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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새로 산 커피 기계로 정교하게 설정된 커피를 내려 마셨다. 온도는 오차 없는 65도, 농도는 12브릭스, 추출 시간은 4분 30초. 기계는 설정된 값을 어김없이 지키면서 매번 동일한 맛을 완벽하게 재현해낸다. 빠르고 편리하며 균일한 맛을 내기에 구입했지만 어제는 그 흠 없는 완벽함이 오히려 커피 맛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문득 사무실 근처 낡은 카페를 운영하는 바리스타가 떠올랐다. 그는 종종 실수를 한다. 어떤 날은 원두를 살짝 태운 거 같은 맛을 내고, 어떤 날은 우유 스팀을 너무 일찍 끄기도 한다. 손이 떨리는 날에는 라떼 아트를 엉뚱한 모양으로 그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의 커피에는 사람의 온기가 담긴 손때 묻은 향기가 있다. 기계는 완벽하지만 틈이 없고, 인간은 서툴 수 있지만 그 틈으로 이야기가 스며든다. 그 틈 속에 존재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본의 장인들은 깨진 도자기를 버리지 않는다. 대신 그 균열을 금가루로 이어 붙여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킨츠기(金継ぎ)’라 불리는 이 기법은 상처를 흉터가 아닌 고유한 역사가 담긴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다. 상처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금빛으로 드러내어 미학의 일부로 재생산하는 것이다.
불완전하고 덧없는 것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달항아리의 미학’도 같은 맥락이다.
기울어진 형태, 흔들리는 굽, 제작 과정에서 생긴 자연스러운 균열과 변형처럼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존재들에서 더 깊은 완전함을 느낀다.
조선의 도공들이 두 개의 반구를 이어 붙여 만든 달항아리는 의도치 않게 기울어지고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 비대칭의 아름다움이야말로 기계적 완벽함보다 더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조화를 보여준다. 마치 밤하늘에 떠오른 달이 매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이듯 달항아리의 불완전함은 변화하는 자연의 리듬을 담고 있다.
세월이 지나며 생긴 작은 흠집과 색의 변화는 이 백자 항아리를 더욱 소중하게 만든다. 완벽을 추구하려다 놓치는 진정한 아름다움이 바로 여기 고요한 달빛 같은 순백 속 불완전함의 완성에 있다.
‘완벽하지 않기에 비로소 완전하다’는 이 역설을 과연 AI가 이해할까? 기계는 오차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데 집중하지만 인간은 오차와 비효율속에서 의미와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위대한 발명은 종종 실패와 우연의 산물이었다. 강력 접착제를 만들려다 ‘잘 붙지 않는’ 접착제를 발명한 스펜서 실버. 그의 실패작은 몇 년 후 동료 아서 프라이가 성가대 찬송가에 끼워둔 책갈피가 자꾸 떨어지는 것을 보고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포스트잇의 영감이 되었다.
오늘날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감자칩 역시 한 요리사의 짜증에서 비롯되었다. 1853년 요리사 조지 크럼은 까다로운 손님에게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감자를 종이처럼 얇게 썰어 바싹 튀겨냈다. 그의 비뚤어진 마음이 역설적으로 새로운 맛의 지평을 연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역사에는 의도치 않은 발견과 예상 밖의 조합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실패’가 가득하다. AI가 과연 이런 창조적 실수를 할 수 있을까? 기계는 정해진 경로를 이탈하지 않으려 하지만 인간에게는 때로 그 흔들림이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완벽을 강요한다. 소셜 미디어 속 연출된 성공적인 삶의 모습, AI가 내놓는 칼 같은 답변들은 마치 “너도 빈틈이 없어야 해”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실수를 두려워하면 새로운 시도를 멈추게 된다. 그 때 창의성은 질식한다. 완벽주의는 우리 시대의 병이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 자유롭게 도전하고, 더 많이 실패하며, 그 과정에서 더 깊이 배운다. 완벽을 추구하느라 시작조차 못 하는 것보다 서툴더라도 끝마치는 ‘완성’이 훨씬 값지다. 그리고 그 완성은 완벽할 필요가 없다. 손때 묻은 완성이 매끈한 완벽보다 우리에게 더 따뜻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불완전함이 품고 있는 인간적인 여유 때문일 것이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의 서투름과 취약함이 빚어내는 진솔한 순간들이다. 재즈 연주에서 한 박자 늦게 터져 나오는 섹소폰의 애드리브, 코미디언이 자신의 농담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 우리는 바로 그런 예측 불가능한 틈새에서 진한 감동을 느낀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깊이 매료되는 이유 역시 완벽함 때문이 아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는 기색, 무심코 드러난 솔직한 표정, 어색하지만 진심이 담긴 수줍은 미소. 브레네 브라운이 말했듯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취약성’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의 뿌리다. 실패하거나 상처받을 일이 없는 기계는 결코 용기를 낼 수 없다.
AI가 매끈하고 완벽한 결과물을 쏟아내는 시대일수록 인간의 손길이 닿은 ‘불완전함’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수공예품이 공장 제품보다 비싸고, 라이브 공연이 녹음된 음원보다 특별하며, 손으로 빚은 빵이 균일한 공장 빵보다 깊은 맛을 내는 이유다. 복제 가능한 것은 가치가 하락하겠지만 대체 불가능한 흔적을 지닌 것의 가치는 결국 오른다.
디지털 아트가 넘쳐나는 시대에 낡은 필름 카메라가 부활하고 있고, AI가 소설을 쓰는 시대에 작가의 솔직한 고백이 담긴 글이 더 소중하게 읽힌다. 미래의 진정한 명품은 어쩌면 ‘의도적으로 남겨둔 틈’이 될 것이다. 손때 묻은 어긋남, 예상을 비껴가는 맛. 우리는 그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 인간 고유의 가치를 발견한다.
그렇다면 AI 시대에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AI 도구를 능숙하게 쓰는 법이나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기술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름답게 실패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회복탄력성,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믿는 자존감, 그리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용기다.
AI는 우리 삶에 엄청난 편리함을 주지만 빠른 답이 항상 좋은 답은 아니다. 오히려 충분히 고민하며 던지는 ‘느린 질문’이 사고력을 키운다.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갈등하고 오해하며 때로는 상대의 눈치를 살피는 불편하고 느린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성장한다. 매끈하게 닦인 길 위에는 성장의 씨앗이 자라기는 어렵다.
지금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은 바로 이 ‘틈새의 미학’이다. 완벽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우리 안의 고유한 틈과 매끈하지 않은 결을 끌어안는 태도다. 이는 결코 게으름에 대한 변명이나 현실에 안주하라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틈새의 미학은 ‘시도의 윤리’다.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과감히 세상에 나서는 용기, 실수를 인정하고 기꺼이 다음 걸음을 내딛는 끈기다.
AI 시대의 진짜 승부처는 기술적 완벽함의 경쟁이 아니다. 우리의 불완전함에서 비롯되는 독창성,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적 연결에 있다. 기계는 정답을 주지만 어떤 질문을 던질지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기계는 효율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그 해결책이 최선인지 판단하고 책임지는 것 또한 인간의 몫이다. 기계는 완벽한 커피를 만들지만 그 커피를 앞에 두고 서툴지만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것은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잘못된 경주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계처럼 완벽해지려는 노력보다는 기계가 결코 될 수 없는 우리 안의 불완전함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의 실수와 망설임 즉흥적인 번뜩임과 우연한 발견, 상처받을 수 있는 취약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려는 용기. 이것이 바로 기계와 구별되는 인간다움이며 이 불완전함이야말로 우리를 아름다운 존재로 만든다.
빈 그릇이어야 무엇이든 담을 수 있고 틈이 있어야 바람이 지나간다. 완벽하게 채워진 것에는 여백이 없고 여백이 없는 곳에서는 숨 쉬기 어렵다. 그러니 조금 더 용감해지자. 완벽하지 않은 나를 끌어안고 그 틈 속에서 나만의 아름다움을 찾아내자. 기계는 정답을 향해 달려가지만 인간은 정답 없는 길을 걸어가며 스스로 길이 된다.
정답 없는 그 걸음이야말로 인류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며 앞으로도 아름답게 이어갈 우리만의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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