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콩 특별행정구의 초대 행정장관을 지낸 퉁치화(Tung Chee-hwa, 董建華)가 화요일 향년 89세로 세상을 떠난 가운데, 고인이 선박왕 고(故) 퉁차오융(Tung Chao-yung)의 장남이자 홍콩 최고 부유층 가문 출신으로서 걸어온 파란만장한 생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홍콩 성도일보가 보도했다.
초년기 및 학창 시절
1937년 상하이에서 태어난 퉁치화 전 행정장관은 내전 기간 중 가족과 함께 어릴 적 홍콩으로 이주했다. 그는 홍콩의 중화중학(Chung Wah Middle School)에 다녔다. 이후 1954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1960년 리버풀 대학교(University of Liverpool) 해양공학과를 졸업했다.
해운업계에서의 경력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 등 미국에서 10년간 근무한 퉁치화 전 행정장관은 1965년 가업에 합류했다. 1979년 오리엔트 오버시즈(Orient Overseas)의 수장 자리에 올랐으나, 세계적인 해운 불황 속에 회사는 곧 재정 위기에 직면했다. 1985년 무렵 회사는 심각한 부채에 시달렸다. 1년 후, 고(故) 헨리 폭(Henry Fok)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CPPCC) 부주석이 이끄는 1억 2,000만 미국달러(약 1,701억 6,000만 원) 규모의 구제금융이 투입되면서 회사는 가까스로 도산을 면했다. 1992년까지 퉁치화 전 행정장관은 회사를 다시 흑자로 돌려놓았다.
기업인에서 행정장관으로
수년간 비즈니스 현장에서 활약한 퉁치화 전 행정장관은 국제적 감각과 실무 경험을 갖추었으며 대만, 미국 등의 정재계 인사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가업을 성공적으로 구출해 낸 그의 능력은 위기 관리 능력과 가문 기업을 지켜낸 집념을 입증해 주었다. 이러한 자질 덕분에 그는 중앙정부의 인정을 받고 다양한 계층의 지지를 얻어 주권 반환 후 홍콩의 첫 행정장관 출마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1996년 그는 선거 출마를 위해 오리엔트 오버시즈(인터내셔널) 유한회사의 회장 및 최고경영자(CEO) 직에서 사임하고 가업을 동생인 퉁치천(Tung Chee-chen)에게 넘겼다. 그는 성공적으로 당선되어 1997년 7월 1일 취임하며 홍콩 역사에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공직 사퇴 이후의 삶
2005년 행정장관 자리에서 물러난 퉁치화 전 행정장관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CPPCC) 전국위원회 부주석으로 임명되어 2023년까지 그 직을 수행했다.
그는 비즈니스 분야에서도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2014년 6월 16일에는 알리바바 그룹(Alibaba Group)의 독립사외이사로 영입되었다. 당시 알리바바는 퉁치화 전 행정장관의 전략적 비전, 비즈니스 및 정부 지도자로서의 경험, 그리고 미·중 양국과의 관계를 구축하고 강화해 온 오랜 경험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사
퉁치화 전 행정장관은 평생 불교도이자 열렬한 리버풀 FC 팬이었다. 아내 베티 퉁(Betty Tung)과의 사이에 3명의 자녀와 9명의 손주를 두었다.
공식 서류상 생년월일은 1937년 5월 29일로 기록되어 있으나, 그의 실제 출생일은 중일전쟁의 발화점이 된 노구교 사건(Lugou Bridge Incident)이 발생한 1937년 7월 7일이다. 퉁치화 전 행정장관이 비극적인 역사적 사건과의 연관성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나중 날짜를 선택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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