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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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그냥 아파트가 아니야~ 홍콩의 유명 공영 주택은 어디?홍콩 공영 아파트 역사는 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 해 12월 25일, 구룡의 셰킵메이 판자촌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한다. 당시 화재로 집단 거주하던 지역민 약 5만 명이 삶의 터전을 잃는다.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탄생한 공영 주택 제1호가 메이호 하우스이다. 이를 기점으로 홍콩에는 아파트 형태의 공영 주택이 속속 들어선다. 통계에 의하면 2022년 기준, 홍콩 인구의 약 1/3에 해당하는 224만 명이 공영 주택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록 정부에 의해 지어졌지만, 이 중에는 소위 ‘홍콩 유명 공영 주택’으로 손꼽히는 아파트 단지들이 있다.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혹은 디자인이나 건축 스타일의 외형적 측면으로 인해 유명해진 곳들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방문으로 유명세를 탄 오이만췬 구룡 호만틴에 위치한 오이만췬(Oi Man Estate, 愛民邨)은 1974년에 건설되어 6천3백 세대가 살고 있다. 구룡에서 가장 규범화된 공영 주택으로 꼽힌다. 호만틴 인근의 작은 산턱에 지어졌는데, 산에서 거주하던 주민들의 생활은 지하철이 개통되기 전까지만 해도 외부인들에 의해 ‘원시적’으로 비추어졌다. 오이만췬은 흑역사도 지니고 있다. 1920년대에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형성된 무덤가에 자리 잡아 귀신 이야기의 성지로 불리었다. 오이만췬은 우리나라의 국토교통부에 해당하는 방옥서(Housing Department) 설립 이후 지어진 제1세대 공영 주택이기도 하다. 면적은 축구장 약 12개 규모에 해당하여 당시 구룡 전체에서 가장 넓었다. 일부 고층 아파트에서는 멀리 빅토리아 하버까지 내려다볼 수 있었다. 또한 두 개 동은 공영 주택으로서는 처음으로 방 2개에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 초창기 공영 주택은 화장실 및 욕실이 공동 사용으로 설계되어 불편함이 많았다. 이 아파트를 유명하게 만든 사건은 1975년에 발생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홍콩 방문 시 오이만췬을 다녀간 것이다. 오이만췬은 모범 주택으로서 여왕의 방문지로 선정되었다. 당시 엘리자베스 여왕은 한 가정을 방문하여 거주민 가족과 대화를 나누며 친서민적인 행보를 보였다. 여왕의 방문 시 수많은 시민들과 기자들이 에워싸며 인산인해의 장관을 이루었다. 영국 여왕의 방문은 이 지역민들에게 큰 자부심이 되었다. 이후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자, 이들을 맞기 위한 상점 및 상업 시설이 들어섰다.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은 대부분 문을 닫거나 용도 변경을 하였다. 오이만췬은 독특한 건축 설계로도 유명하다. 소위 ‘우물 정(井)자의 아파트’라고도 불리는데, 건물로 둘러싸인 중앙이 우물 정자의 형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 및 예술 사진가들의 촬영지로, 여행객들이 인증샷을 올리는 명소로 주목받아 왔다. 홍콩 유일의 원형 공영 주택 라이탁췬 라이탁췬(Lai Tak Tsuen, 勵德邨)은 홍콩섬 타이항에 위치하며 오이민췬과 같은 1975년에 완공되었다. 부촌에 지어진, 홍콩 전역의 유일한 원형 설계 공영 주택으로 유명하다. 건설 초기에는 공영 아파트 중 임대료가 가장 비싼 곳이기도 했다. 모두 3개 동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중 2개 동이 원형 건물이다. 공영 주택 건설에 큰 공로가 있는 건축가 ‘우라이탁( 勵德, 영어 이름은 마이클 라이트)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우라이탁은 홍콩 공영 주택의 아버지라 추앙받았던 인물이다. 우라이탁의 설계에서 가장 독특한 점은 원통 모양의 건물과 우물 ‘정’ 자의 내부 구조이다. 건물 내부로 공기가 잘 통하고 복도에는 충분한 일조를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건너편 이웃끼리 마주 보는 구조는 주민들간의 교류와 소통을 활발하게 하기 위한 배치였다. 내부는 우물 정자로 꾸며 독특한 설계를 자랑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들어선 타지역의 아파트들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라이탁췬의 입지 조건은 입주자들로 하여금 쉽게 떠나지 못하게 했다. 따이항의 산 중턱에 위치하여 쇼핑가인 코스웨이베이와 학생들이 즐겨 찾은 중앙 도서관과 가깝다. 교통도 편리할뿐더러 주변에 명문 학교도 많이 자리 잡고 있다. 라이탁췬에서 즐기는 빅토리아 하버의 경치는 이 지역민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했다. 그 외의 유명 공영 주택 – 초이홍과 와푸췬 대표적 인증샷 장소로 꼽히는 초이홍(Choi Hung Estate)은 소위 ‘무지개 아파트’로 유명하다. 무지개 색채를 띤 건물 앞에서 많은 이들이 각자만의 개성 있는 포즈로 찍은 사진들이 SNS에 올라오고 있다. 재건축을 앞둔 초이홍 단지에 대해서는 필자가 예전 칼럼에서 다룬 적이 있다. 홍콩섬 남부에 자리 잡은 와푸촌(Wah Fu Estate, 華富邨)도 홍콩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 주거 단지이다. 와푸촌은 배산임수의 지형적 특징으로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입지적 조건이 훌륭하다. 작은 폭포와 워터폴베이 공원이 인근에 있다. 초이홍 아파트와 함께 재건축 지역으로 지정되어 몇 년 후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 참고 자료 > 『香港百年』,雪姬著,创意市集,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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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현 목사의 생명의말씀] 우리 삶에 있는 ‘판타 레이’를 기대하며이 세상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연결된 것들은 서로 영향을 끼치며 흘러갑니다. 이것을 설명한 책이 ’판타 레이’입니다. ‘판타 레이’는 “모든 것은 흐른다”는 뜻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처음 사용한 말입니다. 세상을 구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많은 학자들이 노력하였습니다.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를 밝히다보니, 각 요소가 서로 연결되고 흐르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판타 레이’는 세상의 여러 일들이 서로 얽히며 과학이 발전되는 과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코페르니쿠스, 뉴턴, 커피 등 별개의 요소로 보이는 사건과 인물이 서로 관계를 맺습니다. 생각지 못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세상이 바뀝니다. 이 책은 과학의 본격적인 혁명이 달력 문제로 시작되었음을 말합니다. 과학과 달력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1582년 10월 4일. 그 다음날은 10월 5일이 되어야 하지만, 10월 15일이 됩니다. 열흘이 사라졌습니다. ‘그레고리력’이라 불리는 새 달력이 도입되며 일어난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기원전 46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시행한 율리우스력을 1500년 동안 지켜왔습니다. 하지만 율리우스력이 가진 오차의 누적으로 실제 날짜와 달력의 차이가 열흘이나 생깁니다. 그 결과 부활절이 다른 절기와 충돌했습니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로마 교황청은 10일을 삭제하고 그레고리력을 채택합니다. 하지만 신교 국가들은 교황이 정한 새 달력을 거부합니다. 카톨릭의 영향을 거부하는 것이 달력 채용의 문제로 나타납니다. 열흘의 차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모두 곤란해 할 때, 천문학을 연구하는 코페르니쿠스가 등장합니다. 그의 등장이 천동설과 지동설의 논쟁을 불러일으킵니다. 많은 학자들이 그의 천체 계산법에 관심을 기울이고 연구합니다. 연구 결과를 발표합니다. 마침 인쇄 기술이 싹트는 시기입니다. 연구 결과와 성경이 대량 인쇄되며 널리 퍼집니다. 퍼져 나간 자료는 다시 학술적 논의를 활발하게 만듭니다. 거기에 힘을 더한 것이 커피의 보급입니다. 당시 상류층과 학자들은 포도주를 즐겨 마셨습니다. 항상 술 취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커피가 보급되며, 맑은 정신으로 더 많은 연구를 하게 됩니다. 그렇게 연구하는 사람들이 카페에 모였고 그 카페가 아카데미가 되며, 과학이 더욱 발전됩니다. 전혀 관계 없어 보이는 일들이 서로 연관되고 얽히고 흘러가며 거대한 흐름을 만듭니다. 이 내용이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데, 이후로 더 다양한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책에 다 기록 못한 이야기들은 얼마나 많을까요? 우리의 삶에도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내가 누구를 만났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납니다. 우연히 들은 한 마디가 내 생각을 바꿉니다. 어느 장소에 갔는데 그곳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결혼까지 합니다. 전혀 관계 없어 보이는 일들이 서로 엮이고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며 역사를 만들어갑니다. 이런 일들을 사람들은 우연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라고 말합니다. 저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를 경험하였습니다. 제가 6학년 때, 아버지께서 치료할 수 없는 병에 걸리셨습니다. ‘버거씨병’이라고 하는, 이름도 낯선 병이었습니다. 발저림으로 시작된 통증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발에 피가 통하지 않아 곧 검게 변하고 썩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치료법이 없어, 사지를 절단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 이웃에 사는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병이 낫습니다.” 믿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습니다. 그분을 따라, 가족 모두 교회 다니며 예배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놀랍게도, 아버지의 발 색이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썩었던 피부가 새로 돋아나며 아기 피부처럼 뽀얗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완쾌되었다면서 놀랐습니다. 저와, 가족 모두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경험하며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라며 의아해 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저와 가족이 분명히 겪은 일이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후, 저는 신학교에 가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선교사로 8년 동안 사역하였습니다. 지금은 홍콩에서 목회를 합니다. 아버지의 병 소식을 듣고 찾아와 복음을 전해 주신 한 분의 이야기와 만남이, 저와 제 가족의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판타 레이’를 경험했습니다. 많은 인물과 사건 중, 무엇보다 가장 큰 흐름과 변화는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는 어떤 ‘판타 레이’가 있으신가요? 저는 이 글이 여러분에게 ‘판타 레이’가 되어, 여러분의 인생에 조금이나마 유익한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기도하며 씁니다. 교회에 단 한번 방문하시는 것으로도 ‘판타 레이’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번 한 주도 여러분의 삶 가운데 좋은 영향과 관계가 계속 이루어지며 풍성하고 행복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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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홍콩 안의 태국 마을, 그리고 송크란 축제홍콩에서 태국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곳이 있다. 카우룬시티 사우스월로드(South Wall Road)에 있는 태국촌이다. 튄마선의 송웡토이 (Song Wong Toi)역 B3 출구로 나가 우측으로 몇 걸음이면 다다른다. 이 도로를 중심으로 태국 식당과 상점들이 줄지어 자리 잡고 있다. 비단 사우스월로드뿐만 아니라 주변 곳곳에 태국어 간판들이 보인다. 그 아래에는 태국의 음식, 과일, 분식, 향료, 수공예품 등이 진열되어 있다. 소위 ‘작은 태국’이라 부를 만하다. 태국인들이 카우룬시티에 정착한 이유는? 정부 통계 자료에 의하면 홍콩 내의 태국인은 약 1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중국인 인구 중 2%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중 약 40%가 카우룬시티의 태국 마을에 거주한다. 홍콩 안의 작은 태국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그 역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홍콩의 경제가 비약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태국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는 좀 더 나은 생활에 대한 욕구로 홍콩으로 건너와 신랑감을 구하려는 붐이 일었다. 태국의 화교 중에는 광동성 챠오져우와 샨터우 출신들이 많았다. 이들의 후세들은 챠오져우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참고로 챠오저우는 광동 북부 끝자락에 위치하여 광동어와는 또 다른 방언이 구사된다). 태국의 젊은 여성들 중 언어 소통이 가능한 이들이 홍콩으로 건너와 남편감을 찾았다. 이러한 조류는 198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당시 차오져우인들이 카우룬시티에 대거 거주하였기에 이곳에 자연스럽게 태국촌이 형성된 것이다. 이 일대를 둘러보면 태국 식당과 외에도 챠오져우(潮州) 식당들 역시 곳곳에서 눈에 띈다. 그런데 카우룬시티에 태국 관련 상권이 발달한 것은 지리적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여기서 동남쪽으로 조금만 나아가면 카이탁 공항이 나온다. 많은 태국인들이 비행기에 내려 바로 다다르게 되는 동네가 카우룬시티였다. 이에 의해 80년대 태국에서 온 가사도우미들의 거주지가 되었다. 북쪽으로는 영국, 홍콩, 중국 정부 모두가 관리를 포기하여 ‘삼불관(三不管)’으로 불렸던 구룡성채가 위치했다. 불법 체류자들의 소굴이자 무법천지로 유명했던 곳이다. 한때 수송 인원 세계 3위, 화물 수송 세계 1위에 다다랐던 카이탁 공항과 역시 한때 인구밀도 세계 1위를 기록했던 구룡성채를 인근에 두었던 덕에 태국 상가는 번성기를 누렸다. 지금은 공항 이전 및 구룡성채의 철거로 상권은 예전만 못하다. 하나 태국촌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으며 태국 최고의 축제인 송크란도 매년 4월 개최되고 있다. 홍콩에서 만나는 태국의 송크란 축제 나는 칼럼 작성을 위해 현장을 방문하기 전, 보통 우리 학원의 한국어반 홍콩인들에게 자문을 구한다. 이번 방문지는 태국촌의 송크란 축제라고 했더니 ‘좀 무섭다’, ‘아예 수영복을 입고 가라’라는 말을 들었다. 무섭다고? 올해 송크란 축제가 열리는 기간은 4월 11일부터 13일까지인데, 나는 마지막 날인 13일(일요일)에 현장을 찾았다. 태국촌에 들어서니 곳곳에 총을 든 사람들이 보였다. 이들은 지인들에게, 혹은 행인들에게 총을 난사하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총 안에는 실탄이 아닌 화학명 H2O라는 액체가 들어 있어 사람들의 옷을 흥건하게 만들었다. 음, 그래서 무섭다고 했군.. 송크란(송끄란)은 태국의 설날에 해당한다. 이를 기리는 명절이 송크란 축제인데 4월 중순(보통 4월 13~15일)에 열린다. 송크란 축제 하면 상대방에게 인정사정 없이 물을 뿌리거나 물총을 쏴대는 장면이 연상된다. 이는 액운을 씻고 복을 기원하는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복을 빌어주기 위해 손에 성수를 뿌려주던 전통이 계승, 발전되어 내려온 것이다. 물만 뿌리는 게 아니다! 먹거리가 가득, 공연 및 체험 행사도 홍콩에서의 송크란 축제는 태국촌 건너편에 위치한 카펜터 로드 공원에서 열렸다. 공원을 메운 30여 개의 부스가 관광객을 맞이했다. 대부분 길거리 음식, 과일, 식료품을 파는 먹거리 매장이었다. 그 외에 기념품, 수공예품을 전시한 부스 및 태국 전통 의상을 입어 보는 체험 행사도 마련되어 있었다. 한편에는 대형 부처상과 코끼리상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방문객들이 순서대로 앞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보였다. 또한 다른 한쪽에는 공연 무대도 보였는데, 내가 방문했을 때는 젊은 두 남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독특한 시설은 공원 중앙에 설치된 특설 링이었다. 아마 이 링 위에서 무에타이나 킥복싱 경기가 펼쳐질 모양이었다. 나는 원래 송크란 축제를 방문한 후 인근의 태국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려던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행사장 곳곳에 마련된 먹거리들이 내 시각과 후각을 어지럽혀 계획 수정에 들어갔다. 꼬치 요리와 튀김, 현장에서 제조된 레몬 음료 등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야채튀김 같이 생긴 모양에 작고 마른 새우가 촘촘히 박힌 녀석은 딱 내 취향이었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 물 뿌리기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행사는 오후 2시에 시작되는데, 중간에 휴식 시간을 가지며 45분씩 진행된다고 했다. 물뿌리기 행사에 참여하려면 등록을 해야 한다. 태국인들과 홍콩 현지인들이 하나가 되어 즐기는 정겨운 모습에서 한편으로 부러움도 느꼈다. 우리도 대표적 한국의 전통 축제를 가지고 와서 현지인들과 즐긴다면 무엇이 좋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 참고 자료 > 香港故事,閔捷主編, 三聯書店,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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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현 목사의 생명의말씀] 불편에서 찾는 행복지난 4월 7일부터 넷플릭스서 방영중인 ‘대환장 기안장’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넷플릭스 전체 순위로는 16위. 비영어 프로그램 순위로는 6위. 누적 시청시간은 620만 시간입니다. 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폴, 인도네시아, 홍콩에서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홍콩서도 1위이니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도 많은 분이 보셨겠지요. ‘효리네 민박’ 제작팀이 기안 84를 섭외하였습니다. 기안은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민박집을 만듭니다. 바다에 바지선을 띄우고, 그 위에 숙소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안장은 말 그대로 ‘기안스럽’습니다. 숙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2층 높이까지 클라이밍을 해야 합니다. 숙소 안에서 1층을 내려가려면 봉을 이용합니다. 1층에서 다시 2층은 봉을 타고 올라가야 하고, 화장실은 밖에 있습니다. 침대는 벽에 붙어 있고, 비 오면 그대로 다 젖을 수밖에 없습니다. 밥을 먹기 위해서는 봉을 타고 내려가고, 밥 먹은 뒤에는 다시 봉을 타고 올라갑니다. 혼자 힘으로 올라가지 못하니 밑에서 사람들이 들어올려줍니다. 왜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었을까? 기안은 말합니다. “편하게 들어가는 것이 싫었다” 즉, 의도된 불편입니다. 기안장의 스태프는 세 명입니다. 기안 84와 SNL 크루 지예은. 그리고 BTS의 진입니다. 이들은 이 프로그램으로 처음 만납니다. 처음 만나 어색할 수도 있지만, 불편한 민박집을 운영하며 빠른 시간 안에 친해집니다. 이 프로젝트에 손님으로 지원한 사람들은 3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이들 중 선발된 사람들이 민박을 하며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카이스트 학생. 호주서 유학한 여자 목수. 암 걸린 아버지가 아들 둘과 추억을 만들기 위해 오기도 합니다. 처음 기안장을 보고, 사람들은 상식과 다른 모습에 놀랍니다. 입구부터 불편합니다. 그러나 불편하지만 아무도 불평은 하지 않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이 프로그램을 보며 인상 깊었던 것은, BTS의 멤버 진이었습니다. 그는 월드 스타임에도 소탈한 모습을 보입니다. 오히려 기안보다 더 기안답습니다. “나는 오히려 불편하기 때문에 여기에 지원했다”며 누구보다 열심히 짐을 나르고, 밥을 만듭니다. 처음에는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며 불평도 합니다. 그러나 곧 수용합니다. 더 나아가 그 상황을 즐깁니다. 완전히 동화되어 기안보다 더 기안다운 모습을 보입니다. 너무 불편해서 손님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기안이 흔들립니다. “클라이밍 말고 미끄럼틀을 타고 올라오게 할까?” 그러나 그는 오히려 기안을 말립니다. “흔들리면 안 돼. 타협하면 안 돼. 그러면 기안장이 아니야” 그가 중심을 잡아주며 기안장이 기안장다운 모습을 유지하게 됩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이집트의 노예로 살던 백성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자유인이 되게 하시고,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가나안은 좋은 땅이었습니다. 그곳을 준비하신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먼저 정찰해 보라며 정탐꾼을 보내십니다. 12명의 정탐꾼이 몇 달에 걸쳐 그 땅을 조사합니다. 한 사람이 들 수 없을 만큼 크게 열린 포도를 들고 돌아옵니다. 가나안을 돌아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열 명은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강해 보인다. 우리는 그들과 싸우면 다 지고 포로가 될 것이다”라고 합니다. 두 명은 “하나님이 주신 좋은 땅이다. 그곳에 가면 풍성하고 좋은 것이 많다”라고 합니다. 같은 것을 봤지만 상반된 주장입니다. 사람들은 부정적인 보고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 결과, 그들은 40년 동안 광야를 떠돌다 가나안에 들어갑니다. (민수기 14:11-25절) 우리 인생은, 기안장과 같습니다. 낯선 사람들을 만나 관계 맺으며 친해집니다. 각자의 사연들도 있습니다. 함께 지내며, 인생을 살며 불편한 일을 만납니다. 불평할 것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왜 이렇게 만든 거야?’ 원망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불평할 일만 있을까요? 모노레일을 타고 기안장에 가면서도 넓게 펼쳐진 바다를 보며 감탄합니다. 지붕이 없어 비를 맞을 수밖에 없는 침대는, 밤하늘 별을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낯선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하고, 눈물 흘립니다. 불편한 일도 있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니 그것이 오히려 장점입니다. 불편을 받아들이고, 좋은 것을 찾고, 서로 응원하고 추억을 만듭니다. 그 결과, 출연자 모두 좋은 기억을 갖고 돌아갑니다. 하나님의 의도된 불편이 우리 인생에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이 풍성해지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결정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받아들이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격려해 주십니다. “흔들리거나 타협하지 말고. 내가 도와주니 함께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계속 만들어가자” 불편을 불평하기보다, 그것을 만든 존재의 의도를 파악하는 삶.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이번 한 주도 여러분의 삶에 새로운 일들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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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현 목사의 생명의말씀] 봄에 생각하는 죽음과 부활2012년 기준, 대한민국의 한 해 사망자 수는 대략 20여만 명입니다(2024년 현재 358,400명). 통계청이 발표한 사망 원인 1등은 암입니다. 1년에 8만여 명이 암으로 목숨을 잃습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많은 사망 원인은 무엇일까요? 자살도, 당뇨병도 아닙니다. ‘사인 불명’입니다. 사망을 했지만 원인을 모르는 경우, 의사는 ‘사인 불명’으로 기재합니다. 그러면 국가는 원인을 밝히기 위해 검시를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인을 밝힐 필요도 없고 밝히려 하지도 않은 채 장례를 진행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게 사인 불명인 사람이 2만 8천여 명입니다. 왜 원인을 밝히지 않을까요? 혼자 사는 사람. 경제적으로 궁핍한 사람. 학력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원인을 밝히지 않아도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사람들인 것이죠. 가정폭력과 아동 학대로 인한 사망이 이 안에 얼마나 포함되어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통계를 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은 법의학자인 이 호 교수가 쓴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에 나옵니다. 죽음에 대한 입장은 다양하지만, 내세의 유무에 따라 주장하는 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다. 기계의 전원을 내리는 것과 같다 2) 죽으면 내세가 있다. 죽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는 다르더라도,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살아 있을 동안에 잘 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세가 없다는 사람은 내세가 없으니 지금 잘 지내야 한다고 합니다. 내세가 있다는 사람은 내세를 생각하며 지금 잘 지내며 준비해야 한다고 합니다. 출간된 죽음학 책을 많이 읽어보았습니다만,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주장과 결론에 이르는 것을 봅니다. “죽음 뒤에 어떻게 될지 우리는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은 살아있는 동안의 삶이다. 그러므로 현재를 충실하게 잘 살아야 한다” 죽음에 대해 생각할수록, 현재를 잘 살수 있도록 하는 동력이 된다는 주장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인생의 방향이 어떤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고, 그와 관련된 책도 많이 나옵니다. 현대 사회서 죽음은 우리 생활과 분리되었습니다. 돌아가시는 모습을 직접 보기는 어렵습니다. 돌아가신 이후에도, 시신을 보지 못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어떤 경제학자들은, 죽음과 삶을 분리시킬수록 사람들의 소비가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동시에, 죽음 자체가 하나의 상품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종합병원에서 가장 흑자를 내는 곳은 장례식장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죽음이 가장 큰 수입원입니다. 저는 장례사역을 맡으며 국가적인 장례도 했었고, 가족 모두 연락을 끊고 돌아가신 분은 저 홀로 장례식을 한 경우도 있습니다. 임종을 맞이하시는 분을 마지막까지 옆에서 보기도 하였습니다. 다양한 죽음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이기지 못합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무기력합니다. 항상 죽음에 패배하여, 끌려갑니다. 슬픕니다. 단절과 절망이 우리를 짓누릅니다.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박탈당한 채, 이제는 ‘이 세상’에 없음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죽음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기독교는 죽음의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사람의 죽음이 기독교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십자가는 가장 무서운 벌이었습니다. 40kg이상 되는 통나무를 지고 언덕을 올라갑니다. 손과 발에 못을 박습니다. 체중을 이기지 못해 몸이 쳐지면 횡경막이 눌리고, 숨을 쉴 수 없습니다. 극심한 탈수와 고통 속에 며칠동안 매달려 있다 죽습니다. 예수는 아무 잘못 없었지만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죽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면서도 사람들을 용서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끝까지 보여주셨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죽은 그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아무도 이기지 못한 죽음을 이긴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가 부활함으로, 죽음이 죽었습니다. 절망이 사라졌습니다. 단절이 회복되었습니다. 죽은 뒤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지만, 예수가 살아나서 그 모든 일들을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부활을 기념합니다. 기독교인은 죽음에 대해서 가장 깊이 생각하지만,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생각하지만, 죽음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결국 삶을 위해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지, 죽기 위해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돌아오는 주일인 4/20은 부활절입니다. 교회서 부활을 기념하며 예배를 드립니다. 연합예배도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들이라도, 이 날 예배에 참여하여 기쁨을 함께 나눠보시면 어떨까요? 죽음을 생각하며 인생이 더욱 의미있어지고, 맛있는 계란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따뜻해지는 봄날. 우리가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차가운 죽음을 이기고 따뜻한 생명을 주신 예수님이 부활하신 부활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어둠이 아니라, 부활의 기쁨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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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용 변호사의 법률칼럼] 홍콩의 민사소송 쉽게 알아보기 1편홍콩에서 민사소송에 관련해 미리 알아두면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을 적어보기로 한다. Pleadings 홍콩에서 소송을 제기하고 법정에서 양측의 변호인이 변론을 시작하기 전에,Pleadings라는 중요한 절차가 존재한다. 이는 쉽게 말해 법정에 출석하기 전에 양측이 서로의 주장을 서면으로 주고받는 과정이다.이 절차에 포함되는 주요 서류로는 Writ(소장), Statement of Claim(청구서), Defence(항변서),그리고 Reply(답변서) 등이 있다. 특히 소장의 경우,법원에 접수하는 단계와 접수 후 피고에게 송달하는 두 단계로 나뉜다. 흥미로운 점은 시효가 만료되기 이전에 소장을 법원에 접수하면 시효가 정지된다는 사실이다.즉, 접수 당시 시효가 아직 만료되지 않았다면, 이후 시효가 지난 후에 이루어지는 송달도 유효하게 인정된다. 예를 들어,시효가 2024년 12월 31일로 만료되는 사건에서 원고가 2024년 12월 30일에 소장을 작성하여 법원에 접수한 경우,비록 시효가 이미 끝난 2025년 6월 1일에 피고에게 송달되더라도 피고의 청구권은 여전히 유효하다.이는 소장이 법원에 접수됨으로써 시효가 정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법원에 접수된 소장의 효력이1년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송달은 소장을 접수한 날로부터 1년 이내에 완료해야 한다.만약 이 기한을 놓치게 되면, 원칙적으로 사건을 다시 새롭게 접수해야 한다.예를 들어, 시효가 2024년 12월 31일인 사건에서 소장의 접수가 2024년 12월 30일에 이루어졌지만 송달이 1년이내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2025년 12월에는 이미 소멸시효가 완료되었기 때문에 법원에 다시 소장을 접수하더라도 피고가 시효기간이 만료되었다는 이유로 이의를 제기하거나 소송 무효를 주장할 가능성이 크다. Pleadings의 제출기한 홍콩의 소송 절차에서는 모든Pleadings이 상대방에게 정해진 기한 내에 제출되어야 한다는 엄격한 규정이 존재한다. 이러한 규정은 소송의 원활한 진행과 시간 준수를 보장하기 위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독특한 규정 중 하나는 매년 8월을 'Summer Vacation'으로 간주하여 고등법원 사건의 Pleadings기한 산정 시 8월을 제외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여러 예외적인 조항들이 존재하므로,각 사안에 따라 사전에 법률 자문을 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피고가 외국인/기업일경우 홍콩에서 소송에 소요되는 법률 비용은 다른 국가×지역들에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이러한 높은 비용은 소송의 남발을 방지하고 무고한 피고를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그 중 하나가 바로 원고가 외국인 또는 외국 기업일 경우, 혹은 홍콩 기업이라 하더라도 피고가 승소했을 때 원고가 소송 비용을 지불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될 때 법원이 원고에게 예상되는 피고의 소송 비용을 미리 법원에 예치하도록 명령할 수 있는 제도이다. 이러한 예치 명령의 필요성을 판단하기 위해 법원이 고려하는 주요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1) 원고 회사가 명목상으로만 최소한의 자본금을 유지하고 있는 회사인지 여부; (2) 원고 회사가 특정 거래 또는 분쟁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인지 여부; (3) 원고 회사가 별도의 공식적인 등기 주소 없이 Company Secretary의 주소만을 사용하고 있는지 여부;그리고 (4) 원고 회사가 실질적으로 경제적 가치 있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지 여부 등이 포함된다. 실제로 이러한 소송 비용은1년 이상 지속되는 민사소송의 경우 적게는 수십만 홍콩 달러에서 많게는 수백, 수천만 달러에 이를 수 있으며, 이는 상당한 재정적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원고를 대상으로 이러한 예치 명령이 자동으로 내려지는 것은 아니다. 우선 피고의 신청이 있어야 하며,법원은 원고의 승소 가능성, 피고의 주장과 그 합리성 등을 면밀히 검토한 후에야 원고에게 예치금을 명령할지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따라서 외국인 또는 외국 기업 원고라 하더라도 미리 과도한 걱정을 할 필요는 없지만,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그 합리성을 신중히 재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 글에서는 송사와 관련된 다른 중요한 절차들,특히 송달과 관련된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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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식민지 시절의 흔적을 찾아서 - 사이완 유적 여행사이완은 홍콩섬의 북서부 지역을 말한다. 사이잉푼에서 케네디타운에 이르는 지역이다. 영국 식민지 시기의 행정 단위는 사이완구였는데, 홍콩에서 가장 오래된 구역이다. 사이완은 예전에 소위 ‘혐오 업종’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기도 했다. ‘혐오 업종’이란 기생집, 매춘 등을 의미한다. 특히 섹통추이(지금의 홍콩대학 인근)는 유명한 사창가였다. 하나 1935년 정부에 의해 매춘이 금지되면서 지금은 평범한 주택가로 변모되었다. 사이완 일대에는 대영 제국이 홍콩을 식민지화한 이후 많은 영국인들이 거주하였다. 사이잉푼에는 군대도 주둔했었다. 식민지 색채의 모습을 띤 건축물들이 지금까지도 적지 않게 남아 있는 이유이다. 따라서 홍콩 식민지 역사를 이해하고 그 흔적을 찾아다니는 여행지로 사이완은 최고의 장소라 할 수 있다. 로판 템플 – 중국 건축 장인의 시조 로판을 기리다 로판(魯班)은 기원전 507~444년에 살았던 인물로 건축업, 운수업, 조선업의 시조로 불리는 장인이다. 현대인들에 의해 신격화되어 신봉되고 있다. 로판 템플(Lo Pan Temple)은 1888년 이 위대한 장인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는데, 1928년 현재의 위치에서 재건되었다. 매년 음력 6월 13일에는 성대한 기념 의식이 펼쳐진다. 이날이 되면 많은 신도들이 찾아와 참배한다. 내부에는 정교하게 들어선 벽면과 조각상, 벽화들로 꾸며져 있다. 벽화는 총 26폭이나 된다. 로판 템플은 1급 역사 건축물로 등재되어있다. 주소: 15 Ching Lin Terrace, Kenney Town 사이잉푼 커뮤니티 컴플렉스 – 홍콩3대 귀신의 집 1892년에 지어져 1급 역사 건축물에 이름을 올린 사이잉푼 커뮤티니 컴플렉스(Sai Ying Pun Community Complex). 홍콩에서는 보기 드문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재료는 현지 조달되었으며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건축물이 독특한 외관을 뽐낸다. 그런데 홍콩인들에게는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장소로 더 유명하다. 이유는 홍콩 3대 귀신의 집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사이잉푼 커뮤니티 컴플렉스는 공포스럽고도 비극의 역사적 현장이었다. 이곳의 전신은 정신병동이다. 환자 한 명이 머리를 박아 자살한 사건이 있었고, 일제 점령기에는 일본군에 의해 형장으로 사용되었다. 지하는 시체 안치실이었는데, 시신들은 병원 앞에 위치한 조지 5세 공원의 공동묘지로 옮겨졌다. 이후 여러 귀신 이야기가 이곳을 배경으로 흘러나왔다. 원래 공포스러운 역사의 현장이었는데다가, 1971년부터 1998년까지 빈 건물로 남아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해 냈다. 이후 1998년 홍콩 정부는 흉물스럽게 남아있던 건물을 재건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업그레이드시켰다. 주소: 2 High Street, Sai Ying Pun 조지 5세 기념 공원 - 홍콩 유일의 식민지 색채를 지닌 공원 조지 5세 기념 공원은 사이잉푼 커뮤티니 컴플렉스의 바로 앞에 위치한다. 쉬면서 한담을 나누고 있는 마을 주민들,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노인들, 길을 따라 산책하는 이들의 모습은 어느 공원과 다를 게 없다. 하나 조지 5세 기념 공원은 홍콩에서 유일하게 식민지 색채를 보유하고 있는 빈티지 공원이다. 조지 5세 공원으로 올라가는 지그재그 형태의 계단길은 운치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에 나올 법한 배경으로 손색이 없다. 실제로 고천락, 오언조 주연의 영화 ‘단신남녀’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이 영화는 2편까지 나왔다). 공원을 둘러싼 돌담길을 걷다 보면 거대한 고목 한 그루를 발견하게 된다. 공원의 상징과도 같은 반얀트리이다. 나무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 사이로 조지 5세 기념 공원임을 알리는 금속 표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주소: Hospital Road, Sai Ying Pun 그리고 사이완 일대의 기타 역사 건축물들 올해 새로 광복사와 함께 법정 고적에 등재된 구찬육병원도 사이완 일대에 위치한다. 이 두 곳은 얼마 전 칼럼에서 소개한 바 있다. 구찬육병원은 홍콩 최초의 중국인 전용 산부인과이다. 구찬육병원에서 서쪽으로 나 있는 좁은 경사길의 계단을 따라 올라 가면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건축물이 등장한다. 웨스턴 공립 진료소(West Point Chinese Public Dispensary)인데 2급 역사 건축물이다. 페스트가 창궐하던 1909년에 건립되었다. 당시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감염된 환자들을 치료한 장소이다. 1930년 이후에는 구찬육병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들의 기숙사로 용도 변경을 하였다. 지금은 문화고적자원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물 앞에는 독특한 형태의 빨간색 타원형 우체통이 눈에 띈다. 이제는 홍콩에서 찾아보기 힘든 영국 식민지 시대의 우체통이다. 선명한 붉은색 외관에 왕관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 ER(Elizabeth Regina의 축약)의 표식이 새겨져 있다. 홍콩의 식민지 역사를 상징하는 희귀한 유산 중 하나이다. < 참고 자료 > 『香港百年』,雪姬著,创意市集,2023 『香港·點變』,余震宇,萬里機構,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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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떡이라 부르리까? 홍콩의 전통 길거리 베이커리먹을 복을 갖고 태어난 홍콩인들 홍콩 사람들은 먹을 복을 갖고 태어난 거 같다. 중국 최고 요리 중 하나인 광동 요리의 본 고장이며 아시아 으뜸이라는 중국 음식, 더 나아가 세계의 미식들도 만나볼 수 있다. 사람들을 뚱보로 만들 위협 요소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건만, 그에 비해 날씬한 홍콩인들을 보면 신기할 정도이다. 이것도 또 하나의 복이라면 복일 것 같다. 어쨌든 홍콩의 먹거리는 실로 다양하고 풍부하다. 오늘 소개하는 음식은 홍콩의 전통 길거리 베이커리이다. 60, 70년대에 홍콩에 이민 온 중국인들이 길거리와 골목에 팔던 길거리 음식이다. 이중 대표적인 몇 가지를 추천한다. 붓짜이꼬우 (缽仔糕) 붓짜이꼬우에는 홍콩인들의 추억이 담겨 있다. 기원은 약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동일을 나가는 인부에게 쌀미음으로 만든 떡을 사발에 담아 주어 허기를 채우도록 한 것에서 유래가 되었다. 청나라 때 쓰여진 ‘태산현지(台山縣誌)’에 기록된 내용이다. 붓짜이꼬우에서 ‘缽’은 사발을 뜻한다. 오늘날의 붓짜이꼬우는 사발이 아닌, 직경 10센티미터 크기의 작은 컵 케이크의 형태를 띠고 있다. 용기에 담긴 떡을 꼬치로 꽂은 후 쏙 빼내어 먹는다. 주 재료는 찹쌀, 팥, 설탕이다. 갈색과 흰색의 두 종류이다. 흑설탕을 쓰면 갈색이 되고, 백설탕이 들어가면 흰색이 된다. 최근에는 녹차 향이 가미된 새로운 맛이 등장했다. 서민 음식으로 출발하였기에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찹쌀을 뭉개어 떡과 같이 만들고, 팥은 끓여서 걸쭉하게 한다. 그리고는 설탕을 넣어 함께 섞어 반죽을 한다. 찌고 나서 작은 케이크 받침 용기에 담으면 완성된다. 붓짜이꼬우는 70, 80년대에 길거리에서 아이들이 가장 즐겨 먹는 간식이었다. 지금도 홍콩의 노점 베이커리에서 판매하고 있다. 이번주 칼럼의 주제로 정한 후 우리 학원의 한국어 수업 때 선호도를 알아보고자 했다. 수강생 중 한 명인 도리스 씨는 ‘이거 어제도 코스웨이베이 지나가다 사 먹었어요!’라 했고, 옆에 앉은 보니 씨도 ‘좋아하는 길거리 음식으로 가끔씩 즐긴다’고 했다. 나 역시 맛이 궁금하여 코스웨이베이의 길거리 떡집(베이커리)을 찾았다. 가격은 1개에 12불이었고 3개를 사면 27불이었다. 음.. 뭐랄까, 씹히는 맛이 푸딩과 떡의 중간 정도? 그리고는 달달한 맛이 입안을 채웠다. 붓짜이꼬우 안 곳곳에 자리잡은 팥덩어리가 입 안에서 톡톡 터지는 재미도 있었다. 박통꼬우(白糖糕) 내가 방문한 코스웨이의 전통 떡집은 ‘시대두업(時代豆業)’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타임스퀘어(중국어명 ‘시대광장’) 인근에 있고, 콩이나 팥을 주 원료로 한다는 정보를 알려주는 상호명이다. 나는 이곳에서 붓짜이꼬우 외에 비슷한 유형의 유명한 박통꼬우와 홍따우꼬우도 같이 봉지에 담아왔다. ‘박통’은 백설탕을 뜻한다. 박통꼬우는 광동의 슌더 지방에서 유래되었다. 전통 제조법은 찹쌀가루를 생으로 갈아 발효시킨다. 여기에 설탕물을 넣어 30분 정도 찐다. 완성품은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다. 먹어 보니 식감이 스폰지 케이크와 우리의 술떡 중간 어디쯤 되는 것 같았다. 이름에서 연상되는 공포의 설탕 덩어리 맛은 아니었다. 이것저것 들어가지 않아 담백하고 깔끔했다. 홍따우꼬우 (紅豆糕) 가게 주인에게 제일 잘 팔리는 것을 하나 달라고 했더니 추천해준 것이 홍따우꼬우였다. ‘홍따우’는 팥을 의미한다. 갈색 사각형의 젤리(?) 모양을 띤 내용물 안에 팥 덩어리가 듬성듬성 박혀 있다. 홍따우꼬우는 외관상으로 딱 봐도 예상되는 그 맛이다. 식감은 살짝 쫄깃함이 느껴지는 물컹거림에 맛은 달달하니, 무난하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길거리 음식이다. 유명한 전통 길거리 베이커리 전통 길거리 베이커리는 일반적으로 테이크 아웃점으로 운영된다. 오늘 오전에 들른 코스웨이베이의 ‘시대두업’은 유명하다며 홍콩 수강생이 추천해 준 곳이다. 외관은 허름했지만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된 가게였다. 20종 가까이 되는 전통 베이커리를 판매하고 있었다. (G/F, 1 Canal Road East, Causeway Bay) 타이포의 유기차과(有記茶果)는 갈색의 붓짜이꼬우만을 취급하고 있다. 하나 팥이 들어간 것과 안 들어간 것을 선택할 수 있다. 붓짜이꼬우 원래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팥이 없는 것으로 주문해 보자. (CFS 20, Tai Po Complex, 8 Heung Sze Wui St, Tai Po) 신흥융식품(信興隆食品)은 구룡 토카완에 위치한다. 모두 수제로 만들며 70여 년 역사를 지닌 붓짜이꼬우가 유명하다. 갈색이 유명하지만 흰색 붓짜이꼬우에는 야자 성분이 들어가 독특한 풍미를 자랑한다. 오픈라이스 맛 평가에는 먹고 웃은 사람이 25명, 운 사람은 없었다 (107-109 Ma Tau Wai Rd, Hok Yuen) 사이잉푼의 탁월식품병점(卓越食品餠店)은 중국식 전통 베이커리를 전문 취급한다. 그중 시그니쳐는 붓짜이꼬우다. 신흥융식품과 탁월식품병점은 일요일에 휴무이다. (G/F, 183 Queen's Road West, Sai Ying Pun) < 참고 자료 > 香港尋味,Alison Hui, 创意市集,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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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현 목사의 생명의말씀] ‘지금’과 ‘나중’의 싸움입니다우리는 언제나 갈등 속에 살아갑니다. 그 갈등을 요약하면 이것입니다. ‘지금’ 보상을 받을 것인가? ‘나중에’ 보상을 받을 것인가? 즉, ‘지금’과 ‘나중’의 싸움입니다.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데이비드 이글먼/김승욱 역)에 나오는 내용입니다.미국에서 서브프라임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사람들이 집을 샀습니다. 대출받은 사람들의 80%가 변동금리였습니다. 이자가 오를 것은 ‘나중’입니다. ‘지금 당장 원한다’는 마음을 이용한 상품입니다. 그 대가는 비쌌습니다. 변동금리나 이자가 올랐습니다. ‘나중’을 생각하지 않고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높아진 금리를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100만 채의 집을 압류당했습니다. 엄청난 경제 손실과 충격이 일어났습니다.우리도 비슷합니다. “지금 구입하지 않으면 할인 혜택을 받지 못합니다”라는 광고가 가득합니다. 5만 원 짜리를 3만 원에 샀다고 좋아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아예 지출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기업은 ‘지금’ 지갑을 열어야 판매할 수 있음을 잘 압니다. 다양한 전략으로 소비자를 공략합니다. ‘지금 당장’이라는 말은 아주 특별한 힘을 갖습니다. 만족을 뒤로 미루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학생들이 공부보다 게임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공부는 ‘나중에’ 보상을 얻지만, 게임은 ‘지금’ 보상을 얻기 때문입니다.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즉각적인 보상을 선택할 때 우리의 뇌 중 감정에 관여하는 부위가 크게 활성화됩니다. 반대로 미래에 더 높은 보상을 받는 선택을 할 때 고등 인지기능과 신중한 사고를 담당하는 부위가 활성화됩니다. 계속 ‘지금’ 보상을 얻는 것만 따라가면, 깊게 사고하지 못하고 감각적으로 살아갑니다. 인지기능이 떨어집니다. ‘지금’에만 만족하다 보면 우리의 뇌가 망가집니다. 세상은 그것을 노립니다. 더 쉽게 지갑을 열기 때문입니다.돈이 없어도 ‘지금’ 물건을 살 수 있습니다. 신용카드가 있으니까요. 더 극단적으로 술, 도박, 마약 등이 ‘지금’ 우리를 만족시키기 위해 유혹합니다. 반면, ‘나중에’ 더 좋은 보상을 생각하며 신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성숙합니다. 실수가 적습니다. 감정에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언제나, 악마는 먼 미래에 우리 영혼을 가져가는 대가로 지금 우리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합니다.성경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공개적으로 활동하시기 전,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매우 배고픈 상태입니다. 이때 사탄이 찾아와 유혹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태복음 4:3) 자기가 돌을 떡으로 만들어 갖다주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 배고프지? 너 할 수 있잖아? 돌로 떡을 만들어 먹어. 지금 배를 채울 수 있잖아?”라는 유혹입니다. 가장 힘들 때. 즉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유혹은 얼마나 강렬합니까? 이기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태복음 4:4)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지금’ 당장 굶주린 배를 채우며 만족하는 삶이 전부가 아님을. 하나님 나라가 있고, 그것이 더 큰 만족과 보상임을 말씀하십니다. 동물처럼 감각적으로 ‘지금’ 당장 반응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답게 신중하고 깊이 생각하며 사는 법을 알려주십니다. 악마의 유혹을 이김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십니다.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내세와 천국을 오해합니다. ‘현재를 무시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팔아먹는 사기 아닌가?’ 의심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내세와 천국은, 보상이 ‘나중에’ 이루어지지만, 분명히 이루어질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으로 ‘지금’만의 보상을 꿈꾸며 비이성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바른 생각을 하며 살도록 돕습니다. ‘지금’만을 생각하도록 하는 세상에 저항하며 ‘나중’도 있음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래서 삶에 균형을 잡도록 하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그것이 종교의 역할이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과 내세의 유익입니다.기독교인은 예수님처럼 지금 배를 채우라는 유혹을 이기며 살아갑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교회는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지금’에 만족하며 살기 원하십니까? 아니면 ‘나중’도 있음을 알고 유혹을 이기며 살기 원하십니까?우리는 언제나 ‘지금’과 ‘나중’의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다. 이 싸움의 본질을 잘 기억하고, 싸움에서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저도, 우리교회 성도들도 여러분을 응원하고 여러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번 한 주도 평안하십시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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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현 목사의 생명의말씀] 편하게 거짓말 해도 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4월은 만우절로 시작합니다. 만우절의 유래를 찾아보니, 다양합니다. 그 중, 프랑스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명합니다. 1564년까지 사람들은 4월 1일을 새해로 여겼으나, 프랑스 국왕 샤를 9세가 공식적으로 새해 첫날을 1월 1일로 변경했습니다. 이 소식을 모르고 여전히 4월 1일에 축제를 벌인 사람들을 '4월의 물고기(poisson d'avril)'라고 부르며 조롱하던 풍습에서 만우절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자료를 찾아보니, 유래는 각각 다르더라도 공통점이 보입니다. 그 공통점은, 중세 유럽의 달력 변경입니다. 왕이 달력을 바꾸면 귀족이나 권력가들은 빠른 정보로 바뀐 날을 알았습니다. 평민이나 글을 모르는 사람들은 날짜가 바뀐 것을 몰랐습니다. 만우절은 그런 사람들을 비웃으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수 세기에 걸쳐 널리 퍼지고 발전하며, 거짓말과 장난이 허용되는 특별한 날이 되었습니다. 남을 비웃기보다, 같이 웃고 즐기며 하루를 보내는 날로 발전되었습니다.제 어릴 때 만우절 기억을 더듬어보았습니다. 옆 반 친구들과 아예 반을 바꿔, 수업 시간에 들어오신 선생님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책상을 칠판 반대 방향으로 돌려 수업을 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지나치지 않은 장난. 말 그대로 ‘짓궂은’ 장난으로 서로 웃으며 지냈습니다. 바쁘고, 힘든 삶에서 장난과 웃음으로 받으며 잠깐의 여유를 누리던 기억들입니다.고대 왕들은 동서를 막론하고 곁에 광대(서양에서는 피에로)를 두었습니다. 광대는 왕에게 웃음을 주었습니다. 동시에, 왕을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왕이 듣기 싫은 소리를 웃음에 녹여 전달하였습니다. 왕은 광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통치를 객관적으로 봅니다. 쓴 소리를 받아들입니다. 그것이 광대의 역할이었습니다. 광대와 만우절이 특별히 관계가 있지는 않습니다만, 바쁘고 힘든 삶 속에서 잠깐의 여유를 가지며 숨통을 틔우는 것. 누가 들어도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며 한번 웃고 지나가는 것은 같은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만우절도 광대도 분명한 규칙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을 현혹해서 사회에 혼란을 끼쳐도 안 됩니다. 누구에게 피해를 주어도 안 됩니다. 모두 같이 웃고, 넘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속된 표현으로 ‘웃자고 한 일에 죽자고’ 덤벼도 안 됩니다. 웃음을 받아주지 못하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마니까요.또 하나의 규칙은, ‘그래도 여유가 있을 때 만우절도 즐길 수 있지’입니다. 터무니없는 만우절 거짓말도 받아줄 수 없을 만큼 여유가 없으면, 만우절을 즐기지 못합니다. 광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광대가 하는 풍자와 조롱을 받아주는 왕은 좋은 왕입니다. 여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광대가 풍자할 때, 듣기 싫다고 광대의 목을 치는 왕이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웃음은 사라지고, 여유는 없어집니다. 항상 긴장된 상태로 살던 백성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저항합니다. 반란이 일어납니다. 언제나 그런 흐름으로 진행되었음을 역사가 보여줍니다. 슬픈 일이지요.지금 우리가 바로 이런 슬픈 시대, 슬픈 일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미얀마에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한국은 산불 때문에 많은 분들이 소중한 생명을 잃었습니다. 많은 분이 집과 재산을 잃고 피난처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불은 껐지만, 복구는 요원합니다. 미국은 어떻습니까? 홍콩은 어떻습니까? 여러 나라의 뉴스를 봅니다. 좋은 소식을 찾기 힘듭니다. 세계적으로 여유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경제적 위기, 갈등과 긴장이 점점 심해집니다. 거짓말을 즐기지 못합니다. 만우절이라고 농담했는데, 괜히 타박을 받습니다. 웃기 위해 거짓말을 하면, 거짓말을 했다고 고소하는 일이 일어나는 세상입니다.“지금 이런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나?”우리 삶을 이 한마디가 보여줍니다. 성경의 잠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잠언 15:13)진정한 즐거움과 웃음으로 얼굴이 빛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근심에 싸여 어두운 사람이 있습니다. 유머는 여유에서 나옵니다. 여유가 생기니 보이지 않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보니 새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여유가 없으면 유머도 사라지고, 항상 긴장합니다. 얼굴이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많은 학자들은, 시답잖은 이야기처럼 보이는 말을 나누며 편하게 웃는 것이 긴장을 푸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저는 편하게 거짓말해도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긴장을 풀고, 서로를 보며 웃으며 비난과 공격을 그치는 날이 계속 되기 원합니다. 제가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할 때 “목사가 거짓말하고, 나쁜 사람이네”라며 비난하지 말아 주세요. 그저 크게 한 번 웃어주시면 됩니다. 편한 관계를 맺으며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을 함께 맛보기 원합니다. 그렇게 하라고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긴장하고 바쁘고 여유 없을수록, 우리는 의도적으로 여유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교회는 언제나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최근에 누구나 편하게 드시라고 커피도 많이 준비해 두었습니다. 달콤한 믹스커피와 교제를 나누시며 쉼을 누려보세요. 여러분의 얼굴이 빛나는 한 주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