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인터뷰]일본 시골요리 ‘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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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인터뷰]일본 시골요리 ‘키치’

[[1]] ‘吉’이라고 쓰고 ‘키치’라고 읽는 일본 시골요리점 사장 야마구치씨를 만난 것은 지난 5월 중순이었다. “우리는 후쿠오카 전통 음식을 선보여요. 한국 사람 입맛에 딱이죠.” 낯익은 지명이긴 했지만 후쿠오카가 일본 어디 붙어있는지 기자는 잘 몰랐다. 그러나 그녀는 ‘당연히 알겠지’ 하는 표정으로 몇 개의 음식사진을 내밀었다. 후쿠오카가 요리로 유명한 도시인가? 일본의 옛 수도였던 교토 요리가 유명하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후쿠오카 요리라고 한들 딱히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예의상 아는 척은 해야 할 듯 싶어 일본 소설에서 그 쪽 요리가 맛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고 변죽을 맞췄는데, 대뜸 “그건 관동의 이즈 반도고!” 하고 날 선 목소리의 타박이 돌아왔다. 후쿠오카가 어디 있는 건지 모르면 아무래도 망신을 당할 분위기인 터라 ‘거기가 거기 아니냐’고 되묻길 여러번, “그건 오사카고!” “그건 훗카이도고!”하는 타박이 수없이 돌아왔다. “어떻게 한국 사람이 후쿠오카를 모를 수 있어요? 부산에서 배타고 금방인데?”하길래 “아! 대마도?”하고 반문했더니 그녀의 눈꺼풀이 반쯤 내려와 멈춰섰다. 샐쭉해지는 표정이 90년대 빅 히트한 일본 드라마 ‘롱 바케이션’의 야마구치 토모코(山口智子)의 그것과 닮아있었다. 야마구치 사장은 말없이 종이와 볼펜을 꺼내들어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후쿠오카는 큐슈(九州)에 있었다. ‘아! 큐슈!’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의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그래요. 후쿠오카 요리죠. 이게 뭔지 알지요? 소 곱창이에요. 한국 사람들 잘 먹잖아요? 나베(전골)로 해서 먹으면 더 맛있죠. 우리는 와규(和牛)를 일본에서 공수해서 만들어요.” 10여 년전 도쿄에 거(居)할 때 한 일본인 친구의 권유로 비슷한 요리를 먹은 적이 있었다. 우리 식으로 하면 내장탕이라고 불러야할 요리였는데, 식성좋은 기자는 맛있게 먹었지만 다른 한국인 친구 하나는 몇 점 먹는 척만 하다 결국 수저를 놓았다. 그 생각이 언뜻 떠올라 ‘한국 사람들은 곱창을 주로 구워먹는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10여년 전 한 한국인 친구는 이걸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야마구치 사장은 대뜸 “도쿄? 어디 도쿄에서 먹은 걸…. 이건 달라요! 이건 후쿠오카 요리라고요!”하고 말했다. 아무래도 솔직히 묻는 게 좋을 듯 싶어 ‘후쿠시마가 요리로 유명한 곳이냐’고 물었더니, 결국 야마구치 사장의 분노가 터지고 말았다. “후쿠시마가 아니고 후쿠오카!” “그러니까 후쿠…. 아무튼 거기가 요리로 유명한…?”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눈꺼풀을 반쯤 내려 깔은 채 홍콩의 여름 기온을 떨어뜨리기 위해 노력하던 야마구치 사장은 “이번 주 토요일 오후 5시!”하고 말했다. “일단 먹어보고 이야기해요.” 일본 만화책에서나 봤음직한 요리 도전을 받게 된 것은 그러니까 순전히 기자가 무식한 덕분이었다. 그리고 토요일 오후 5시, 필자는 야마구치 사장과 다시 만났다. 그녀는 후쿠오카 요리를 잔뜩 테이블에 펼쳐놓고 필자 앞에 앉았다. “이건 연근 튀김이에요. 우리 집에 오는 한국 손님들이 자주 찾는 메뉴죠. 그리고 바로 이게 전에 이야기했던 소 곱창 나베고….” 튀김가루를 묻혀 튀겨낸 연근 튀김은 바삭바삭한 맛이 살아있어 씹는 맛이 일품이었다. 그리고 간장에 조린 감자와 소고기,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다른 조림 등의 맛도 모두 훌륭했다. 일본 요리 특유의 개운한 맛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생김새나 맛의 전반적인 느낌은 다소 색달랐다. 그다지 격식을 따르지 않고, 이런 저런 맛을 함께 버무려놓은 것이 ‘이래서 시골요리구나!’하는 느낌이었다. “92년 싱가포르에서 사업을 하다가 95년 홍콩에 왔지요. 그때는 일본이 그리워서 견딜 수 없을 정도였어요. 그때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달래준 게 세 개 있었어요. 스시, 한국의 백숙, 그리고…. 나는 백숙을 좋아해요. 고향에 있을 때부터 한국 백숙을 좋아해서 자주 먹었거든요(참고로 후쿠오카에는 재일교포가 많이 산다고 한다).” 타향 살이의 외로움을 달래준 세 가지 중 스시와 백숙 외 마지막 하나가 무엇인지 그녀는 말하지 않았다. 단지 그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어때요? 우리 후쿠오카의 맛이?”하고. 그 세 번째가 무엇인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어머니의 손맛, 고향의 맛…. 일본인인건, 한국인이건 이국땅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리워하는 것이 있는 법이니까. 질문에 기자는 솔직하게 답했다. “맛도, 레스토랑의 분위기도 모두 훌륭하다”고, “연근 튀김이 제일 맛있었고, 이것도, 저것도 너무 좋았다”고. 그녀는 살짝 턱을 치켜들더니 흐믓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우리 후쿠오카의 소곱창 나베는 어땠어요?”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고 기자는 운을 뗐다. 야마구치 사장은 번역극 배우처럼 어깨를 으쓱거리며 “물론~~”하고 여유를 부렸다. 그러나 그녀의 눈엔 긴장이 가득했다. “맛있다. 곱창 육질이 부드럽고, 일본 미소로 우려낸 국물 맛 또한 너무 좋다. 그러나 역시 곱창은 한국식으로 구워먹는 게 제일 맛있다.” 그녀의 눈꺼풀이 다시 반쯤 내려왔다. P.S ‘키치’는 일본 시골요리를 표방하는 이자까야로 침사추이 Cameron Road, Tern Plaza 6층에 있다(Tel (852) 2368-0000). 세련된 일본식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곳으로 요리들이 전반적으로 매우 훌륭하다. 일식이면서도 여느 일식과는 전혀 다른 진짜 일본 시골의 맛을 느껴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야마구치 사장처럼 유쾌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키치만의 매력. 단, 키치를 찾기 전 반드시 후쿠오카가 어디 있는 곳인지, 지도는 반드시 찾아보고 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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