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유명지는 다 가 봤다고? 정말 그럴까?
요즘 필자의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일과가 있다. 바로 KBS의 여행 프로그램 <걸어서 세계속으로>를 유튜브로 시청하는 시간이다.
최근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여행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더해 죽을 때까지 전세계를 모두 둘러 볼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 이 방송을 보게 된 계기다.
그러던 어느 날, 홍콩편을 시청할 때는 작은 흥분이 일었다. 홍콩 생활 18년차의 필자는 ‘그래, 어디를 얼마나 잘 잘 소개하나 보자’ 하고 의자에 몸을 반쯤 눕혀 여유있게 방송을 지켜봤다.
방송에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빅토리아 피크, 스타의 거리같은 관광 명소들이 소개되었다. 대표 음식 딤섬 및 아트 페어같은 문화 상품 소개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장소가 소개되었을 때 내 몸은 어느 순간엔가 앞으로 당겨져 있었다.
사이완호의 홍콩 영화 보관소인 필름 아카이브(Film Archive), 와인 자판기, 세계 2차대전 군수품 창고를 와인 저장소로 사용한 곳 등은 나에게 신선함을 안겨주었다.
20년 가까이 홍콩을 살면서 내가 아는 곳은 다 나올 것이라는 자만감은 바로 무너져내렸다. 사실 이 프로그램은 유명지 외에도 현지인의 가정 방문 등 잘 알려지지 않은 곳들도 보여주는 특별함을 지니고 있다.
소개지 중 다양한 와인을 입맛에 맞게 골라 마시는 와인 자판기 운영점은 현재 문을 닫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국국제학교 바로 맞은 편에 있는 필름 아카이브는 내가 그 앞으로 수십 번을 왔다갔다 하면서 단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군수품 와인 창고도 이 방송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홍콩 영화 보관소 필름 아카이브
지난 토요일은 숱하게 그 앞을 지나쳤던 필름 아카이브의 문을 처음 열고 들어선 날이었다. 필름 아카이브는 홍콩의 영화 역사를 저장해 놓은 곳이다.
로비에는 매표소와 전람실, 1층(한국의 2층에 해당)에는 상영관, 3층에는 자료실이 위치해 있다.
전람실에 들어가면 필름 아카이브에서 보관하고 있는 영화 중 가장 오래된 ‘종군몽(1926년)’을 기점으로 홍콩 영화 역사의 흐름이 사진과 함께 연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필자가 방문하였을 때는 1층에서 주성치, 장국영, 장만옥 주연의 ‘가유희사(1992년)’가 상영 중이었다. 영화는 매일 바뀌는 것이 아니라 특정 기간동안 한 작품이 계속 상영되고 있다.
‘걸어서 세계속으로’ 팀이 필름 아카이브의 원장 리치 램에게 이곳을 만든 이유를 물었다. 원장은 “홍콩의 젊은 세대들은 옛 영화를 감상할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저희는 젊은이들이 옛 영화를 볼 기회를 제공하며 우리 영화의 발전을 알게 되기를 염원합니다”라고 답하였다. 실제로 내가 방문하였을 때 손을 잡고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연인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관람료는 영화에 따라 30~85홍콩달러로 다양하며 많은 영화들이 영어 자막을 제공하고 있다. 개방 시간은 평일과 주말, 공휴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며 매주 화요일은 휴관이다.
세계대전 군수품 창고에서 와인 저장고로
“와인은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기 때문에 보관이 철저해야 한다. 홍콩의 수많은 와인 저장고 중 명소로 소문난 이곳!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이 군수품을 보관하던 벙커였지만 2004년부터 와인 저장고로 새롭게 변신했다.”
나레이션과 함께 카메라는 한 와인 저장고로 시청자들을 안내한다. 내부에는 전세계 회원들이 맡긴 약 200만 상자의 와인이 최적의 환경에서 보관되고 있다. 함께 운영되고 있는 레스토랑에는 포탄 등을 전시하여 이곳이 과거에 탄약고였음을 느끼게 한다.
프로그램 PD가 여기서 제일 비싼 와인이 뭐냐고 묻는다. 직원은 와인 한 병을 꺼내 보여주며 백만 홍콩 달러, 즉 한화 약 1억 6천만원짜리라고 소개한다.
프랑스 최고 와인 중 하나라고 하는데 상표는 가려졌으나 제조 날짜는 1961년이라고 찍혀 있었다.
그런데 방송에서는 정작 이곳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얘기가 없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크라운 와인 셀러(Crown Wine Cellar)라는 업체가 운영하는 곳으로 에버딘과 딥 워터 베이에 창고를 가지고 있었다.
크라운 와인 셀러의 공동 창업주인 그레고리 데브는 아시아의 와인 수도 건설이라는 주제하에 2000년 홍콩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참석한다.
이때 홍콩의 한 관료가 예전 군사 시설, 예를 들면 전쟁 대피소나 군용 창고를 와인 저장소로 사용할 수 있다는 농담을 던진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웃었지만 그레고리 데브는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사실 군사용품 보관 창고와 와인 보관소는 그 기능에 있어 공통점들이 있다. 우선 안전해야 하고 진동이 없어야 한다. 또한 빛이 들어오지 않는 동시에 선선하고 적절한 습도가 요구된다.
결국 2천만 홍콩 달러가 투자된 이 사업은 세계적으로도 특색있는 와인 저장고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유적을 보존, 발전시킨 공로 또한 인정되어 유네스코 어워드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다.
이 방송을 보고 느낀 점. 아직도 홍콩은 내가 모르는 곳들을 보물찾기처럼 남겨 놓았다. 앞으로 칼럼을 쓰며 보물들을 하나 씩 찾아나가야겠다.
참고 자료:
https://www.scmp.com/lifestyle/food-drink/article/2115903/on- ly-hong-kong-underground-wine-cellar-machine-gun-emplace- 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