 자리가 남아 있었는데, 버스는 좌석을 다 채운 후 출발했다. 배차 간격은 8~25분이라고 한다.

출발한 지 약 10분 후, 차는 시내를 벗어나 산길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착역인 싱문 저수지에는 그로부터 다시 5분 정도 지나 도착하였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등산객을 마중나온 이들이 있었다. 

 

바로 원숭이들이다. 약 3~4마리가 마음 좋은 승객을 만나 먹을 것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저수지를 중앙에 두고 왼쪽과 오른쪽으로 두 갈래 길이 나 있다. 

어느쪽으로 가든 상관없다. 저수지 주위를 걷는 코스기에 어디서 출발하든 제자리로 돌아온다.  


눈부시게 푸른 저수지, 그리고 이를 감싼 숲의 조화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사실 길이 평탄하여 산행이라고 부르기가 뭐하다. 많은 길들이 포장도로였다. 

 

홍콩은 심하다 싶을 정도의 안전제일주의, 한국은 무관심하다 싶을 정도의 안전불감주의라는 상반된 특징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했다.  


이곳에서의 여정은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3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했는데 실제로 걸린 시간도 그 정도였다. 

등산 초보자나 산행이 쉽지 않은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 있는 가정의 하이킹으로는 제격이다. 

 

중간에 약 두 번 정도 가파른 길이 나오기는 한다. 하나 다른 곳에 비한다면 애교로 봐 줘야 할 것 같다.


하이킹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백천층 나무(Paperbark Tree)가 울창한 작은 공원에 다다른다. 

워터사이드 페이퍼박스(Waterside Paperbarks)라 이름 붙여진 곳으로 싱문 저수지의 명물이다. 

 

강수량이 많은 시기가 되면 나무의 아래 부분이 저수지에 살짝 잠기는데, 운치있는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백천층과 저수지가 조화를 이룬 풍경을 배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곳을 나와 다시 하이킹 길에 오른다.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넓게 펼쳐진 저수지는 푸르고 화사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를 굽어보며 길게 연결된 산길은 싱문 하이킹 코스의 매력이다.

 

걷다 보면 살짝 높은 곳으로 이어져 있는 길이 보인다. 올라가 보니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멀리 은빛으로 반짝이는 췬완 앞바다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중간 중간 잠시 지루해질 때면 원숭이 가족들이 등장한다. 

홍콩같은 대도시에 원숭이들도 같이 살고 있다니. 생각해 보면 신기한 느낌도 든다. 

그런데 얘네들은 추운 겨울에 뭘 먹고 사는 거야. 살짝 걱정도 해 본다.


또 하나의 명물, 길게 뻗은 파인애플 댐

 

파인애플 댐 2.jpg

 

어느덧 저수지 주위를 한 번 돌아 댐이 위치한 지점으로 향한다. 파인애플 댐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댐의 공식 이름은 조지 댐이다. 

파인애플 댐이라 부르게 된 사연은 예전 이 주변에서 파인애플이 많이 열렸기 때문이라 한다.


댐을 가로질러 가 본다. 저수지를 가운데로 양쪽의 전망은 극과 극이다. 오른쪽으로는 넓고 푸른 저수지가, 왼쪽에는 저 아래로 깊고 울창한 숲이 내려다 보인다.


댐 마지막 부분에 다다르니 영문으로 새겨져 있는 큰 글씨들이 눈에 띈다. 

2009년, 홍콩 법정 고적으로 지정된 싱문 저수지 기념비다. 

 

기념비의 내용에 따르면 이 저수지는 1933년 건설되어 1937년 완성되었고 저장 용량은 3천만 갤론이라고 한다. 

또한 댐의 높이는 280피트라고 소개되어 있다.


댐 주변으로는 많은 바베큐 장소들이 마련되어 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4명이 K팝 그룹 뉴진스의 음악을 틀어 놓고 불판 위에 음식들을 올려 놓은 채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덧 코스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원숭이들이 도로 양 옆으로 잔뜩 진을 치고 있었다. 

아, 싱문 저수지에서는 환영 인사와 작별 인사를 원숭이들이 나와 하는구나. 생각보다 눈에 안 띈다 했더니 여기 모두 나와 있는 거 같았다.

 

약 세 시간 후 나는 출발지에 다시 섰다. 그렇게 힘들지도, 너무 짧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의 코스였다. 

 

홍콩에 살면서 이곳을 안 둘러보고 떠난다면 아쉬웠을 거 같다. 

나의 스마트폰을 채운 사진들은 홍콩 생활 중 새로운 추억거리를 장식해 주었다.

 

이승권 원장.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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