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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피한 자연재해에도, 사스(SARS)의 공습에도, 심지어는 홍콩 사회의 근간을 흔들었던 1967년의 폭동에도 홍콩 시티홀(City Hall)은 항상 열려있었다. 그랬던 시티홀이 <센트럴 점령>으로 52년 만에 문을 닫는 사태가 발생했다.
홍콩의 시티홀은 관청 건물이 아닌 공식 공연장으로서의 기능을 하는 곳이다. 지난 28일 바로 인근에서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최루 가스를 발포하는 바람에 이날 저녁 공연이 취소됐고 이어 다음날도 예정됐던 공연이 모두 취소됐다.
시티홀은 지난1962년 처음 오픈했고 개장하자마자 바로 들이닥친 근세기 최고의 태풍‘ 완다’ 때 잠시 문을 닫았던 것을 제외하고는 항상 열려있었다. 심지어 사스(SARS) 때와 대형 화재 때에도 시티홀은계속 공개상태였다”고 관계자들은 말했다.
2004년 12월 발생한 화재는 진화하는 데 7시간이나 걸려 막대한 물이 사용되었으며 이로 인해 시티홀의 콘서트 홀은 피해를 입었지만 시티홀의 나머지 부분은 그대로 사용됐었다. 1967년 폭동은 사실 현재의 <센트럴 점령>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었다.
과격 좌파들이 홍콩에도 <문화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홍콩 시내 곳곳에서 테러와 폭동을 일으켰으며, 언제 어디서 폭탄이 터지고 테러가 일어날 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당시 식민 정부는 시티홀을 계속해서 공개하기로 결정했었다.
대신 식민 정부는 마오쩌뚱 ‘어록(little red book)’의 다양한 카피본을 모두 구해 시티홀의 사무실에 전시해 놓았었다. 과격 좌파들이 마오쩌뚱 구호를 외치며 이 곳으로 진격해 왔을 때 ‘어록’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이들은 “말을 잃었으며 만족한 미소를 띄고 조용히 떠났다”고 당시 상황은 전해지고 있다.
시티홀 관계자는 “그렇게 극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대화를 잃지 않으려는 자세가 있었고 이로 인해 과격 좌파들도 자신들이 반대파에 의해 어느 정도 이해되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의 상황은 이런 태도가 매우 부족하다”며 불필요한 시티홀
의 폐쇄와 대치상황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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