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느낀 낯선 북한... 스스로 비관하는 한국이 안타까워요
  • 해당된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콩에서 느낀 낯선 북한... 스스로 비관하는 한국이 안타까워요

글 최은미(가명)

 

 

‘빨갱이를 몰아내자!’


 

어렸을 때부터 내가 자주 들었던 말이다. 지금이야 많은 TV 프로그램과 행사에서 북한 사람들이 나오고, 문화도 교류하고 그러지만 당장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인 12년 전만 해도 북한은 공포의 대상 그 자체였다.

 

학교에서 나는 선생님이 들려주던 이승복 어린이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영웅담을 들으며 박수를 쳤고, 쉬는 시간에는 너도 나도 학교 앞 전통 놀이 마당에서 빨간 팀과 아군으로 나뉘어 땅따먹기를 하였으며,  조례 시간에는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가슴에 손을 얹고 태극기를 바라보며 조국에 대해 맹세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도 나는 북한이 한 민족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우리 세대가 접할 수 있는 북한의 이야기는 미디어가 보여주는 것이 대부분이다.   내가 뉴스로 접했던 북한은 상당히 공격적이고 비논리적인 모습 뿐이었기 때문에 더 괴리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다 홍콩에 와서 많은 것을 접하였다. 지금까지 약 2년 간 홍콩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내가 한국에서 보고 느낀 것들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나 북한과 관련해서는 더 그랬다. 미모의 북한 여가수의 라이브 공연, 학교에서 심심찮게 보이는 북한 스터디 투어 포스터, ‘북한에서 왔냐 남한에서 왔냐’를 물어오는 친구들. 사람들은 내가 생각했던 만큼 북한을 적대적으로만 보지 않았으며, 오히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많이 궁금해 하였다. 내가 아는 세상과 저들이 아는 세상이 다를 수 있겠구나란 생각을 그때 처음 해봤다.

 

 


한창 시험 공부보다 페이스북 확인하는 것이 더 재밌는 무렵에 학교 선배가 올린 포스트를 보았다. 그 무렵 학교에서 심심찮게 보이던 이스트 비전이란 단체의 대한민국 투어 포스터에 관한 것이었다. 캠퍼스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었지만, 글을 읽어보니 그냥 지나칠 문제가 전혀 아니었다. 누런 색 헤드라인으로 ‘헬조선’을 내건 포스터에는 자살 명소 마포대교부터 ‘숨막히는’ 공립 학교 체험까지 우리나라를 폄하하는 내용 투성이었다.


단체의 SNS 계정은 더 가관이었다. 북한에 관해서는 온갖 아름다운 말들을 늘어놓는데 비해, 남한에 관해서는 ‘원숭이’ ‘빌딩지옥’ 등 선정적이고 끔찍한 말들로 온통 먹칠을 해 놓은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 3자가 보았을 때 모든 글들이 충분히 오해를 살 여지가 있는 내용이었는데, 대학내 한인회부터 홍콩 현지 한인 사회까지 얼마나 나라 인식을 위해 애쓰고 있는지 아는 나로써는 참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나라 이미지가 안좋아 질 것 같아 당장 홍콩수요저널에 제보했고,  한 2주 후 이스턴 비전이 사과와 함께 헬조선 투어와 관련된 모든 콘텐츠를 철거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중립적이다. K팝 고장 한국이 마냥 쿨하다고 하지도 않고, 김정은의 세상(북한)이 무조건 나쁘다고 하지도 않는다. 내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가지고 있는 한국에 대한 애착을 외국 사람들이 가졌을 리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내 한인회에서는  떡볶이도 만들고 한복 포토 타임도 열며 우리 나라의 이미지를 좋게 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일수록  왜곡에 약한 법이다. 백 날 좋아도 한 번 나쁘면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기억하기 마련이다. 내가 미디어 속 북한을 보고 아직까지도 북한에 괴리감을 느끼는 것처럼, 그리고 이스턴 비전 포스터에 많은 한인 학생들이 불쾌감을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우리의 국적에 자긍심을 지녀야 한다. 국적은 단순히 여권의 모양을 결정짓는 게 아닌 우리 자신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내 나라 욕을 외국인 앞에서 하는 것은 누워서 침을 뱉는 것과 같으며,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 나라를 우습게 보게 만든다.


헬조선이라는 낱말 자체를 (뉴스도 아니고 상업적인) 이익 단체 포스터에서 보게 되니 기분이 참 묘했다. 분명 저 말은 우리들끼리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국은 살기 힘든 곳이다’ 라며 하던 말인데, 정작 외국인 손에서 나온 헬조선 헤드라인은 참 눈에 거슬렸으니 말이다. 사실 우리가 헬조선이라 먼저 칭하지 않았다면 저들이 그 말을 알기나 하였을까? 라는 생각이 머릿 속을 계속 맴돌았다.


사실 포스터에 나와 있는 말들은 사실 100% 틀렸다 반박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따지고 보면 마포 대교에서 자살률이 높은 것도, 우리가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것도, 우리 나라의 교육열이 정말 치열한 것도 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도 항상 존재한다. 치열한 경쟁은 우리 나라가 빠른 시일 내에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는 데에 큰 공헌을 하였지만 지금의 각박한 세상을 만들기도 하였다. 


 

이런 것들을 일부러 덮을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한없이 깎아내릴 이유도 없다.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 중 외국인인 나에게 자기 나라를 비관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우리 문화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계속해서 우리의 처지를 비관하고 깎아내리기만 한다면 그 역시 우리의 문화가 되어 버릴 것이다.


가끔 한국 여행을 간다며 나에게 여행지 몇 곳을 추천해달라는 친구들이 있다. 보다 자세한 정보를 주기 위해 조사를 하다 보면 나는 항상 우리 나라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새삼 깨닫곤 한다. 우리 나라는 우리 나라이기 때문에 아름답다. 자긍심을 갖자.

 

관련기사  “헬조선 가보자” 홍콩 여행사, 한국 비하 포스터 사과
한인 유학생 신고로 총영사관 ·관광공사 공식 항의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