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칼럼에서는 지난 회에서 등장시키지 못한 주요 양념장들을 먼저 소개한다. 사실 종류가 너무 많아 선정하는데 애를 먹었다. 이중 몇 가지를 골라 소개한다 (오늘 등장하는 양념의 이름은 직관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한국어로 표기한다)
광동어로 ‘호우야우’라 불리는 일명 굴소스다. 개인적으로 삶은 상추에 찍어 먹는 굴소스를 좋아한다. 현지 식당에 가면 즐겨 먹는 야채 요리가 바우주오 셩차이(白灼生菜)인데 상추를 담백하게 삶은 요리이다. 맛이 심심하지 않게 굴소스가 딸려 나온다. 굴소스는 농도가 진하지만 짠 맛은 덜하다. 소스 전문 생산업체인 이금기의 창시자인 레이감썽(1862-1922)에 의해 우연한 계기로 세상에 나온 후 광동 일대로 퍼지게 되었다. 용도 또한 광범위하다. 국수 요리, 무침, 야채 볶음, 생선 조림, 삶은 고기, 국, 훠궈 조미료 등 다양하게 사용된다. 이 소스를 달라고 할 때는 광동어로 ‘야우모우 호우야우’라고 말해 보자.
새우의 형태가 보이는 우리나라의 새우젓과는 달리 이곳의 새우장은 갈아져서 장의 형태를 띤다. 수상 가옥으로 유명한 타이오 지역이 주요 생산지인데, 이곳에 가면 마을 곳곳에 파란색 플라스틱 대형 통에 담겨져 있는 새우장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족발을 먹을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새우젓이다. 한국어반 수강생 안준현(홍콩인) 씨도 어릴 적 홍콩 족발 요리인 쥐사우(猪手)를 먹을 때는 어머니가 새우장을 함께 내놓으셨다고 한다. 야채 볶음, 국, 생선찜 등과 잘 어울린다.
홍콩의 훠궈(핫팟) 식당에 가면 나만의 소스를 이것저것 섞어 내 취향대로 만들어 먹는 재미가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주요 소스 중 하나가 땅콩장이다. 땅콩 특유의 고소함이 짙은 풍미를 선사한다. 나는 겨울이면 집에서도 훠궈를 먹곤 하는데, 이때 땅콩잼을 섞어 소스를 만든다. 사실 땅콩장은 북방 지역에서 선호하는 소스로 알려져 있다. 땅콩장의 맛이 강하게 풍기는 요리 중 하나는 딴딴미엔이다. 으깬 땅콩이 뿌려져 있기도 하다. 면 요리 외에 두부나 오이 무침에도 사용되며 특유의 단맛을 함유하고 있어 디저트류에도 쓰인다.
역시 가장 유명한 제조업체로는 이금기(李錦記) 브랜드를 들 수 있다. 조미료 및 양념장 전문 생산 회사로 1888년 설립되어 300여 종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전세계 100여 국에 수출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굴 소스, 두반장 등 꽤 많은 종류들이 판매 중이다. 아모이(Amoy) 브랜드 또한 홍콩 슈퍼마켓의 진열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아모이도 홍콩 토종 브랜드로서 110년의 만만치 않은 역사를 지녔다. 간장과 굴소스를 포함한 다양한 양념장 외에도 만두, 국수 등 냉동식품도 생산한다. 이들 소스들은 동네 슈퍼마켓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조언을 얻고 싶으면 재래시장의 양념장 전문 상점을 방문해 보자. 백종원이 자신의 유튜브에서 홍콩 방문 시 양념장을 사려면 꼭 들른다고 추천한 곳이 있다. 종류도 많고 다른 곳보다 저렴하기 때문이란다. 센트럴에 위치한 카우룬 소이(Kowloon Soy, 九龍醬園)이다. 센트럴 그라함(Graham)가 9번지에 위치해 있다.
이 칼럼을 쓰게 만든 장본인인 홍여우챠오셔우(紅油抄手, 일명 ‘매운 만두’) 요리에 도전하기 위해 슈퍼마켓을 찾았다. 소스로 사용되는 화지아오요우(花椒油) 및 주재료 완탕을 구입하기 위해서이다. 지난 칼럼에서 소개한 바 있는 화지아오요우는 산초로 만든 기름이다. 산초는 훠궈 등 쓰촨요리에서 알알함을 선사하는 식물이다.
만두의 경우 원래는 한국 냉동 제품을 쓸 예정이었다. 그런데 요리 이름에 있는 ‘챠오셔우’가 만두의 한 종류인 완탕을 의미하는지라, 일단은 기본에 충실하고자 현지 만두를 구입했다. 완탕은 피가 얇아 소스가 잘 스며든다.
지난 토요일 오후,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 섰다. 나는 취사병 출신이다. 군대 음식은 맛이 없다며 나의 주방 출입을 막아 온 가족들도 한국에 가 있다. 이날만큼은 내 마음대로 해 볼 심산이었다. 홍여우차오의 재료는 다음과 같다.
소스 재료: 화지아오요우 2스푼, 다진 마늘 2스푼, 간장3스푼(지난 칼럼에서 소개한
간장의 한 종류인 셩쳐우(生抽)를 쓰는데, 없으면 일반 간장으로 한다), 설탕 1스푼, 참기름 약간
여기까지는 인터넷에서 소개한 재료이다. 나는 이에 더해 우리 집 냉장고에 있는 청양고추와 다진 생강, 그리고 얇게 썬 파를 추가했다.
우선 위에서 소개한 모든 재료를 섞어 소스를 만든다. 어떤 레시피에는 고추기름인 라지아오요우도 넣으라 쓰여 있었다. 고추기름이 없어 대신 집에 있는 고추 가루를 반 스푼 첨가했다. 소스를 만들어 보니 한국의 두부조림 양념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완탕 만두를 물에 삶는다. 끓는 물에 약 5~6 삶은 후 완탕을 건진다. 그리고 완탕 위에 소스를 뿌리면 끝! 맛이 무척 궁금했다. 무난했지만 매운맛은 좀 덜 했다. 다음에는 화지아오요우를 한 스푼 더 넣거나 고추 기름을 추가하면 내가 원하는 맵기가 나올 것 같았다.
그래도 생소한 소스를 가지고 도전한 첫 작품치고는 성공적이었다. 내 일상에 중화요리 도전이라는 새로운 목표와 취미가 생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