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임, 선택, 그리고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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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임, 선택, 그리고 확신

딸아이를 KIS 한국어 과정에 보내면서

 

 

2년 전, 처음 홍콩에 발을 딛으며, 유치원 졸업반 딸아이를 어디에 입학시켜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누군가 한국국제학교(KIS)를 추천했다. 하지만, 흔치 않은 외국경험이니 아이를 다른 환경의 국제학교에 보내, 영어실력 하나만은 확실히 키워주고 싶은 욕심도 들었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영어를 참 싫어했다. 그 흔한 노부영, 마더구즈 같은 것에도 관심이 없었으며, 6살 다니던 일반유치원에서 하는 방과 후 영어파닉스 수업조차도 싫어했다. 결국, 아이의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는 생각에, KIS 한국어과정을 선택했다. 물론, 그러면서 생각했다. 6세 때 이미 ㄺ, ㅀ등의 받침있는 글자의 정확한 차이와 쓰임을 알던 딸을 굳이 한국학교에 1년 이상 보낼 이유는 없으니, 한 학기 정도만 보내보고 적응이 되면 바로 다른 국제학교로 옮겨야겠다고.


어느 정도의 적응기가 지나고 아이가 영어로 입을 떼게 되자, 아이 아빠는 바로 다른 국제학교로 옮기고 싶어했다. 아이는 어른보다는 훨씬 잘 적응하니 얼마간의 힘겨운 시간을 지나면 영어능력이 훌쩍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어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고, 아직 저학년이니 한국에 돌아가도 다른 교과들을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망설였다. 몇 날 몇 일을 고민했다. 그리고, 결국 선택은 KIS 한국어과정에 남는 것이었다.

 

 


왜였을까?


비록 딸 아이가 한글을 빨리 터득한 편이긴 했지만, 한국말 속에 녹아 있는 문화, 정서를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우리가 살던 지역은 학기별로 외국에서 살다오는 전학생이 한 반에 3~4명은 있는 곳이었다. 딸아이는 당시 유치원생이었지만 아이 친구의 형제들은 초등학생, 중학생인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한국교육 과정에 적응을 못해 다시 외국으로 나가는 경우를 종종 보아 왔다. 일상적인 한국말이 된다해도 막상 교과서 내용을 이해하고 수업을 따라가기엔 무리가 있었고, 그것 때문에 동급생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어려워졌다고 했다. 동양인이 없는 미국 미네소타에서 초등 1년을 보내고 온 내 조카아이는 비록 지금은 여엇한 의대생이지만, 이제까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바로 어린 나이에 미국에서 보낸 1년과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적응하던 시기라고 했다. 영어를 배우긴 했으나 미국 아이들 사이에서 힘들었고, 거꾸로 한국에 돌아오니 또 적응하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아주 한국을 떠나 사는 게 아닌 이상, 모국어로 탄탄한 기본을 쌓아 나가야 하는데, KIS 한국과정을 통해 그 첫 단추를 잘 꿰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이런 상황을 잘 알고 학교에서는 수업이외에도 과제를 통하여 모국어와 모국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방법으로 낱말을 유추하도록 하여 오랫동안 머리속에 남겨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준다. 일기나 받아쓰기도 꾸준히 하고, 다양한 주제의 독서록 활동도 한다. 한국문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놀이수업도 있다. 아직 모국어가 서툰 학생들을 위한 집중교육시간도 있다. 또 수학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을 틈틈이 봐주신다고 딸 아이가 이야기했다. 외국에 사는 동안에 모국과 모국어를 잊어버리면 안된다는 생각때문이신지, 한국에 계시는 선생님보다 더 꼼꼼히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 같다. 딸 아이는 독서량이 많은 편인데, 학교 내 도서관에서는 영어책은 물론 여기 홍콩에서 접하기 어려운 한글책도 많이 구비되어 있어, 많은 도움을 준다.

 


그렇다면, 아이 아빠가 걱정했던 영어능력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이의 영어 실력이 다른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보다 많이 뒤진다면 크게 후회하고 고민이 많을테지만, 현재까지 아이가 보여준 성과를 볼 때 나는 만족하고 있다. 처음에는 좀 더딘가 싶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아이가 한국선생님의 따듯한 보살핌을 받으며 모국어로 친구들과 소통할 기회가 있는 환경에서 심리적인 안정/자신감을 찾자, 처음에는 다소 부담스러워 하던 영어수업에도 자발적인 재미와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고, 모국어의 토대가 단단해지면서, 오히려 영어에 대한 이해와 흡수력이 눈에 띄게 향상됨을 느끼게 됐다. 그러면서 서서히 영어 비중을 늘렸더니 아이의 생활 속에서 영어구사가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KIS 생활이 1년이 채 되기 전인 지난 가을, 우리 가족은 호주여행을 떠났다. 캠핑카로 여행하던 중 작은 소도시에 들러 농장체험을 하였는데, 참여한 사람들 중 동양인은 우리가족 뿐이었다. 키가 190cm는 되어보이는 덩치 큰 농장주인이 농장 한가운데에 일행을 풀어놓고는 빠른 호주영어로 10여분간 설명… 순간 당황한 엄마를 보며 ‘내가 다 알아들으니 걱정말라’고 했던 딸이 참 기억에 남는다. 그 뒤로도 서양친구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아이가 언어때문에 불편해하는 건 없어 보였다. 또, 형제가 없는 딸아이는 아빠와 놀이를 하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전에는 놀이 중에 아빠가 영어로 말을 걸면 질색해 했다. 노는 동안에 스트레스를 주지 말라며… 하지만, 지금은 아빠가 영어로 얘기하면 같이 영어로 대화하며 놀이를 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요즘 딸아이가 빠져서 읽고 있는 책은 Roald Dahl의 소설이나, A to Z Mysteries 시리즈이다. 리딩레벨이 2.2~2.9 정도인데, 이 정도면 미국 초등학교 2학년 정도가 읽는 책이라고 한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KIS는 한국어과정이라 할지라도 이중언어교육을 기본으로 한다. 하루 8시간의 수업 중 4시간은 한국교육과정대로 진행되고 4시간의 영어수업은 영국공립학교 교육 커리큘럼을 따라 진행되는데 결코 낮은 수준의 영어가 아니다. 영어수업은 학년별, 수준별로 나누어 진행된다.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뉘어 수업이 진행되며 아이의 수준에 따라 이동되기에 욕심이 있는 아이에게는 더욱 동기부여가 되어주는 것 같다. 관계절이니 하는 말을 쓰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쓰고자 하는 복잡한 문장들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쓸 수 있도록 유도하며, 흥미로운 주제에 대한 작문을 통해 Essay 스킬 교육도 이뤄진다. 영어를 어려워 하는 아이들을 위한 Intensive English 수업도 있다. 무엇보다, 늘 교실에 한국선생님과 더불어 영어 담임선생님이 함께 계시니, 이중언어의 사용이 자연스러운 모양이다.


물론 엄마 입장에서는 가보지 않은 길(다른 국제학교)에 대한 궁금증까지 완전히 없앨 수 없는 게 사실이다. 다른 국제학교들도 나름의 장점들이 많을 것이다. (만일 딸 아이를 다른 국제학교로 옮겼다면, 다른 건 몰라도 영어 하나만큼은 지금보다 더 발전되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 2년은 망설임 끝에 마주한 나의 선택에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가져다 주었다. 무엇보다 선생님들의 편안하고 따듯한 보살핌 속에서 아이의 정서적 안정과 심리적 자신감이 고양되고, 아이의 인성이나 사회성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정립되고 있다는 것이 어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에서 무척이나 고맙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심리적/정서적 성장을 바탕으로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며 이중언어교육의 과실을 하나 둘 수확해 나가는 아이를 보면 가슴 한 켠에 뿌듯함이 밀려 든다.

 


요즘 부쩍 나에게 KIS 한국어과정에 대해 물어 오는 엄마들이 생겼다.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고, 상황도 다를 것이기 때문에 대답이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아직 나이 어린 아이들이 낯선 외국환경에서 적응하면서 겪을 정신적 시행착오를 줄이는 동시에 global 교육의 혜택을 동시에 누리고자 한다면, KIS 한국어과정이 매우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나 언젠가 아이가 한국으로 돌아갈 상황이라면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딸 아이는 열심히 노트에 무언가를 그리고 있다.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순간이동머신”이란다. 언젠간 한국에 돌아가야 하는 것을 아는데 요즘 학교가 너무 재미있단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고 체험할 것도 많은 한국으로 돌아가 살고 싶긴 한데, 학교는 KIS를 다니고 싶은 마음에서 그려본 것이라고 한다. (그래! 그런 것 발명하면 엄마도 정말 좋겠다!!!!!) 아이의 성장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학교를 좋아하는 딸 아이를 보며, KIS 한국어과정이 아이에게 좋은 방향타가 되었으리라 생각해 본다.  


글 홍콩한국국제학교 1학년 학부모 류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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