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뉴스] "홍콩 역사상 단 2명뿐"…'첫 행정장관' 퉁치화, 국장(國葬)으로 치러질까?

[홍콩뉴스] "홍콩 역사상 단 2명뿐"…'첫 행정장관' 퉁치화, 국장(國葬)으로 치러질까?


첫 행정장관 퉁치화, 국장으로 치러질까.jpg


홍콩의 초대 행정장관이자 전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전국위원회 부주석인 퉁치화(Tung Chee-hwa)가 향년 89세로 별세한 가운데, 국가급 지도자 출신인 그가 국장으로 치러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홍콩 역사상 국장으로 치러진 사례는 고(故) 안체카이(Ann Tse-kai) 정협 부주석과 헨리 폭(Henry Fok Ying-tung) 정협 부주석 등 최소 두 차례가 있었다.


안체카이: 홍콩 역사상 첫 국장

1949년 홍콩에 정착한 안자개 전 정협 부주석은 남화염직공장(South China Bleaching and Dyeing Factory), 소코 텍스타일(Soco Textiles), 위너 텍스타일(Winner Textiles) 등 여러 방직 회사를 설립한 인물이다. 그는 쇼브라더스, TVB, 상하이상업은행, 허치슨왐포아의 이사를 역임했다. 또한 제6기·제7기 정협 전국위원회 상무위원, 제8기·제9기 정협 전국위원회 부주석을 지냈다.


홍콩 반환을 앞두고 안 전 부주석은 기본법 기초위원회 부주임과 기본법 자문위원회 주임으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2000년 세상을 떠났을 당시 그의 장례는 최고 격식으로 치러졌으며, 이는 홍콩 역사상 첫 국장으로 기록됐다.


헨리 폭: 애국 기업인을 위한 국장

홍콩의 저명한 기업가이자 자선가인 곽영동 전 정협 부주석은 제8기·제9기·제10기 정협 전국위원회 부주석을 역임했다. 그는 1950년대 한국전쟁 당시 중국에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봉쇄망을 뚫었던 활동과 1978년 개혁개방 이후 대륙에 선구적으로 투자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폭 전 부주석은 부동산 분양 및 분할 납부 제도를 도입하는 등 홍콩 부동산 시장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그는 개혁개방 이후 대륙에 투자한 최초의 홍콩 기업인 중 한 명이었다. 1979년에는 2억 홍콩달러(약 360억 원)를 투자해 광저우에 White Swan 호텔을 지었으며, 이 호텔은 중국 최초의 합작 5성급 호텔이자 국가 지도자들이 여러 차례 방문한 장소가 됐다.


폭 전 부주석은 국가에 대한 평생의 공헌을 인정받아 2006년 세상을 떠났을 때 국장으로 치러졌다. 그의 운구에는 오성홍기가 덮였으며, 10명의 운구자 중에는 퉁치화 전 장관도 포함돼 있었다.


국장 자격 요소는 무엇인가?

홍콩에서의 국장은 일반적으로 국가와 홍콩에 특별한 공헌을 한 인물에게 엄선되어 제공된다. 결정은 중앙정부 차원에서 내려진다. 홍콩의 첫 행정장관으로서의 오랜 봉사와 이후 정협 부주석으로서의 역할을 고려할 때, 동 전 장관 역시 유사한 영예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포토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