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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국인의 감각으로 셀렉팅한 런던, 파리, 밀라노의 명품들”
지난 7월 10일 침사초이에 문을 연 명품 아울렛 LPM 주윤배 사장은 지난 92년 한중 수교 직후 중국에 들어온 중국진출 1세대로, 홍콩에는 지난 99년에 왔다.
“저희 어머님이 화교세요. 중국 하남성 출신이신데 상해에서 자라셨다고 들었어요. 1948년에 한국으로 오셨는데, 한국에 그렇게 오래 사셨는데도 우리말 사투리는 못알아들으셨어요. 어머니께서는 영국계 학교에서 공부를 하셨기 때문에 영어를 잘하셨고, 영어가 통하는 사람을 찾다가 저희 아버님하고 결혼하신 거죠.”
그는 서울예대 79학번으로 80년대 내내 연극 배우로 살았다고 했다. 예사롭지 않은 인생이력의 소유자라 중국으로 오게 된 계기가 궁금했는데, 가족사(家族史)를 듣다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48년 공산화 직전, 중국을 빠져나온 외가 식구들은 한국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 중국이 개혁 개방노선을 걷기시작하자 하나, 둘 중국으로 들어가 사업을 하기 시작했고, 한중 수교전인 88년 이미 천진에 공장을 짓기도 했다고 한다. 외가 친척이 세운 회사에 취직해 중국으로 들어온 그는 곧 독립해 의류시장에 뛰어들었다. 상하이에서 2년 정도 있다가 의류시장이 더 큰 하얼빈으로 올라갔다.
“중국 진출 1세대는 부침(浮沈)이 컸어요. 극단적인 오르막 내리막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저도 예외는 아니어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IMF 때 한국으로 잠시 돌아가기도 했었는데, 당시 한국이 그렇게 사정이 나쁜 줄은 몰랐죠. 그래서 다시 마카오로 나왔다가 홍콩에 정착하게 된 거에요. 그때가 99년 6월이었죠.”
당시 홍콩에는 보통화를 하는 사람이 드물었다고 했다. 그는 중국진출을 시도하는 회사들의 통역을 맡기도 하고, 가이드도 하면서 홍콩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그것이 컨설팅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고, 오랜 중국 생활 경력, 중국 시장에 대한 해박한 지식 덕에 상당한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제 본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섰다. 컨설팅 사업도 확대할 생각이고, 한국 연예인들이 공연을 하는 극장식 바를 홍콩에 열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연극을 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문화 교류, 문화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LPM을 시작으로 차츰 차츰 사업 영역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지난 해 약 3천만명이 홍콩 관광객을 찾았는데, 그 대부분이 중국 관광객이에요. 대륙의 돈 많은 사람들이 홍콩으로 몰려와서 싹쓸이 명품쇼핑을 하고 있어요. 일단 믿을 수 있고, 또 홍콩에 오면 위안화 가치가 더 높으니까 구매욕구가 커지는 거죠. 한국 쇼핑객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금 때문에 명품을 홍콩에서 사면 20퍼센트 이상 싸게 살 수 있어요.”
LPM은 패션의 본고장 런던, 파리, 밀라노의 머릿글자를 모아 만든 상호다. 현재 밀라노에 직접 개설한 바잉 오피스를 통해 현지에서 직접 물건을 조달해오고 있는데, ‘한국인의 감각으로 셀렉팅한 명품’이란 컨셉을 무기로 홍콩의 다른 명품샵과 경쟁해나갈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