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홍콩 한인들의 슬픈 이야기 - 홍콩 워홀러의 외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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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단편소설] 홍콩 한인들의 슬픈 이야기 - 홍콩 워홀러의 외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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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2015년 홍콩 한인사회에 대학생 인턴십과 워킹홀리데이가 활성화되는 시기의 상황들을 재구성하여 쓰여졌습니다. 고용인이나 학생, 워홀러 모두 실수가 많았습니다. 2026년 현재는 월급과 처우가 상당히 개선되었으며, 한인 기업인들의 경험과 노력을 통해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생 젊은 시기에 홍콩을 경험한 청춘들이 홍콩을 되돌아볼 때 즐거운 추억과 웃음으로 이야기하길 기대합니다.)



해피 호텔 입구에 들어서자 낡고 좁은 엘리베이터만 있었다. 2층에 로비에 가니 홍콩인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백발의 노인네는 놀랍게도 영어가 능숙했다. 하지만 영준과 희진이 들어와도 별다른 인사도 없었다. 사무적인 말투로 이용 규칙을 안내할 뿐이었다.


월세는 1인당 3,000홍콩달러(약 44만원. 2015년 7월 환율 1HKD=147원 기준). 원래는 석 달 치를 미리 내야 하는데, 두 달 치만 내도록 네고를 했다며 사무장이 자랑스레 말했다. 영준과 희진은 6,000홍콩달러를 내고 조그만 열쇠를 받았다.


영준은 304호, 희진은 502호. 다시 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방. 영준은 복도 끝에 어두운 방문을 열었다. 방안의 더운 열기가 느껴졌다. 사무장이 붉은 스위치를 켜자, 창문 상단에 달린 투박한 에어컨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좁은 방에는 이층 침대와 작은 책상 하나, 접이식 의자 하나, 소형 냉장고, 그리고 작은 화장실이 있었다. 세면대와 변기가 바짝 붙어 있고 그 위로 샤워기가 달려 있었다. 단기 여행객들이 머무는 게스트 하우스였다.


"여기서 둘이 같이 잔다고요?" 

"인턴십 월급엔 이 정도면 잘 얻은 거야. 계속 오르고 있어."


사무장이 돌아가자, 영준은 실망스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6개월을 여기서 지내야 한다. 군대 훈련소에 다시 들어온 기분이었다.


희진 역시 실망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인터넷에서 홍콩 워홀러 생활을 검색해 봤지만 제대로 된 설명은 별로 없었는데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이런 숙소를 누가 공개하고 싶었겠나. 인턴십 월급 5,000홍콩달러에 월세 3,000홍콩달러를 내고 나면 2,000홍콩달러로 살아질까?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다.


숙소의 첫인상은 실망이었다. 하지만 각자 집에 계신 부모님께는 자세하게 말하지 않았다. 걱정하실 것 같았다. 그냥 좀 작다고만 설명했다.


저녁이 되자 영준의 룸메이트 상철이 돌아왔다. 나이 1살 더 많은 상철은 무역회사 인턴십 6개월을 마쳤는데 다른 회사에서 또 인턴십을 시작한 상태였다. 상철은 인턴십이 취업에 분명히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했다. 홍콩이든 어디든 해외 취업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다. 상철은 영준에게 근처 식당부터 생필품 사는 곳, 주요 지리, 호텔 이용방법 등 세세하게 다 알려줄테니 걱정말라고 안심시켰다. 영준은 상철을 만난 것이 정말 다행이라며 고마워했다.


희진의 룸메이트 혜수는 귀국을 1주 남겨 놓은 2살 많은 언니였다. 온라인마케팅 회사에 다닌 혜수는 홍콩 인턴십을 통해 세상 경험을 안전하게 잘 배웠다며 사장님과 직장 선배들에게 고마워했다. 혜수는 정식으로 채용 가능성이 있는지 기대도 해봤지만 회사측에서는 전혀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말에 아쉬웠다고 말했다. 회사측은 인턴십은 한국 청년들에게 해외 기업 체험을 제공하는 차원이지 채용이 목적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혜수는 홍콩 취업은 꿈을 접고 주말마다 홍콩과 심천, 마카오로 여행하면서 경험하는 게 제일 남았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밤 10시쯤 근처 편의점에 모였다. 한국 과자 몇 봉지와 캔맥주로 조촐한 환영 파티를 했다. 설레는 마음과 아쉬운 마음이 꼬리에 꼬리는 무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상철과 혜수는 서로 공감하는 것도 많았지만 생각이 다른 부분도 있었다. 인턴십을 온 것, 영어로 회사 일을 배우는 것, 직장 선배들에게 좋은 조언을 받은 것, 자신감이 생긴 것 등은 모두 비슷했다. 좁은 숙소, 높은 물가, 먹거리 해결이 큰 난제였다. 인턴십에서 배운 것이 무엇인지, 짧은 시간에 무엇에 더 집중해서 일해야 하는지, 회사가 체계적으로 가르쳐 주는지 등에는 의견이 달랐다. 영준은 선배들의 이야기 너머로 앞으로 펼쳐질 날들에 기대가 되었다. 밤이 깊어 갔지만 잠이 오지 않는 밤이었다.

 

(다음주 '홍콩 워홀러의 외침 3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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