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를 자를 곳은 어디인가 - 홍콩우리교회 서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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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를 자를 곳은 어디인가 - 홍콩우리교회 서 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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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좋아? 지내면서 어려운 건 없어?” 지인의 질문에 “머리 자를 곳이 없어”라고 하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합니다. 하지만 홍콩에 사는 우리는 이 문제가 의외로 심각하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머리를 한 번 잘못 자르면 적어도 한 달에서 몇 달은 난감해집니다. 특히,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는 업종에 종사하는 분일수록 더 곤란해질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더 곤란하고 난감하죠. 제가 일본에서 거주할 때도 경험했던 문제입니다. 일본인 미용실에 들어가 스타일을 설명합니다. 그는 몇 가닥 자르고, 괜찮냐고 물어봅니다. 이렇게 긴 시간 묻고 대답하며 머리를 자르고 나면, 지칩니다. 그 수고를 거쳐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오래 거주한 분들께 물어봐도 정확한 답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사람 두상도 다 다르고, 원하는 스타일도 다르니까요. 결국, 순회(라고 쓰고, 순례라고 읽습니다) 커트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홍콩 온 지 일 년 반 정도 되었습니다만, 아직도 순회 커트 중입니다. 홍콩에서의 첫 커트는, 지나며 본 동네 미용실이었습니다. 90홍콩달러 정도 했습니다. 좋지는 않았지만 나쁘지도 않았습니다. 일단 사진을 찍어 남겨둡니다. 한 달 뒤. 같은 미용사에게 지난번 커트했던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자른 머리이니 이번에도 똑같이 할 수 있겠지요.’라는 믿음은 이내 무너집니다. 아, 그때의 커트 실력은 우연이었나요? 당신이 잘랐던 머리인데. 똑같이 한 번 더 자를 수는 없었나요? 고개는 왜 끄덕였던 건가요? 

 

슬픔의 한 달을 보낸 뒤. 쇼핑몰 안에 있는 미용실을 찾았습니다. 체인점이니, 그래도 기본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88홍콩달러입니다. 값도 조금 더 쌉니다. 역시 이번에도, 예전에 잘 잘랐던 스타일의 머리 사진을 보여줍니다. 제가 할 일은 다 했습니다.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생각을 비웁니다. 위잉~ 속칭 ‘바리깡’이 지나가니 머리는 시원해지고, 가슴은 서늘해집니다. 대체 얼마만큼의 머리만 남기려고 이러는 것인가. 머리 깎는 동안 차마 눈을 뜰 수 없습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커트를 마친 뒤, 살포시 눈을 뜨니 거울에 한 낯선 남자가 있습니다. ‘누구냐. 넌.’ 거울을 외면하고 서둘러 돈을 내고 나옵니다. 꽝. 다음 기회에.

 

이런 일이 반복되며 몇 개월이 훌쩍 지나가고. 한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매달 고민하는 자신을 보면, 왠지 서러워집니다. 일본에서는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신 분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어떤 한국 분의 집에 찾아가서 잘랐습니다. 전업 주부지만 미용사 경력이 있어, 아름아름 지인 머리를 잘라주곤 하셨습니다.


며칠 전. 교회 집사님이 잘 가신다는 현지 미용실 소개를 받았습니다. 무려 30홍콩달러랍니다. 잘 자른다고 합니다. 교통비를 포함해도 다른 곳보다 쌉니다. 이번에도 실망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차피 실망하려면, 비용이 싼 편이 낫지요. 슬픈 예감은 왜 틀리지 않을까요? 구글 지도로 찾아간 그곳은, 한 마디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사진을 보여주고, 자리에 앉아 머리를 맡깁니다. 아주머니 한 분이 깎다가 다른 분과 토의를 열심히 하더니, 다른 분이 이어받아 깎습니다. 프로레슬링도 아닌데 태그매치로 커트를 하네요. 제 의도와는 다른 머리 스타일이지만, 돌이킬 수 없습니다. 계산을 합니다. 30홍콩달러로 알고 갔는데, 40원홍콩달러를 받았습니다. 이유는 모릅니다. 말해주셨는데 제가 알아듣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두 명이 깎아 그런 것일까요? ‘그래, 싸니까 괜찮아’라며 마음을 달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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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머리로 주일 예배를 드렸습니다. 놀랍게도, 제 머리에 대해 말씀하시는 분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우리교회 성도님이 모두 얼마나 성숙한 인격을 갖고 계신지 새삼 깨닫습니다. 정말 훌륭한 분들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무언가를 찾아 방황합니다. 이것을 하면 만족할까? 저기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질까? 여기는 나를 이해해 주는 곳일까? 이렇게 저렇게 찾아다니지만, 마음에 드는 곳도 찾지 못하고 평안함에도 이르지 못합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마음의 평안을 얻고자 불교나 천주교, 개신교 등 여러 종교를 전전하다 피곤하고 지친 분들을 봅니다. 종교 없는 분들은, 어려울 때 기도라도 하고 싶은데, 갈 곳이 없어 곤란해하기도 합니다. 어느 종교나 교회에서 상처받고 나왔는데, 갈 곳이 없어 방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은 예수님도 방황하셨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출산은 임박한 데, 낳을 곳이 없습니다. 머물 여관이 없었습니다. 여기저기 헤매다 결국, 예수님은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방황하고 힘들어하는 우리의 마음을 잘 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11:28)


우리는 머리 자르는 문제 하나로도 방황합니다. 하물며, 중요한 일을 결정하거나 선택할 때는 어떨까요? 종교에 관계 없이. 교회 출석 여부에 관계 없이. 혹시 마음 둘 곳 없어 방황하시는 분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홍콩우리 교회에 오셔서 조용히 기도하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문은 열려있고, 조용합니다. 저도 아는 체하지 않고 조용히 방문자를 환영하겠습니다. 부디 홍콩 생활에서 여러분이 어느 곳에라도 마음을 두고, 방황이 끝나고 평안함에 이르시기를 응원하고 기도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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