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인터뷰]‘대장금’ 연저육찜으로 홍콩음식경연대회 도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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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인터뷰]‘대장금’ 연저육찜으로 홍콩음식경연대회 도전한

[[1]] [[2]] [[3[[ 서라벌 대표 쉐프 김경순 ‘다리가 있는 것은 의자 외에는 다 먹고, 날개가 있는 것은 비행기 외에는 다 먹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의 식문화는 풍부하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이 가장 즐겨먹고 잘 먹는 육류 하나를 꼽는다면 분명 돼지고기다. 지난해 홍콩 FM 라디오 방송국인 ‘메트로 재경 방송국’(新城財經台) 주최로 열린 ‘홍콩 음식경연대회(明火食神爭覇戰)’ 쇠고기 부문에 출전, 금상의 영예를 안았던 한식당 서라벌(사장 신홍우)이 올해는 중국 음식문화의 꽃으로 불리는 ‘돼지고기 부문’에 도전했다. “돼지고기의 본고장인 중국에서 돼지고기로 승부에 나선 게 무모해보일지 몰라도 요리는 정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심사위원단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볼 거예요.” 8월 17일 오후, 최종경합이 열린 중화주예학원(中華廚藝學院) 7층의 대기실을 찾아 각오를 묻자 김경순 쉐프는 그렇게 짧게 답했다. 그리고 잠시 후, 드디어 대회가 시작되었다. 김 쉐프가 빠른 손놀림으로 보자기를 풀러 재료들을 주방 조리대 위에 정렬하자 연예인, 요리 평론가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마이크를 든 DJ를 따라 그 옆으로 다가섰다. “김치!” “김치!”하며 심사위원단이 소리를 쳤다. 서라벌이 이번에 출품작으로 내놓은 것은 ‘대장금’에 등장했던 최상궁의 연저육찜. 한식 특유의 상차림에 따라 막걸리와 김치가 그 옆을 장식했다. 막걸리에 관심을 보이는 심사위원단에게 김쉐프는 “한국의 쌀로 빚은 술로, 일본 등에서도 인기가 많다”고 설명해줬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맛을 보던 심사위원들은 알콜도수가 6도에 불과하다고 하자 벌컥 들이키곤 맛있다고 수선을 떨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요리에 입문한 건 지난 94년, 삼십 대 중반 때였어요. 다른 일을 10년 정도 하다가 요리를 시작했지요. 지금 보면 입문한 나이가 많이 늦은 거지만 당시로선 늦었다, 빨랐다 말하기 애매한 나이였죠. 요리 시작하고 2년 됐을 때, 그러니까 96년에 한우리에 면접을 보러 갔다가 홍콩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홍콩에 오게 된 거에요.” 심사 결과를 기다리며 대기하는 동안, 김경순 쉐프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처음 홍콩에 온 것은 지난 96년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타지에서 외로움을 달래며 일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고 2년 후, 그녀는 결국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10개월 후, 그녀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서야 그녀의 진가를 여실히 깨달았던 서라벌에서 주방장으로 승진시켜줄 테니 돌아오라는 전화가 왔다고 했다. 서라벌 홍콩점에서 주방장으로만 벌써 12년째다. 그녀는 서라벌 음식은 신선함이 다르다고 자랑했다. 채소는 선전의 농장에서 기른 것을 직접 가져오고, 상추, 청량고추 등의 한식재료들은 매주 비행기로 공수받는다고 했다. 주방 청결도도 우수해 몇 년전에는 위생서로부터 상도 받았다고 자랑했다. “외국에서 한식을 할 때는 현지 입맛에 맞춰 개량하는 데가 있고, 한국 고유의 맛을 지키며 하는 데가 있지요. 서라벌은 당시 홍콩 한식당으로서는 처음으로 고급화된 컨셉을 제시했기 때문에 선구자적인 입장에서 한국 고유의 맛을 지켰어요. 그러데도 고객의 80퍼센트가 현지인들이에요.” 이번 경연에서 이길 수 있겠냐고 묻자 그녀는 “자신있다”면서도 “승패보다는 한식을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식이 한류를 타고 퍼져나가고 있지만 아직은 먹는 사람만 먹고 있기 때문에 이기든 지든 나와서 도전을 거듭해야 한다고 말했다. ‘막걸리를 처음 보는 사람도 여기 많지 않냐’고 그녀는 되물었다. 저녁 6시가 다 될 무렵, 드디어 심사결과가 나왔다. 바짝 긴장한 김 쉐프는 기도하듯 두 손을 모은 채 결과발표를 지켜봤다. 그러나 불행히도 결국 그녀의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다. 그녀는 굳은 얼굴로 서라벌 식구들과 함께 서둘러 행사장을 떠났다. 그리고 다음 날 그녀는 ‘작은 상이라도 한개 받았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어제밤 한잠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서운한 감정은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라며 이메일을 보내왔다. ‘인터뷰 기사는 좋은 일이 있을 때 내달라’라는 주문과 함께였다. 그러나 이미 답은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승패보다는 한식을 알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그녀의 고군분투는 수상소식보다 더욱 값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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