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0년 전 선전(深圳)에서 택시를 탔을 때는 기사에게 홍콩달러를 주면 무척이나 반겼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는 홍콩 달러가 인민폐보다 환율이 좋았기 때문이다. 강산이 두 번 바뀐 지금은 홍콩달러건 인민폐건 현금 흐름 없이 이렇게 큐알 코드로 온라인 결제가 이루어진다.
코코파크(COCO PARK) 앞에서 내려 입구로 들어간다. 홍콩 교민이 선전에 가면 꼭 들른다는 코코파크. 첫인상은 서울의 코엑스몰 확장 버전 같은 느낌이었다. 가운데 야외 마당을 쇼핑몰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다. ‘파크’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공원 느낌의 복합 상업 공간을 주제로 건설되었기 때문이다. 성성(星盛)상업관리주식회사가 모기업으로 2021년 홍콩 주식 시장에 상장되었다. 이 그룹이 중국에서 운영하는 상업 지구는 2018년에 문을 연 코코파크를 비롯하여 코코시티, 아이코코, 코코가든, 제3의공간 등 총 5개이다.
우리 학원의 선전 전문가들이 포진한 중국어 초급B반의 채팅방에 실시간으로 정보를 문의했다. 코코파크에 갈 만한 식당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두부 요리가 맛있다는 화이엔지에(花盐街), 딤섬 맛집인 디엔떠우더(点都德), 유명한 훠궈 체인점 빠하리(八合里), 양꼬치집인 헌지우이치엔(很久以前) 등을 추천받았다. 이중 ‘아주 오래 전에’라는 의미의 헌지우이치엔은 상하이에서 사람들이 몇 시간씩 기다렸다 들어갈 정도로 유명한 맛집인데, 코코파크에도 입점했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많다고.
그런데 발걸음을 옮기던 중 한국식당 하나가 눈에 띄었다. 백정(白丁)이라는 고깃집으로 업주가 강호동이다. 나는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꽤 넓은 내부를 보유했는데 손님들로 인산인해다. 운이 좋아 몇 자리 안 남은 테이블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다. 기본으로 나오는 반찬이 푸짐해 삼겹살 1인분만 시켜도 배가 불렀다. 나처럼 혼자 와서 고기를 굽는 청년도 보였다. 강호동의 백정은 선전에만 지점을 8개나 보유하고 있었다.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는데 인민폐 90위안이 나왔다.
택시 비용 계산은 알리페이 좌측 상단의 스캔 기능을 이용하고, 식당에서는 중앙 상단의 페이/리시브(pay/receive) 기능으로 결제한다. 페이/리시브를 열면 개인 큐알 코드가 뜨고 그 화면을 식당에서 스캔한다. 그럼 나의 홍콩 신용카드에서 결제가 되는 식이다.
중국어반 채팅방의 수강생들은 소문난 빵집도 가 볼 것을 추천했다. 코코파크에 있는 사이클&사이클(Cycle&Cycle)과 파시노(FASCINO)다. 두 곳이 바로 옆에 있어 같이 방문하기 좋다며 들러 보란다. 사이클&사이클은 단팥빵이 훌륭하고 파시노는 베이글 맛집이다. 하지만 이번 선전행에는 아쉽게도 들르지 못했다. 다음에는 꼭 다녀가겠다고 다짐하며 루오후로 발길을 향했다.
예전에 밥먹듯 드나들던 로후(罗湖) 통관소도 간만에 가 보았다. 전세계 육로 국경 통관소 중 하루 평균 가장 많은 입출국 수속이 이루어졌던 곳이다. 위치가 홍콩과 인접하여 교민들의 일정이 빠듯한 때에는 로후에서 시간을 보내고 바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내가 로우후에 다시 가게 된 이유로는 홍콩 출입국 검문소 바로 옆 유명한 짝퉁 상가인 ‘로후 상업성(商业城)’를 방문해 보고자 함이었다. 최근 흥정을 하면 얼마나 깎을 수 있는지 시장 조사를 위해서다. 예전에는 부르는 가격의 대략 30%로 후려쳐 사오곤 했다. 최근에는 예전만큼 깎기는 힘들다고 들었던 터였다. 아울러 사복 경찰들이 수시로 다니며 단속도 한다. 점원들이 특별한 상품들은 숨겨 놓았다가 창고에 가서 들고 나온다.
나는 우리 학원에서 선전 쇼핑 시 중국어 흥정 4단계 표현을 알려 준다. ‘너무 비싸요’ => ‘좀 깎아 주세요’ => ‘더 깎아 주세요’ => ‘됐어요’이다. 마지막에 ‘됐어요’하고 등을 돌리면 보통은 점원이 다시 불러 원하는 가격에 주곤 한다. 교사의 입장으로서 직접 해 보고 최근의 이곳 분위기를 수업 시간에 전달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소위 ‘삐끼’ 아주머니가 달라붙어 놓아줄 생각을 안 하는 것이었다 (물렁해 보이는 사람은 딱 보고 아는 모양이다). 어쨌든 내가 어떻게 해 보지도 못할 정도로 달라붙었다. 이 분이 가자고 하는 자기네 상점에 발을 들여놨다가는 집에 가기도 힘들 것 같았다. 결국 상가 안을 대충 둘러보고 바로 빠져나왔다. 삐끼 아주머니는 홍콩 검문소로 들어가는 입구까지 쫓아왔다.
로후에서 검역을 마치고 홍콩행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로후 통관소 일대의 모습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옛 풍경 그대로였다. 발전된 모습도, 그렇다고 노후된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가방을 앞에 메고 다니는 사람의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더 이상 악명 높았던 우범 지대로서의 꼬리표는 붙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예전에는 일 때문에 자주 방문했던 선전. 지금은 반대로 일 때문에 찾지 못했던 선전이다. 상업 지구의 발전, 치안의 대폭 개선, IT 발전으로 인한 디지털 기기의 현금 대체.. 이것이 오랜 시간적 공백 후 방문한 선전의 가장 변모된 특징이었다.
선전 방문 시 도움 말씀을 주신 진솔학원 수강생 이주란, 최정화 씨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