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홍콩 한인들의 슬픈 이야기 - 니가 사는 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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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단편소설] 홍콩 한인들의 슬픈 이야기 - 니가 사는 집 1

글 손정호 (이 이야기는 실화에서 영감을 받아 작가의 상상력으로 쓴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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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손정호 (이 이야기는 실화에서 영감을 받아 작가의 상상력으로 쓴 소설입니다.)


니가 사는 집 1


2012년 홍콩섬 동부 지역 사이완호(Sai Wan Ho 西灣河). 이곳은 한국 정부의 인가를 받은 한국국제학교가 있다. 이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한다. 아파트 단지와 쇼핑몰이 몰려있는 타이쿠(Tai Koo 太古) 지역도 바로 옆 동네다. 홍콩에 처음 도착한 사람들은 이 곳 집을 볼 때 두 번 놀란다. 작은 평수에 놀라고, 높은 월세에 더 놀란다. 40년된 아파트의 24평 짜리 월세가 약 20,000홍콩달러(280만원, 2012년 환율 1홍콩달러=약 140원 기준)였다. 신축 아파트는 월세가 약 35,000홍콩달러(490만원) 정도였다. 2025년 현재 월세는 약 25~30% 정도 올랐다. 방이 세 개라면, 화장실이 두 개라면 월세는 팍팍 올라간다. 그래서 이 곳은 집값을 지원해주는 주재원들이나 임원급 직장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파크앤샵(ParknShop 百佳) 수퍼마켓에서 시장을 보고 돌아오던 현미의 전화가 울렸다. 남편이 급하게 집과 학교를 알아보라고 했다. 남편은 무슨 계약이라도 따낸 사람처럼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대학 후배 녀석이 홍콩 지점장으로 온대. 영업 좀 해야겠어. 내가 부탁하면 물량을 줄 거야. 그래서 말인데 집이랑 학교 알아보는 데 도움을 좀 주자고. 급하게 알아보고 있대."


현미는 홍콩 생활 8년 차된 42세 주부다. 홍콩에서 벌써 네 번이나 이사를 해봤기에 부담스럽진 않았다. 다만 마지막에는 평수를 줄여 이사했다. 그래서 집에 관해서는 자존심이 좀 상해 있었다. 학교에 관해서는 첫째 딸이 얼마 전 국제학교 세컨더리스쿨(중고교 과정)에 합격해 나름대로 정보력이 있었다. 대충 경험이 있으니 정리해서 주면, 남편에게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동갑내기 남편은 물류회사 주재원 자격으로 8년 전 홍콩에 나왔다가 눌러 앉았다. 과장급으로 3년간 만족하며 지냈고 운 좋게 2년 더 연장하며 귀국하지 않았다. 현미는 홍콩 생활이 좋았고 남편도 앞으로 홍콩의 물류업계가 희망이 있다고 판단했다. 귀국일이 임박해지자 홍콩계 물류회사로 옮겼다. 현지 채용이라 주재원 생활보다 수입은 줄었지만, 두 아이가 잘 지내고 있는 것으로 만족했다. 홍콩 거주 7년이 넘어야 자격이 되는 영주권도 받았고, 아이가 한국으로 대학갈 때 12년 해외 특례입학이 가능하다는 점도 마음 한 구석에 든든한 보험이었다.


현미는 남편 후배의 가정과 자녀, 희망 사항 등을 고려해서 한국인 부동산과 현지인 부동산에 동시에 알아보았다. 한국인 부동산은 한국말로 모든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하다. 홍콩인 부동산은 영어로도 설명할 수 있지만 현미가 100% 이해를 못 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확실히 더 많은 집을 보여주었다.


현미는 집 위치와 평수, 방, 욕실 상태 등 요구사항대로 찾았고 직접 가서 보고 사진도 찍어 남편 후배 부인 다혜에게 보냈다. 그리고 집 부근 초등학교와 추천 학교 정보도 함께 엑셀 파일에 정리했다. 그 후로 부동산 중개인에게 연락하고, 다시 통역해서 알려주는 일을 몇 번이나 반복해야 했다. 아직 얼굴도 모르는데 이렇게 해야 하나 싶었지만, 남편의 처지를 생각하면 내팽개칠 수 없었다. 학교 입학관련 인터뷰 준비도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


한 달 뒤 남편 후배 가족은 홍콩에 도착했다. 가족 모두 인상이 좋았고 모든 이주 과정에 도움을 준 것에 크게 감사해했다. 남편은 예상대로 후배 회사로부터 내년도 물류 물량을 일정 부분 약속받았다. 남편은 현미 덕분이라며 감사해 했다. 후배 가족과는 자연스레 주말마다, 또 주중에도 자주 만나며 가족 간에 좋은 관계를 맺었다.


한 학기 정도 지났을까. 현미는 놀라운 이야기를 절친 명희에게 듣고 말았다. 다혜가 어느 모임에서 한 말이 화근이었다. 다혜는 홍콩 집과 학교를 구하는 게 생각보다 쉬웠다는 식으로 말했다는 것이었다. 현미의 도움은 쏙 빼고 본인이 직접 다 알아본 것처럼. 심지어 현미가 작성한 자료 파일을 자기네들 카톡방에 공유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다혜의 홍콩 정착을 현미가 도와준 것을 알고 있었던 명희는 며칠 지나서 찾아와 알려주었다.


현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바쁜 시간 쪼개 가면서 해줬는데. 내 집 알아볼 때보다 일부러 더 꼼꼼하게 알아봤는데. 사진과 문서로 다 정리하느라 얼마나 애썼는데. 너무 쉬웠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괘씸하고 얄미워졌다. 당장 다혜를 만나 한마디 하고 싶었다. 섭섭하다고, 어찌 그럴 수가 있냐고.


퇴근한 남편에게 화풀이하듯 쏟아냈다. 당신 때문에 그렇게 수고했건만, 무슨 그런 버릇없는 사람이 다 있냐고 말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앞으로는 절대로 도와주는 일 없을 거야, 얼굴도 안 볼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웬걸. 남편은 한참 머뭇거리다 한마디 했다.


"저기, 여보. 후배 회사에서 물량 받으려면 몇 달 더 걸릴 텐데. 조금만 참으면 안 될까?"


현미는 들고 있던 고무장갑을 남편 얼굴에 던져 버렸다.


"두고봐라. 그 년 가만두지 않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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