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 오늘, 간만에 극장을 찾아 ‘4 트레일(Four Trails)’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감상했다. ‘4 트레일’은 홍콩의 4대 트레킹 코스를 제한된 시간 내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영화를 찍은 로빈 리 감독은 2024년에 열린 43회 홍콩 필름 어워드에서 최우수 신인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는 로빈 리와 그의 형인 벤이 개인 사재를 털어 투자, 제작했다. 호평속에 3백만 달러의 티켓 판매를 돌파하며 2024년 12월 이후 지금까지 장기 상영 중이다. 이 영화를 보러 간다고 하니 우리 학원의 한국어반 홍콩인들도 ‘영화평이 좋아요! 상도 받았어요’라며 추천하였다. 실제로 영화 전문 사이트인 wmoov.com에서 홍콩 관객들은 10점만점 중 8.8점의 후한 점수를 매겼다.
홍콩의 4대 트레일 코스는 맥리호, 윌슨, 홍콩, 란타우 트레일이다. 맥리호 트레일은 100km에 달하는 가장 긴 코스이다. 사이쿵, 마온산, 사자산, 싱문, 타이모산으로 연결된다. 윌슨 트레일은 홍콩에서 두 번째로 긴 코스인데, 홍콩섬 남부의 스탠리에서 시작해 신계 동북 지역인 남쳥(南涌 Nam Chung)에서 끝난다. 타이탐을 비롯한 홍콩의 8대 야외 공원을 거치며 길이는 78km에 달한다. 홍콩 트레일의 노선은 50km로 4대 트레일 중 가장 짧다. 빅토리아피크에서 시작해 드래곤백을 지나 섹오 빅웨이브비치에서 끝난다. 마지막으로 무이워(Mui Wo 梅窩)가 출발지이자 종착지인 란타우 트레일은 총 70km, 12개의 구간으로 연결되어 있다. 옹핑 마을, 타이오를 경유한다.
홍콩 4 트레일스 울트라 챌린지(HK4TUC)는 2012년 첫 대회를 시작한 이래로 음력 설 초하루부터 3일간 매년 한 차례씩 열린다. 독일인인 앤드류 블룸버그가 창시자이다. 홍콩 4대 트레일 총 298km를 72시간 내에 완주해야 한다. 60시간내에 끝낸 사람은 ‘피니쉬어’, 72시간내 완주한 도전자는 ‘서바이버’라는 호칭이 붙는다.
영화 ‘4 트레일’은 2022년 10회 대회를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10주년 기념을 위해 역대 ‘피니쉬어’와 ‘서바이버’ 16명만을 대회에 초청하였다. 여기에는 정현창(Hyun Chang Chung)이란 한국인도 포함되어 있다.
감독인 로빈 리는 스크린을 통해 홍콩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다양한 각도로 촬영된 홍콩의 수려한 풍경이 화면 가득 펼쳐진다. 특히 드론을 띄워 트레킹을 하는 선수들 뒤로 멋진 풍광을 촬영한 장면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감독에 따르면 ‘홍콩에 이런 데가 있는 줄 몰랐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하는데, 나 역시 그랬다.
이 영화의 감상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언급한 바와 같이 트레킹 길을 따라 펼쳐지는 자연미이다. 1시간 41분 동안 홍콩 곳곳에 숨어 있는 산, 바다, 호수가 장면을 바꿔가며 관객의 눈을 호강시킨다. 두 번째는 참가 선수들의 사투를 보며 느끼는 감동이다. 그들을 둘러싼 자연의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그 안에서는 선수들이 잔인할 정도의 고통을 감내하며 처절한 싸움을 이어간다. 72시간 내에 코스를 끝내야 하기 때문에 선수들은 수면 부족의 극한 속에서 싸운다. 이로 인한 극심한 체력 저하로 잠시 산모퉁이 벤치에서 잠을 청한다. 이들은 걷기고 힘든 코스를 산악 마라톤의 형식으로 달리고 또 달린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참가 선수 살로먼의 도전이었다. 그는 자신이 목표로 한 50시간 돌파가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어 레이스를 포기하려 한다. 눈물을 흘리며 좌절하고 있을 때 주변 사람들, 특히 그의 아내도 함께 눈물을 흘리며 살로먼에게 포기하지 말라며 용기를 준다. 결국 그는 다시 레이스에 올라 완주를 마친다.
1등으로 들어온 선수가 결승점에서 펑펑 눈물을 쏟아내는 장면 또한 감동을 선사한다. 다큐멘터리 중간에 인터뷰 형식으로 등장하는 이 대회의 창시자 앤드류 블룸버그는 결승 지점에서 완주를 끝낸 선수들 하나하나에게 샴페인을 뿌리며 축하해 준다.
감독 로빈 리는 촬영을 위해 20kg에 달하는 촬영 장비를 짊어지고 70km를 걸었다고 한다. 그 역시 대회 기간 동안 산에서 쪽잠을 자며 피로와 싸워야 했다. 그래도 총 12명의 촬영 기사가 있어 역할 분담을 했기에 무사히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촬영은 3일간이었지만 이후 편집 작업에는 2년이란 시간이 소요되었다.
‘4 트레일’은 구룡역의 엘리멘츠 상영관에서 하루 1회 상영한다. 내레이션과 인터뷰는 주로 영어이며 자막은 중국어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4대 트레일을 차례차례 다녀오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 그런데 영화를 통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은 멋진 풍경만이 아니었다. 이런 ‘미친 짓’에 덤비는 인간의 도전이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답고 거룩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참가자 중 한 명인 시아오치앙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스토리가 있다. 도전에 실패하든 성공하든 자신의 스토리를 써 나간다’고 말한다. 우리는 인생의 트레일에서 어떤 도전을 통해 나만의 스토리를 써 나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