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치 신념(Luxury Beliefs)'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이는 "상류층에게는 도덕적·사회적 지위(평판)를 가져다주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과 비용은 고스란히 하류층에게 전가되는 관념과 주장"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경찰 예산을 삭감하고, 그 돈으로 다른 곳에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이 주장을 누가 할까요? 주로 치안이 좋고 보안 시스템이 철저한 곳에 사는 부유층입니다. 그들은 경찰이 없어도 안전하지만, 치안이 불안한 빈민가 주민들은 경찰 예산이 삭감되는 순간 강력 범죄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됩니다.
"결혼 제도는 구시대적 유물이다"라는 주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엘리트층은 강연이나 SNS에서 혼전 동거나 비혼을 진보적이라며 칭송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 자녀에게 부와 지위를 대물림합니다. 반면 이 신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하류층은 가족 해체로 인해 더 큰 경제적·정서적 빈곤에 처하게 됩니다.
“성적은 아이들을 서열화하므로 인성교육을 해야 한다”라는 말도 그렇습니다. 얼핏 듣기에 참 좋아 보이고, 말하는 사람을 깨어 있는 지성인으로 보이게 만듭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이자 작가인 ‘롭 헨더슨’은 이런 말들을 분석해 2019년 ‘사치 신념’이라는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마약 중독자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 7개의 위탁가정을 전전하며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미 공군에 입대한 뒤 예일 대학교와 케임브리지 대학교(박사)를 졸업한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만난 상류층 학생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급진적인 주장을 펼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매우 보수적이고 안정적인 혜택을 누리는 선민의식과 위선에 충격을 받아 이 개념을 정립했습니다.
물론 일각에서는 이 사치 신념이라는 단어가 진보적 가치를 공격하기 위한 우파의 정치적 수사라거나, 저자가 자신의 불우한 과거를 극적인 서사로 활용했다는 냉소적인 시선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어떤 주장을 대할 때 ‘그 말을 누가, 왜 하는지’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만들고, 자신은 안전한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 허울 좋은 말만 늘어놓는 이들을 경계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분명한 시사점을 줍니다.
예수님께서도 일찍이 이와 같은 위선을 경계하셨습니다.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누가복음 11장 46절)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당시 율법교사들만을 향한 질책이 아닙니다. 말과 삶이 분리된 모든 시대를 향한 엄중한 경고입니다. 자신들은 안전한 곳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잘못된 길로 이끄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사치 신념이 오늘날 새롭게 발견된 현대적 개념 같지만, 그 뿌리는 이미 이천 년 전 예수님 시대의 위선자들에게도 똑같이 발견됩니다. 남에게는 무거운 짐을 지우면서 자기 손끝 하나 대지 않는 사람들. 그분이 꼬집으신 대상은 바로 그런 위선이었습니다.
반면 예수님께서는 가장 높은 자리를 버리고 가장 낮은 땅에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사셨습니다. 사람들의 팍팍한 삶 속으로 걸어 들어오셨습니다. 모든 아픔을 친히 겪으셨기에, 예수님의 가르침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그것과 달랐습니다. 허울뿐인 말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기 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간절히 전해주셨기에, 그분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 움직입니다.
사치 신념이라는 개념은 남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지혜를 줍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이 개념을 타인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또 다른 잣대로만 쓴다면, 우리 역시 또 하나의 사치 신념을 소비하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저 사람은 말만 번지르르하다"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과연 나는 내가 말한 대로 살고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일입니다.
홍콩우리교회는 바로 이 질문을 함께 던지고 고민하는 공동체가 되고 싶습니다. 안전한 자리에 앉아 그럴듯한 말만 나누는 모임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서로의 삶에 들어가 깊은 사랑을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문화원을 열고 바자회를 한 것도 말뿐이 아닌 삶으로 이웃과 함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앞으로도 홍콩에 거주하시는 많은 분들과 더 많은 시간을 곁에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혼자 감당하기 벅찬 일들을 서로 나눠 질 수 있는 이웃이 되고 싶습니다. 남에게 짐을 지우는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의 짐을 함께 나누어 지는 공동체. 말과 삶이 하나 되는 공동체. 그런 교회가 되기를 꿈꾸며 매주 모여 예배드립니다.
이번 주에도 홍콩우리교회는 여러분의 이웃으로,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언제든 방문해 주십시오. 여러분 모두를 환영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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