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이소룡은 영화를, 김용은 소설을 - 룽와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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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이소룡은 영화를, 김용은 소설을 - 룽와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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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주 전 삼쟁으로 미식 여행을 다녀온 어느 날. 우리 학원 한국어반 홍콩 수강생들에게 다른 곳도 소개해 달라고 했다. 거위구이의 고장이 삼쟁이라면, 광동 대표 요리 중 하나인 비둘기 요리로 유명한 곳도 추천해달라 한 것이다. 이때 소개받은 곳이 지은 지 100년이 넘은 샤틴의 룽와호텔(龍華酒店, Lung Wah Hotel)이었다. 나는 곧 판링 역에서 내려 반대편 열차를 타고 샤틴으로 향했다. 


투숙하며 글을 쓴 김용, 무예를 하며 영화를 찍은 이소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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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틴역에서 내려 좁은 길을 따라 가니 룽와호텔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입구에서 호텔로 향하는 길은 복도식 계단으로, 위에는 빨간색 연등이 줄지어 달려 있다. 그리고 계단 옆으로는 옛스러운 정원이 펼쳐져 있다. 룽와호텔은 다른 곳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들을 지니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정원식 호텔이라는 것이다. 정원에는 티 테이블들이 놓여져 있고 옆에는 놀이터, 그리고 또 한편에는 마작을 즐기는 실내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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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건물에 다다르자, 눈앞에는 특이한 풍경의 외관이 펼쳐진다. 20세기 초에서 시간이 멈춰져 있는 듯한 건물 및 그 앞 마당의 모습은 마치 근대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 세트장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이소룡의 ‘당산대형’ 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들이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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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은 왼편에 위치한다. 식당 내부 역시 고풍스러운 느낌이 외관과 닮아 있다. 내 앞에 두꺼운 메뉴판이 놓여진다. 역사가 오래된 홍콩의 식당들은 메뉴판이 곧 작은 역사책이다. 이 호텔에 대한 역사와 특징을 소개한 글들이 메뉴와 함께 소개되어 있었다. 

 

우선 이곳의 대표 요리인 비둘기 요리를 주문했다. 한 마리에 98홍콩달러이다. 홍콩의 미식평론가 와이링은 샤틴에 3대 보물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산수이(山水)의 따우푸화(두부 푸딩), 밍포렝(明火靚)의 까이쭉(닭죽), 그리고 룽와의 비둘기 요리이다. 현재 룽와를 제외한 다른 두 곳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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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나오는 동안 메뉴판을 들고 역사 공부를 한다. 이 호텔이 들어선 것은 1938년이다. 부호였던 쫑사우쳥 일가의 별장으로 지어졌다. 이후 일본 제국주의가 홍콩을 점령한 시기에는 일제의 군사 기지로 사용되었다. 호텔 본관이 총독부, 주변 일대에는 일본군이 진을 치고 주둔했다. 일본군이 물러간 후 1950년, 룽와는 비로소 호텔로 탈바꿈한다. 샤틴에 지어진 최초의 호텔로, 객실은 초창기 8개에서 이후 10개로 늘어난다. 당시 최고급 호텔이었던 바, 하루 객실료가 60위안이었다. 이는 일반인 월급의 절반에 달하는 액수였다.

 

유명인들도 룽와를 거쳐 갔다. 홍콩의 대표적 소설가 김용은 203호실에 장기 투숙하며 무협 소설 ‘서검은구록’을 집필하였다. 이소룡은 영화를 찍으며 틈틈이 무예 훈련도 했다. 

 

이후 중국으로 연결되는 철로 공사로 인해 홍콩 정부는 룽와호텔의 주차장 부지를 매입한다. 이어 소방 시설 미흡으로 객실은 영업 정지를 당한다. 결국 1985년을 기점으로 호텔업을 접고 지금은 식당만 운영 중이다.       


비둘기 한 마리가 닭 아홉 마리를 이긴다!


메뉴판으로 룽와의 역사를 살펴보고 있는데, 종업원이 비둘기 요리 접시를 올려놓고 간다. 머리 아래로 좌우 몸통, 양다리, 이렇게 다섯 토막으로 나뉘어져 있다. 크기가 작아 2인분으로 적당하나, 한 명이 한쪽씩 맛본다면 4인분도 괜찮을 듯했다.  

 

룽와호텔은 알에서 부화한 지 26일 이하의 비둘기를 재료로 사용한다. 룽와의 조리법은 걸어서 굽는 일반적인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겉은 바삭하지만 육질의 손실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대신 끓는 물에 익힌 후 간장을 주원료로 한 러우수이 소스에 담가 양념이 베어들게 한다. 이후 겉에 맥아당을 발라 튀기는 순서로 제조한다. 

 

한창 잘 나갔을 때는 하루에 6천 마리가 팔렸다고 한다. 지금은 매일 약 6백마리의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영국 식민지 시절의 마지막 홍콩 총독인 패튼, 대만 지앙칭구어 총통도 이곳의 고객이었다. 

 

비둘기 요리는 영양가도 그만이다. 중국에는 옛말에 ‘비둘기 한 마리가 닭 아홉 마리를 이긴다’는 말이 있다. 담백질 함량이 15%에 달하며 소화율은 97%이다. 아연, 철, 비타민 A, B, E의 함량은 닭고기나 생선, 소고기보다 높다. 민간에서는 비둘기 고기를 보혈식품이라 하여, 빈혈환자의 건강 회복 식품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런 고영양가 덕분에 약재로 쓰이기도 하고 노약자, 신체 허약자, 수술 후 환자의 몸 보신용으로 적합하다.  

 

이제 본격적으로 비둘기 요리를 시식한다. 먼저 다리 하나를 들어 맛을 본다. 껍질은 전기구이 통닭같은 식감으로 바삭하다. 육질은 닭고기보다 밀도가 높아 쫄깃하다. 비리거나 역한 냄새는 전혀 없다. 다리를 끝내고 다음은 몸통이다. 살이 꽤 붙어 있었는데 역시 담백한 육질이 부드럽다. 

   

비둘기 요리를 찾아 방문한 곳이 뜻밖에도 보물 같은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라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덕분에 오늘 글의 주인공은 애초 비둘기 요리에서 호텔로 바뀐 듯하다. 아무렴 어떠랴. 덕분에 기억에 남을 미식 여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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