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國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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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부라는 것도 문자그대로 幕舍, 또는 陣營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들이 있는 곳이다. 카마쿠라 幕府가 계속 통제력이 있다면 큰 문제가 없겠으나 권력이 지나치면 쇠퇴하는 법이다. 카마쿠라 幕府도 150년을 넘기지 못하고 아시카가(足利)라는 새로운 武將이 나타나 최전선 카마쿠라를 버리고 아예 정치의 中心, 京都의 무로마치(室町)에 幕府를 옮겨 新政을 편다. 그러나 130년만에 자체내분으로 지방통제력을 잃고 일본은 그후 100년간 戰國시대로 진입한다. 지방호족들이 武力을 키워 서로 싸우고 그 속에 天皇家도 어울리게 되고 나라는 극도로 혼잡하게 된다. 세이다이쇼군에 의해, 또는 天皇의 公家에의해 지명 받은 지방의 행정관들이 중앙(幕府)의 힘이 쇠퇴하자 임기가 되어도 떠나지 않고 지방의 세력으로 힘을 키워나간다. 그리고 그 속에는 지역의 배경과 관리능력으로 힘을 키운 호족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天皇家도 서로의 세력다툼으로 지방의 힘있는 호족과 손을 잡고 마음에 들지않는 쇼군을 제거하려고 하였다. 이에 中央의 권력이 쇠퇴함을 틈타 지방의 호족들이 "천황의 부름"을 받았다는 핑계로 "上京討幕"을 도모하고 있었다. 上京하여 무로마치의 討幕이 성공하면 天皇을 업고 새로운 征夷大將軍이 되고 새로운 幕府를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上京 자체가 용이하지 않았다. 주로 힘있는 집단은 "미야코"(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좋은지 모른다. 미야코와 가까운 호족은 막부의 감시 때문에 큰 세력을 키우기 어려우나 지리적으로 미야코에 접근하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견제세력으로 더할 나위 없었다. 16세기 중반쯤 드디어 今川라는 대호족이 지금의 시즈오카 근처에서 세력을 키워 上京討幕에 나섰다. 당시로서는 無敵 대군단 25,000명 군대를 이끌고 파도처럼 미야코를 향하고 있었다. 나고야는 上京의 길목이다. 이 길목, 나고야에서 버티고 있는 세력이 오다 노부나가(織田)였다. 오다 노부나가 天下 오다 노부나가는 5,000명의 소수병력으로 현지의 地利를 살려 25,000명의 대세력 今川군에 대항, 기적적으로 승리한 것이다. 이것이 일본역사에서 오다 노부나가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발판이 된 "오케하자마" 전투였다. 당초 오다 노부나가의 세력이 미미하여 今川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이다. 환영은 않아도 최소한 눈치보는 中立으로 공격해 온다는 것은 당시 상황으로 생각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오다는 당시 20대 후반으로 활기에 차있고 상대의 허를 찌르기 좋아하는 게릴라전에 소질 있는 특별한 무인이었다. 今川을 꺾은 織田에게 上京의 기회가 바로 온 것이 아니다. 주변의 호족을 하나씩 제거하여 오다(織田)같은 탁월한 武人도 上京討幕에 2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今川이 죽자 기를 펴지 못하고 있던 지금의 富士山 근처 야마나시 지역의 호족, 武田 집안이 세력을 키워나간다. 織田은 게릴라 전법을 인사정책에도 응용하였다. 신분철폐에 차별을 두지 않는 인사정책으로 지금 나고야시의 한 시골 平民출신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발탁, 전공을 세우게 한다. 오다는 한때 今川의 지원세력이었던 德川家康을 끌어넣어 武田을 치게하는등 거의 천하통일을 눈앞에 두고있었다. 그는 이미 上京하여 室町 막부를 해체시켰다. 그의 숙소 미야코의 혼노지(本能寺)가 새로운 권력의 中心이었다. 방심은 금물인지 오다는 그의 심복 아케치(明智)에게 암살 당한다. "부루투스, 너마저". 이것은 로마의 시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동서고금 어디서나 벌어지는 처참한 권력싸움의 한 토막이다. 오나 노부나가가 믿고 있었던 친위대 아케치군이 그의 숙소(本能寺)에 쳐들어 온 것이다. 40대 후반, 그는 아깝게 죽어갔다. 主君을 배신, 살해한 아케치가 천하를 손쉽게 잡을뻔 하였다. 오다의 그 많은 家臣들은 아케치가 자신들의 기득권에 간섭하지 않는다면 순순히 넘어가려고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분연히 일어난 의리의 사나이가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그는 자신의 주둔지 히로시마를 이탈하여 아케치를 치고 主君의 원수를 갚겠다고 군대를 끌고 本能寺로 돌아왔다. 아케치와의 천하를 다투는 전쟁이 지금의 오오사카와 쿄토사이의 天王山 근처에서 있었다. 텐노잔(天王山)전투는 천하를 가르는 승패였다. 지금도 일본사람에게 "텐노잔"하면 갑자기 긴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과는 事必歸正인지 의리의 사나이, 도요토미의 승리. 도요토미는 의리와 승부근성으로 명실공히 천하를 통일하고 天皇을 손안에 쥔다. 자신은 쇼군보다 더 높은 太閤이라는 벼슬을 갖는다. 天下를 통일한 도요토미가 한 일은 자멸의 길이기도 한 조선침략이었다. 통일 후 세력을 키우고 있는 지방호족의 관심을 밖으로 돌리고 군의 에너지를 밖으로 쏟아내게 하려는 多目的으로 보는 입장도 있다. 어쨌든 무모한 전쟁(임진왜란, 정유재란)을 통하여 평화를 사랑하는 인근국 朝鮮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때 호족 중에 유일하게 조선침략 전쟁에 군대를 보내지 않은 호족이 바로 德川家康다. 유 주 열 (수요저널 칼럼니스트) 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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