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강우준 학생기자(KIS 학생기자단)
홍콩이라고 하면 흔히 하늘을 찌를 듯한 고층 빌딩과 번잡한 거리, 그리고 숨 가쁘게 돌아가는 도심의 이미지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매일 입시와 학업이라는 치열한 궤도 위를 달리는 12학년 학생들에게 홍콩의 도심은 어쩌면 우리의 일상과 닮아있어 조금은 숨이 막히기도 한다. 하지만 이 복잡한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하고 여유로운 섬이 숨겨져 있다. 바로 홍콩에서 세 번째로 큰 섬, ‘라마 아일랜드(Lamma Island)’다. 이곳은 섬에 발을 디디는 순간 번잡한 도시 소음과 학업의 압박이 눈 녹듯 사라지는 치유의 공간이다.
라마 아일랜드로 향하는 여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높은 빌딩 숲 사이에 위치한 센트럴 역에서 내려 센트럴 페리 선착장 4호로 이동한 뒤, 섬으로 향하는 페리에 몸을 실었다. 약 40분간 바닷바람을 맞으며 나아가는 동안, 그동안 홍콩에서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들이 하나둘 눈앞에 펼쳐졌다. 늘 빌딩 숲 아래에서 목이 아프도록 위만 올려다보던 것과 달리, 바다 위에서 바라본 홍콩은 거대한 자연의 품에 안겨 있는 것처럼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빽빽했던 빌딩들이 점점 미니어처처럼 작아지고, 그 자리를 넓은 바다와 푸른 하늘이 채워가자 비로소 마음속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가벼운 해방감이 찾아왔다.


섬의 북쪽 관문인 ‘용쉬완(Yung Shue Wan)’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기분 좋은 여유로움이었다. 라마섬은 환경 보호를 위해 구급차나 소방차 같은 특수 차량을 제외하고는 일반 자동차의 통행이 금지된 곳이다. 도심을 가득 채우던 경적 소리와 매연이 사라진 자리에는 평소 귀 기울이지 못했던 정겨운 삶의 소리들이 채워졌다.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걷다 보면 현지 주민들과 이국적인 이주민들이 건네는 다정한 대화 소리가 들렸고, 노천카페와 작은 시장 주변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달콤한 냄새와 소리가 오감을 자극했다. 기계 소음이 지워진 섬의 아침은 12학년의 예민해진 신경을 부드럽게 다독여주었다.
용쉬완의 이국적인 골목을 지나 섬의 남쪽인 ‘소쿠완(Sok Kwu Wan)’으로 향하는 ‘패밀리 워킹 트레일(Family Walking Trail)’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 길은 사방이 탁 트여 있어 걷는 내내 감탄을 자아냈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답답하게 앞을 가로막던 빌딩들과 학교 건물 대신, 한쪽에는 끝없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다른 한쪽에는 싱그러운 푸른 산이 나를 위로하듯 자리하고 있었다.
트레일을 따라 완만한 언덕을 오르다 보면 라마섬의 명물인 거대한 풍력 발전기, ‘라마 윈드(Lamma Winds)’를 마주하게 된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인위적인 불빛으로 밤을 밝히던 홍콩 도심의 에너지와 달리, 이곳에서는 거대한 바람개비가 오직 자연의 바람만을 이용해 묵묵히 전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무해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바라보며, 남들의 속도에 맞추느라 늘 불안해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자연의 바람처럼 내 속도에 맞게 천천히 나아가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위로가 마음에 닿았다.

트레일의 종착지인 ‘소쿠완’에 다다르자, 전통적인 홍콩의 어촌 마을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수상 가옥들과 잔잔한 포구, 그리고 늘어선 해산물 레스토랑들은 현대적인 홍콩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날것 그대로의 매력을 품고 있었다. 관광지이면서도 지나치게 붐비지 않고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 이 섬의 가장 큰 미덕이었다.
센트럴에서 출발하는 짧은 배 여행만으로도 우리는 홍콩의 완전히 새로운 얼굴을 만날 수 있다. 끝없는 경쟁과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싶다면, 혹은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마음이 복잡한 청소년들이라면 이번 주말 라마섬을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생각보다 아주 가까운 곳에, 당신의 지친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줄 푸른 바다와 기분 좋은 바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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