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모던과 다문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런 말을 많이 듣습니다. “틀린 것이 아닙니다. 다른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포용해야 하고, 상대를 인정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옳은 것과 그른 것의 구분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히려 더욱 신중하게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신약성경 마가복음 7장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 몇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 중 몇 사람이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이때다 싶어 예수님을 공격합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전통을 존중하지 않고 손도 씻지 않고 떡을 먹는 걸 봤소. 당신이 어떻게 가르쳤길래 저렇게 하는 거요? 당신, 가짜 선지자 아니오? 유대인을 구원할 메시야라면, 어떻게 유대인의 전통을 무시하고 손도 안 씻고 떡을 먹는 제자를 둔단 말이요?”
바리새인과 서기관, 즉 종교지도자들의 관심은 전통과 율법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입으로는 전통도 잘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도 지킨다고 하는데. 실제로 너희는 전통도, 말씀도 어기고 있다. 하나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는데 너희는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느냐? ‘하나님께 드렸습니다’라면서 부모님께는 아무것도 드리지 않는 걸 내가 다 알고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느냐?”
예수님의 관심은 생명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전통의 진정한 의미는 생명을 살리는 것, 부모를 공경하는 것,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손을 씻느냐 마느냐는 생명보다 덜 소중한 문제입니다.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고,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합니다.
성경에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자주 공격했고, 결국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미워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이 그들의 마음을 찔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여러 가지를 지켜야 한다고 강요했습니다. 그럴듯한 말로 자신들의 욕심을 감추고, 거룩한 척했습니다. 실제로는 온갖 나쁜 일을 다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지적하시자 그들은 분노했습니다.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무엇이 옳은 것인지 예수님이 알려주자 그들은 예수님의 입을 막으려고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위선을 감추기 위해 ‘전통’을 내세웠다면, 오늘날 우리는 ‘자유’와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위선을 반복하곤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자유를 누릴 수 있어.” 그럴듯한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의 속뜻은 ‘나는 다른 사람에게 간섭받고 싶지 않아. 나도 다른 사람의 삶에 끼어드는 것이 귀찮아’일 수도 있습니다. 최근 일본에서는 ‘부츠카리 오토코/온나’(ぶつかり男/女)가 사회 문제입니다. ‘부딪친다’는 뜻의 ‘부츠카루’에서 나온 말인데, 스마트폰을 보며 걷는 사람이나 걸음이 느린 사람, 아이를 보면 ‘길에서 방해되잖아!’라며 일부러 부딪히며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들의 주장을 들으면 공공도로에서 민폐를 끼치는 사람들을 질책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신의 분노를 약자에게 쏟아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덩치 큰 남자나 힘센 사람에게는 그런 행위를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과 행동이 다릅니다.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그들의 행동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가 듣고 보는 많은 것들을 하나하나 생각하고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습관에 따라 살아갑니다. 생각 없이 살아갑니다. 옳은지 그른지 생각하는 과정을 생략합니다. 그 결과, 큰 소리를 내는 소수의 사람들이 힘을 얻는 일이 일어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힘을 잃어갑니다. 내 생각이 없어지고, 다른 사람의 판단에 자신을 맡기게 됩니다. 작은 유혹에 솔깃하고, 거짓 가르침에 넘어갑니다. 악한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종교지도자들에게 본질을 물으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매일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이것이 정말 중요한가?” 무엇이 옳은지 생각하는 일은 단지 지적인 노력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을 지키는 일이고, 진리를 붙들고 생명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바쁘고 분주한 삶 가운데,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사는지, 어떤 것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사는지 돌아보지 않는다면, 어느새 우리는 목적도 방향도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피곤한 삶이 될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께서도 이번 한 주간 잠시 시간을 내어, 무엇이 옳은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여러분과 사람들을 살리는 것인지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바쁘고 분주할수록, 잠시 멈춰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그 본질, 곧 생명을 살리는 진리를 오늘도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이번 한 주도 여러분 모두를 응원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Copyright @2026 홍콩수요저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