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홍콩 제조업의 역사 깊은 브랜드는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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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홍콩 제조업의 역사 깊은 브랜드는 무엇?

오늘은 홍콩 제조업 역사에 이정표를 새긴 브랜드를 소개한다. 제조업 기반의 홍콩 산업이 서비스업으로 전환하며 물건을 만들어 파는 ‘메이드인 홍콩’의 수 또한 대폭 감소하였다. 하나 여전히 명맥을 유지해 오며 오랫동안 홍콩인들의 사랑을 받는 제조업체들 또한 없지 않다. 바로 다음과 같은 브랜드들이다.


복고풍의 유행으로 다시 사랑받는 ‘카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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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인들에게 낙타가 그려져 있는 물병이나 보온병은 추억의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예전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가면 종종 눈에 띄었던 카멜(CAMEL) 브랜드이다. 카멜은 낙타라는 뜻이다. 1940년에 창립되어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녔다. 문득 한국의 100년 기업에 대한 궁금증이 일어 찾아보았다. 

 

제조업의 경우 (주)두산, 하이트진로, 삼양사, 동화약품 등이 이름을 올려놓았다. 술 마시고 다음 날 라면을 먹으며 술 깨는 약으로 해장하는 것이 우리 한국인들의 오랜 정서이자 생활 습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멜 보온병은 진공 상태의 내부를 유리가 감싸는 특징을 지녔다. 홍콩뿐만 아니라 동남아, 유럽, 미주 대륙에도 수출을 하여 해외에서의 지명도 또한 높다. 이 회사의 대표적 제품은 ‘147 물병’이다.’ 1’은 1리터, ‘47’은 제품이 처음으로 세상에 얼굴을 내민 연도이다. 최근 복고풍의 유행을 타고 147 물병이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시대적 변화와 함께 디자인도 현대적 감각으로 탈바꿈하였다.

 

 

플라스틱 제품의 대명사 ‘홍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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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출시된 홍(紅)A는 성광실업유한회사 산하의 브랜드이다. 구룡의 산포쿵(San Po Kung)에 사옥이 있다. 이 상표가 붙여진 주요 제품들은 플라스틱 가공품이다.

 

지금은 금융업과 뮬류, 서비스업이 대표 산업으로 자리 잡은 홍콩이지만, 20세기 중반에는 제조업이 경제를 떠받쳤다. 특히 1950년대와 60년대의 빠른 산업화에 있어 경공업은 큰 역할을 하였다. 면직과 플라스틱으로 생산하는 의류, 완구, 생활용품 등이 내수 및 수출을 활성화시켰다. 이 중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플라스틱은 홍콩의 주요 산업이었다.

 

홍콩 프라스틱 제조의 대명사였던 홍A는 예로부터 홍콩인들의 생활 곳곳에서 함께 해왔다. 홍콩인들은 플라스틱 양동이로 가정에 물을 길어 날랐으며, 다이파이동(홍콩식 포장마차)이나 차찬텡에서 홍A 의자에 앉아 식사를 하였다.

 

플라스틱은 가볍고 저렴한 데다 내구성도 뛰어나다. 이를 가공하여 생산하는 제품군은 무궁무진하여 주요 생활품으로 사랑을 받았다. 홍A는 지금도 부지런히 제품을 찍어 내며 가정 및 사회 곳곳에 공급하고 있다. 우리 학원의 한국어 수업 시간에 ‘홍A’를 아느냐고 물어보니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이소룡과 주성치도 즐겨 입었다! 리공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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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A가 주변 생활 공간을 채웠다면, 리공민(利公民)은 아예 홍콩인들과 한 몸이 되어 전승되어 왔다. 이 회사가 생산하는 제품은 내의였기 때문이다. 홍콩의 할아버지들이 가장 사랑하고 즐겨 입는 브랜드였다. 그뿐만 아니라 이소룡과 주성치도 리공민의 팬이었다. 실제로 구글 이미지에서 ‘利公民’을 검색어로 치면 이소룡 사진이 함께 등장한다. 

 

이소룡의 열혈팬이었던 주성치도 즐겨 입었다. ‘소림축구’ 촬영 후 각종 기자 회견에서 검은색 상의 정장 안에 리공민 브랜드의 흰색 면티를 입고 나타났다. 흰색 면티는 리공민의 대표 상품 중 하나이다.

 

리공민은 1923년 광저우에서 탄생하였다. 그리고 몇 년 후 생산기지를 홍콩으로 이전한다. 홍콩 방직 산업이 쇠퇴기에 접어들던 1980년대에 리공민은 메이드인 홍콩을 고집하며 오늘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리공민 제품이 사랑을 받아온 이유는 면이 부드럽고 형태가 쉽게 변하지 않는 장점 덕분이었다. 가격대가 비싼 편이었다는 우리 학원 수강생의 말을 짚어 보면, 단지 저가 내의가 아닌 나름 고급스런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던 것 같다.

 

겨울에는 방한 내의를 생산하여 으실으실한 홍콩 특유의 추위로부터 보호해 주었다. 이렇게 리공민은 홍콩인들과 사계절을 보내며 오늘날까지 역사를 이어 나가고 있다.

 

 

식당에서 가정으로 파고든 구룡면분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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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를 생산하는 구룡면분창(九龍麵粉廠)은 1966년 창립되었다. ‘면분’은 밀가루를 의미한다. 현재 홍콩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밀가루 생산 공장이다. 쿤통을 자주 오가는 사람들이라면 독특한 외형을 자랑하는 사옥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쿤통 해변가에 위치하는데, 두 개의 커다란 원통 기둥이 ‘ㄱ’자 모양의 건물을 한쪽에서 떠받치는 구조이다. 그리고 커다란 글씨의 ‘九龍麵粉廠’이 세로로 쓰여져 있다.

 

사옥이 지어지던 1960년대는 쿤통에 간척 사업이 이루어지기 전이었다. 건물 옆으로 밀을 실어 나르는 선박들이 드나들 수 있는 항구를 끼고 있었다.

 

구룡면분창에서 생산되는 밀가루는 주로 요식업체에 공급되었다. 따라서 인지도 면에서는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하다. 50파운드 포대를 생산해 식당에 실어 보냈는데, 몇 년 전 일반 대중에 얼굴을 내미는 계기를 맞이하였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식료품 사재기 현상이 발생하자, 가정 공급용 1파운드 소포장 밀가루를 생산하게 된 것이다.

 

시그니쳐는 포장에 파란색 수선화가 그려진 제품이다. 100% 북미에서 생산된 밀을 사용하는데, 홍콩의 딤섬 식당에서 필수로 사용하는 밀가루이다.


< 참고 자료 >

『香港百年』,雪姬著,创意市集,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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