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양반동네 : 피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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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양반동네 : 피크 (1)

어느 도시마다 그 도시가 오래될수록 옛날거리가 남아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곳을 찾아간다. 오래된 곳은 그 도시 지배계급의 문화가 남아있는 곳으로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양반동네"라고 보아도 될 것 같다. 우리나라 수도 서울에는 안국동 거리가 있다. 안국동을 가보면 옛날 우리나라 양반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다. 북경에는 사합원(四合院)이 있는 東城區를 가야 북경의 양반 즉 士大夫들이 살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홍콩에서는 땅이 좁아서 옛 거리가 유지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서울이라면 옛날 지역을 그대로 두고 강남을 개발할 수도 있겠지만 홍콩은 땅값이 비싸서인지 옛 건물을 그냥 두고 다른 곳으로 옮아가지 못한 것 같다. 까오롱과 훼리로 연결되는 홍콩섬의 센츄럴은 예나 지금이나 금싸라기 땅이다. 새로 집을 지으려면 옛날 건물을 헐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 건축사에 남을 첨단 철제빔으로 조립된 홍콩-상하이 은행(HSBC) 본점은 고풍을 풍기던 옛 화강암 건물을 아깝게도 헐어 내고서야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리츠 칼튼 호텔 옆의 홍콩클럽은 지금의 새 건물보다 이미 사라진 옛날 홍콩클럽 건물이 더욱 품위가 있었다고 말한다. 마카오는 발전이 늦은 탓인지 또는 바다를 매립해서 옮아갈 지역이 많아서 인지 옛날 건물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마카오는 중국 속의 유럽으로서의 옛날 건물을 관광상품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홍콩의 옛 모습을 그런대로 찾아볼 수 있는 곳이 피크(山頂)인 것 같다. 사실 피크는 홍콩을 개척한 영국인들이 자신들만이 거주하기 위해 특별 山頂區를 설치하고 중국인등 유색인들의 접근을 금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피크는 해발 500M 정도의 크게 높지는 않지만 발 아래 해안가의 센츄럴 보다 기온이 낮아서 영국인을 중심으로 하는 백인들의 별장지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총독도 피크에 별장을 갖고 여름이면 피크의 夏宮(여름 총독부)에서 집무도 보고 자주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피크에 백인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던 때가 1874년부터였다고 하고 백인들이 점차 집단으로 살면서 피크와 센츄럴과의 꾸리(苦力)가 운반하는 세단 가마로 오르내리는 교통의 불편이 차츰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불편을 덜고자 대중교통수단으로서 지금의 피크트램이 건설되어 1888년경 개통되었다고 한다. 피크트램이 개통된 1888년부터 피크 주택조례를 정해 PEAK AREA(山頂區)에는 백인만의 거주 지역(WHITE PEAK)으로 제한하였다는데 이 조례는 1946년까지 계속되었다고 한다. 피크를 구석구석 돌아보면 지형에 따라, 내려다보이는 전망에 따라, 특색있게 지어진 건물을 볼 수 있다. 피크의 주택가를 돌아보는 것은 보통 trail walking이라기 보다는 주말의 한가로움 속에서 옛날과 만나는 역사 산책이라고 부르고 싶다. 자동차로 센트럴에서 코튼트리 로드를 따라 오르면서 매가진 갭을 거쳐 피크로드를 따라 가면 가파른 절벽이 아래 위로 깍아져 있고 그 가운데 수림의 터널이 이루어진 겨우 차 2대가 서로 엇갈릴 정도로 좁은 길이 계속 이어진다. 과거 세단 가마길 같은 2차선의 좁은 길 자체가 옛날의 홍콩 모습을 그대로 설명해준다. S자형의 꼬불꼬불하며 경사가 급한 곳이 많아 자동차가 많이 보급되기 전인 20세기 초에는 브레이크 파열 고장으로 주행중인 자동차가 절벽으로 곤두박질한 사고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사고가 늘어나자 일부러 자동차 브레이크를 고장나게 하여 교통사고를 가장한 살인사건의 무대로 이 좁은 절벽길이 쓰이기도 하였다고 전해진다. 홍콩 스토리로 유명한 영국의 다큐작가 제임스 클라벨의 "노블 하우스"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다. 山頂區가 시작되는 곳에 이르면 중국식 소슬 대문에 "호퉁가든"이라는 입간판을 발견할 수가 있다. 백인전용 거주지역이며 유색인으로서는 금역지역인 피크에 최초로 합법적으로 거주한 유색인 何東의 옛날 집이다. 호퉁은 성공한 매판(買辨)으로 알려져 있다. 매판은 본래 포루투갈어인 comprador라고 하는 단어의 중국식 영어로 알려져 있는데 이 말은 본래 영어에는 없었던 말로 400여년간 마카오에서 이러한 직업군이 필요한 포루투갈 사람들이 만들어낸 말이라고 한다. 19세기초 중국무역에 가담한 영국사람들이 포루투갈 사람들이 해왔던 방식으로 중국 현지인을 이용하여 장사를 했기 때문에 포루투갈 말을 그대로 쓰고 이를 현지 중국사람들은 "마이빤" 이라고 부른다. (다음 호에 계속 ...) 유 주 열 (수요저널 칼럼니스트) 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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