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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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칼럼] 누가 사랑이 달콤하다 했는가 - 박완기 홍콩법정변호사요즘 아끼는 동생 변호사들이 줄줄이 결혼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 한창 연애 중이다. 청첩장을 주겠다며 마주 앉은 자리에서 둘은 자꾸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 눈빛을 보는데 17년 전 내가 아내를 처음 바라보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는 불이었다. 나는 식사 내내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사랑의 모습은 하나가 아니다. 그들의 사랑이 입 안에서 톡 쏘는 달콤한 칵테일이라면 17년을 함께한 우리의 사랑은 빈티지를 더해가는 레드 와인이 되었다. 처음의 화려한 단맛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묵직한 향과 깊이가 들어찼다. 좋은 와인이 그러하듯 세월을 견딘 만큼 향은 길어지고 끝맛은 오래 남는다. 식은 것이 아니다. 다른 모양으로 깊어진 것이다. 그러나 혀로 닿지 않는 사랑도 있다. 마시는 순간이 아니라 다 비운 뒤에야 목이 메는. 사랑의 향이 깊어지는 동안 몸은 정직하게 세월의 무게를 받아내고 있다. 결혼식 참석차 서울에 들렀다. 핑계가 하나 더 있었다. 5월 들어 일이 몰려 잠을 설쳤더니 오른쪽 귀 아래 림프절이 퉁퉁 부었다. 마흔 중반. 이제는 못 자고 버티는 재주가 없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보시더니 한숨을 내쉬셨다. “병원에 같이 가자.” 진료를 받고 피를 뽑고 약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 둘이서만 보낸 시간이 얼마 만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늘 손자들이 곁에 있었고 아버지와 함께했다. 이제 아들이 오십을 바라보는데도 어머니 눈엔 나는 여전히 어린 아들이다. “잘 자고 잘 먹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운동도 하고 산책도 하고. 너무 걱정 말고 기도 많이 하고.” 어머니의 긴 주문이 이어졌다. 어릴 적엔 잔소리였다. 이제는 가슴에 새겨지는 말이다. 잔소리는 늙지 않는다. 다만 듣는 귀가 자랄 뿐이다. 칠십을 훌쩍 넘긴 어머니의 건강도 예전 같지 않다. 그래서 나도 같은 말을 돌려드렸다. “어머니도 건강 챙기세요. 고기 좀 드시고 잠도 잘 주무시고 무리하지 마시고.” 서울에 오면 꼭 들르는 곰탕집이 있다. 부모님과 마주 앉았다. 식사 도중 어머니가 당신 그릇의 고기를 내 그릇으로 옮기셨다. 그렇게 고기 드시라 했건만 그 말은 어머니 귀에 닿지 않은 모양이다. “이제 남 그만 챙기시고 어머니를 챙기세요.” 나는 도로 옮겼다. 허허 웃으시더니 고기는 다시 내 그릇으로. 젓가락으로 오가던 그 몇 점. 사랑은 그렇게 그릇과 그릇 사이를 끝없이 오갔다. 누구의 그릇에도 끝내 머물지 못한 채. 고기를 다시 밀어 넣으며 나는 다시 깨닫는다. 내리사랑은 거슬러 올라가는 법이 없다는 것을. 자식은 그저 받기만 하는 자리라는 것을. 식사 후 홍콩으로 돌아가는 길. 인천공항 게이트로 걸어가는데 카톡이 울렸다. “아덜 생각하면 늘 가슴이 시려옵니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핸드폰 스크린을 한동안 쳐다봤다. 어머니는 나를 생각하며 시리다는데 나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시렸다. 우리는 같은 추위를 서로 다른 쪽에서 앓고 있었다. 답장을 쓰다 지웠다. 결국 하트 하나만 보냈다. 누가 사랑이 달콤하다 했는가. 사랑은 시린 것이다. 아리게, 날카롭게. -
‘소문의 낙원’을 찾으시나요? - 홍콩우리교회 서 현 목사홍콩의 출산률은 세계 최저 수준이며, 홍콩인 10명 중 8명은 자녀를 낳을 계획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2026.4.15 홍콩수요저널 기사 참조) 하지만 걷다 보면 수많은 젊은이들을 마주합니다. 관광객도 있지만, 곳곳의 학교와 캠퍼스에서 꿈을 키우는 학생들의 모습이 더 눈에 띕니다. 외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도 많습니다. 홍콩한인유학생회의 자료에 따르면, 중국 본토를 제외하고 학부생 기준으로 한국인 유학생이 가장 많습니다. 그 수가 약 3,800명에 이릅니다. 이 3,800이라는 숫자 뒤에는 각자의 사연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곳까지 유학 오기 위해 거친 많은 일과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홍콩은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기 쉬운 도시입니다. 사람은 많아도, 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 자기 이야기는 하지만, 내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여주지 않습니다. 타지 생활의 시행착오 속에서 “누군가 조언만 해 주었다면”하는 후회와 아쉬움을 겪은 적이 누구나 한두 번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 같아 선뜻 마음을 열지 못하고, 비싼 물가에 밥 한 끼 먹는 일조차 망설여지곤 합니다. 언제나 긴장 속에서 살지 않으면 뒤로 밀려날 듯한 긴장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 도시는 우리에게 흩어져 있기를, 각자의 섬에 머물러 있기를 강요하는 듯합니다.저는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이 3,800명의 유학생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홍콩에서 지내는 가운데 어려움은 없을까?’ 홍콩우리교회 성도님들은 생각했습니다. ‘유학생들을 어떻게 섬길 수 있을까? 또, 이곳에서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이 질문에서 시작해서 여러 이야기가 나왔고, 청년부 예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주 일요일 첫 예배를 드렸고, 고3에서 청년으로 올라가는 친구들과 이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청년들이 모였습니다. 적은 인원의 모임으로 시작되었지만, 의미 있는 첫 발걸음이었습니다. 모임을 시작해보니, 청년들의 배경이 모두 다릅니다. 직장인도, 학생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온 청년도, 홍콩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도 있습니다.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 있고, 홍콩에서 유학을 마치고 취직한 청년도 있습니다. 각자의 언어와 문화적 코드, 그리고 저마다의 아픔과 기쁨을 품고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낯설었습니다. 화법도, 생각하는 방식도, 심지어 웃음의 포인트도 달랐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 분명한 진리에 동의했습니다.‘왜 나는 여기 있을까?’ ‘누군가는 나를 진정으로 알고 있을까?’ ‘나의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최근 악뮤가 발표한 노래 ‘소문의 낙원’ 가사 일부를 소개합니다. 잠깐 앉아요 / 따뜻한 스프와 고기가 있어요 / 지친 나그네여 / 도시에선 절대 알 수 없는 게 있죠 / TV에선 절대 볼 수 없는 게 있죠 / 소문의 낙원누군가 비웃으면 난 더 힘내요 / 물집을 터뜨리고 붕대를 감았죠 / 떠나야지만 알 수 있는 게 있죠 / 지치고 병든 나그네여 / 우 외톨이 나그네여 / 당신의 불치병은 그곳에 / 존재할 수 없어요도시의 생활에 지치고 힘든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통해 위로를 받았다는 댓글을 보았습니다. 멈춰 있지 않고 새로운 길을 떠나며, 안식과 쉼을 원하는 우리의 마음을 잘 드러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문의 낙원을 준비해주십니다. 우리에게 천국을 준비해주시고, 교회는 천국의 모형으로서 존재하게 하십니다. 예배는 우리가 각자의 고립된 섬에서 걸어나와, 서로와 함께 머무는 시간입니다. 지치고 병든 나그네와 같은 우리가 함께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는 기적의 순간입니다.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 혹시 홍콩에서 일하는 청년이 있으신가요? 열심히 공부하는 유학생이 있으신가요? 홍콩우리교회를 한번 방문해주세요. 한국에서 교회 다니지 않으셨다고 해도, 기독교 신앙이 없으신 분이라고 해도 관계 없습니다. 홍콩에서 살고 있는 동포로서 한 마음을 품고 여러분들의 필요를 돕고자 하는 모임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을 준비가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홍콩이라는 거대한 퍼즐 속에서, 당신은 우리가 기다리던 마지막 조각일지도 모릅니다. 부담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홍콩우리교회를 한 번 찾아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예배 후 교제와, 식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홍콩우리교회는 3,800명의 유학생이 쉴 곳이 되기를. 열심히 일하는 청년이 힘을 얻는 모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일요일 아침 9시 30분. 여러분을 기다리겠습니다. 이번 한 주도 모두 힘 내십시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나의 홍콩 스타 목격담! 그들의 상시 출몰 장소는? - [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홍콩에 20여 년을 거주하며 현지 연예인을 목격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한국에 살며 영화에서나 보던 스타들을 홍콩에 와서 직접 보게될 줄이야! 나의 짜릿한 경험들을 공유해 본다. 1. 주윤발 나의 주윤발 목격담은 예전 칼럼 ‘명암이 갈린 홍콩 최고 스타, 성룡VS주윤발’에서 언급된 바 있다. 내가 살던 타이쿠싱 해안 공원에서였다. 검은색 모자와 선글라스, 검은색 운동복 차림으로 맞은편에서 천천히 걸어 오고 있는 그의 모습은 바바리 코트를 걸쳤던 영웅본색의 주윤발이었다. 2주 연속 월요일 오후 5시가 좀 넘은 시간에 그와 마주쳤지만, 용기가 없어 사진 촬영 요청 할 수 없었다. 70대의 나이에 군살 없고 건강한 모습이었다. 당시 우리 학원에서도 그를 봤다는 수강생들의 목격담이 화제가 되었다. 2. 양조위 어느 평일 오후. 코스웨이베이 리가든 로비를 가로질러 걷고 있었다. 소탈한 차림의 남자가 배낭 가방을 맨 채 나와 마주쳤다. 순간! 보고야 말았다, 그의 얼굴을. 양!조!위! 키170 될까말까한 크지 않은 신장에 너무나 소탈한 동네 아저씨 그 자체였다. 내가 홍콩에 거주하며 만났던 현지 스타들의 특징이 있다. 특별히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지인들도 스타를 보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반응인 듯하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는 홍콩인들의 특징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양조위가 그렇게 맨얼굴의 동네 아저씨 차림으로 시내를 활보하고 다닐 줄은 몰랐다. 3. 임달화 모델 출신 임달화는 80년대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홍콩 영화에 주연급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주로 경찰아니면 조폭이다. 나의 학원 생활은 2008년 JEI(재능교육)에서 시작되었다. JEI는 당시 코스웨이베이에서 규모가 큰 학원으로 운영 중이었다. 어느 날 훤칠하고 눈에 익은 남자가 카운터 직원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임달화였다. 그는 유명 모델 아내인 기기 사이에서 어린 딸 하나를 두고 있었다. 딸을 그 학원에 보낸 것이었다. 얼마 후, 임달화는 개인 교습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며 5천불을 투척하고 갔다. 당시 한국영화 ‘도둑들’ 출연을 준비 중이었던 것이다. JEI에서는 나에게 수업을 부탁했지만, 그가 원하는 시간대와 안 맞아 눈물을 머금고 다른 교사에게 넘겼다. 그렇게 나는 홍콩 영화 엑스트라로 나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렸다. 4. 곽부성 정확히 누구를 마중하기 위해 홍콩 공항에 갔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확실히 기억하는 것은, 어느 평일에 출국장으로 나오는 곽부성을 몇 미터 앞에서 봤다는 사실이다. 검은색 선글라스와 캐주얼 차림으로 홀로 나오는 순간. 누군가 그를 향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잠시 멈추며 포즈를 취해주었다. 사진이 몇 장 찍히고는 다시 자신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당시 곽부성에 대한 인상은 ‘키가 170cm만 넘었어도..’였다. 5. 장백지 장백지를 목격한 것은 나의 주재원 생활 때였다. 다른 스타들을 길이나 공공장소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과는 달리 장백지는 우리 사무소가 있던 코스웨이베이의 자페 로드에서 영화 촬영 중이었다. 키는 약 160cm의 작은 체구였으나 얼굴은 화면에서 보던 그대로 작고 예뻤다. 당시는 홍콩 연예계가 발칵 뒤집혔던 진관희 스캔들이 터지기 직전으로 장백지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였다. 그의 영화 촬영 장면은 얼마 후 역시 코스웨이베이에서 한 번 더 목격되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촬영 중이었던 영화는 ‘최애여인구물광(내가 사랑하는 여인은 쇼핑광)’으로 2005년 개봉되었다. 6. 알란 탐 40대 이하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알란 탐을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80년대, 그의 인기는 한국에서도 대단했다. 영화 ‘지존무상’에서 보여준 유덕화와의 우정은 한국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를 본 것은 선전의 로후였다. 홍콩에서 열차를 타고 종착역 로후에 도착한 나는 차를 갈아타고 선전 시내로 향하려던 순간이었다. 골프 가방을 앞에 놓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의 얼굴이 차 창 밖을 통해 내 시선에 들어왔다. 오래 전, 나는 구룡의 서라벌 식당에서 한국인 지배인에게 중국어 개인 과외를 한 적이 있다. 그녀는 알란 탐의 광팬이었는데 어느 날 그가 식당에 와서 식사를 하더란다. 그녀가 엄청난 팬이라 말하니 알란 탐이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고. 7. 여문락, 오언조 홍콩 영화의 젊은 피라 각광 받던 여문락과 오언조. 그들도 이제 어느덧 40줄에 접어들었을 것이다. 여문락은 ‘무간도 2’에서 청년 시절 양조위 역을, 오언조는 성룡 주연의 ‘뉴 폴리스 스토리’에서 악역으로 나왔던 배우다. 여문락과 마주친 것은 내가 코스웨이베이의 HKU SPACE에서 한국어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어느 날 밤이었다. 그러고 보면 연예인 상시 출몰지는 코스웨이베이가 아닌가 싶다. 오언조는 틴하우 역 근처에서 잠시 뭔가를 사기 위해 봉고차에서 내리던 순간 내 시선에 포착되었다. 위에서 마주쳤던 다른 연예인들과는 달리, 당시 오언조는 메이크업을 한 상태였다. 앞으로 얼마나 더 홍콩에서 살게 될 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스타를 우연히 만나게 될지 궁금하다. 연예인 만나는 게 뭔 대수냐 싶겠지만 이 또한 홍콩 생활의 소소한 재미와 이야깃거리 아니겠는가. 주윤발 봤다는 얘기는 지인들과 중국어 수업 때 30번 이상은 한 거 같다. -
약물은 꼭 전문가와 상의하여 구하세요- [이흥수 약사의 건강칼럼]안녕하세요. 홍콩약사입니다. 최근 다이어트와 건강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편리함을 추구하다가 위험에 노출되는 사례가 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최근 홍콩의 불법 다이어트약 거래 문제 홍콩 보건국(DH)과 세관(C&ED)은 2025~2026년 다이어트 관련 약물 불법 판매 단속을 대대적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26년 1월에는 14,000개가 넘는 다이어트 주사가 마카오로 밀반출되려다 적발되었고, 처방전 없이 온라인이나 약국에서 불법 판매되는 사례가 잇따랐습니다. 또한 몽콕과 샤틴 지역에서 온라인 판매자와 약국 관련자들을 체포하며, 등록되지 않은 다이어트 주사, 처방의약품을 대량 압수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일부 제품은 "KOREAN PREMIUM" 등 한국을 연상시키는 라벨을 붙여 판매되기도 했으나, 실제 성분이 미신고되거나 오염된 경우가 많아 부작용 위험이 컸습니다. 불법 약물 유통의 위험성 이런 불법 제품들은 가격이 저렴하고 처방전 없이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교민 커뮤니티나 SNS, 위챗 등을 통해 빠르게 퍼집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부작용이 심각할 수 있습니다.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세마글루티드(Ozempic, Wegovy 계열)나 티르제파티드(Mounjaro, Zepbound 계열) 같은 GLP-1 수용체 작용제 다이어트 주사는, 의사 처방과 철저한 모니터링 없이 사용하면 매우 위험합니다. 불법 제품은 용량 오류, 불순물 혼입, 가짜 약 가능성이 높아 부작용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부작용 (많은 사람들이 경험) - 소화기계 문제 : 메스꺼움, 구토, 설사, 변비, 복통, 속쓰림, 복부 팽만. 특히 치료 초기나 용량 증가 시 심해지며, 식사량 감소로 영양 불균형이 발생하기 쉽습니다. - 식욕 저하 및 탈수 : 과도한 식욕 억제로 영양 섭취 부족과 구토·설사로 인한 탈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심각한 부작용 (입원이나 장기 후유증 유발 가능): - 췌장염(Pancreatitis): 갑작스러운 심한 복통, 구토, 발열 - 담낭 문제 : 담석, 담낭염 - 신장 문제 : 탈수로 인한 급성 신장 손상 - 갑상선 관련 문제 : 목의 혹, 삼키기 어려움 등 - 기타 : 위장마비(gastroparesis), 장폐색, 주사 부위 반응, 심박수 증가, 저혈당, 시력 변화 등 한국의 최근 부작용 사례 - 2025년, 40대 남성 환자가 비만 치료 목적으로 위고비(세마글루티드)를 처방받아 4개월간 사용하다가 용량을 1.7mg으로 증량한 지 2주 만에 심한 울렁거림과 지속적인 설사가 발생했습니다. 증상이 악화되어 응급실을 통해 입원했으며, 검사 결과 신전성 급성 신손상(탈수로 인한 급성 신장 손상)으로 진단받았습니다. 수액 보충 치료 후 다행히 호전되어 퇴원했으나, 이는 전문가 모니터링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 마운자로(티르제파티드) 국내 출시 한 달 만(2025년 8~9월)에 35건의 부작용이 보고되었으며, 이 중 설사 4건, 저혈당 쇼크 1건 등 중대한 이상 사례가 포함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구역, 구토, 두통, 소화불량 등이 다수 보고되고 있습니다. 불법 경로로 구매한 제품은 이러한 부작용이 더 빈번하고 중증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오염이나 가짜 약으로 인한 추가 피해 가능성까지 있습니다. 한국 교민들 사이에서도 해외·불법 구매 후 비슷한 피해가 발생하게 되면 책임져 줄 사람이 없습니다. 홍콩에 사는 한국 교민으로서, 저는 약은 항상 의사 처방 하에 의원 또는 약국에서 구하시기를 최우선으로 권장드립니다. 1. 현지 병원 방문 : 홍콩 공립·사립 병원이나 한국인 의사 클리닉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다이어트는 생활습관 개선과 함께 의학적 평가가 필수입니다. 2. 약국 이용 : 전문가인 약사와 상담을 통해 복약지도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3. 한국에서 약물 구입 시 : 필요에 따라 한국에서 약을 구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처방전과 서류를 준비해 규정을 준수하여 반입에 문제가 없도록 하시기를 권고합니다. 4. 온라인 구매 주의 : 합법적인 경로가 극히 제한적이니 가급적 피하시길 권장합니다. 교민 여러분, 다이어트와 건강은 '빠른 효과'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관리'가 핵심입니다. 반드시 전문가와 상의하며 안전하게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홍콩 생활 속 작은 건강 습관이 가족의 행복을 지킵니다. -
'불편한 성공담' 앞에서 홍콩 한인 역사를 되묻다홍콩은 여전히 기회의 땅, 그러나 한인 사회는 '움츠림'을 넘어설 때 손정호 편집장 홍콩한인상공회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기념 책자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상공회는 김범수 명예회장을 편집위원장으로 초빙했고, 저를 포함한 실무진을 편집위원으로 위촉하였습니다. 한인 비즈니스맨들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은 정말 의미 있고 감동을 주는 시간입니다. 1970년대 세계 비즈니스의 핵심으로 떠오르는 '아시아의 용(龍)' 홍콩은 동서양이 집중되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표어로, 홍콩을 아태지역 본부로 낙점하고 전폭적인 노력을 해왔습니다. 70년대 홍콩 한인들은 급변하는 성장 환경 속에서 한인상공회를 출범하여 똘똘 뭉치며 힘을 모았습니다. 그 결과, 홍콩 한인은 겨우 1.5만~2만 명에 불과하지만 다른 나라 재외동포들이 부러워할 만한 우리만의 단체, 기관, 학교, 기업, 문화 단체 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한인사회를 가보면 홍콩 한인사회가 얼마나 탄탄한지 알게 됩니다. 1976년부터 2006년까지 기록한 '홍콩한인상공회 30년사'는 2006년 발행되었는데, 30년 동안의 한인 비즈니스 역사와 회고, 발자취, 주요 사업들을 잘 정리했었습니다. 이번에 발행되는 50주년 책자는 2006년 이후부터 2026년까지의 20년을 책자와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근 20년은 우리가 알고 있던 홍콩의 역사 중 가장 역동적이고 변화가 큰 근 현대사일 것 같습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홍콩 우산 혁명, 광선강 고속철도 개통, 강주아오 대교 개통, 송환법 반대 시위, "국가보안법" 시행, 코로나19 등 커다란 일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홍콩에서 한인들의 비즈니스 분야도 급변하는 시기였습니다. 전통적인 수출 분야였던 무역, 섬유, 장난감, 전자, 가전 등에서 물류, 금융, 한류, 문화, 뷰티, 요식업, 교육 등으로 변화해왔습니다. 예전에는 무역 중심이었기 때문에, '세계의 바이어'를 두고 선의의 경쟁이 펼쳤습니다. 때로는 협동도 하고 노하우도 공유할 정도였습니다. 홍콩에 새로 정착한 뉴페이스들은 먼저 정착하여 자리 잡은 베테랑 선배들에게 배우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배우려고 자신을 낮추었기에 한인들의 모임이 활발하고 단단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세계와 중국은 스스로 문을 활짝 열었고, 중국의 관문이었던 홍콩의 지역 장점이 대폭 줄었습니다. 최근 20년 동안은 현지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필요해졌습니다. '중국과 홍콩 현지 고객'을 두고 경쟁을 하기에 훨씬 더 치열해졌습니다. 우리 한인 사회도 배움의 자세보다는 뺏기지 않으려고 움츠리며 거리를 두는 모양새입니다. 오랜 시간 세계 경제가 저성장으로 지속되고 팬데믹을 겪으면서 더욱 거리가 멀어진 것 같습니다. 특히 요식업계에서는 'BBQ', '치맥', '지역 음식' 등 몇 차례 붐이 지나갔습니다. 많은 분의 성공과 실패담이 우리 곁을 스쳐 갔습니다. 최근에는 새로운 요식업 전문가들이 한국과 해외에서 홍콩으로 투자하여 새로운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기존의 한인들이 해왔던 방법이 아니라, 본인들이 갖고 있는 경영 방법으로 시선을 모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중 몇몇은 홍콩의 한식 시장을 단기 투자로 금방 성공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거나, 본인들이 현재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며 자랑하듯 거침없이 표현하기도 합니다. 성공담 공유가 아니라 새로운 투자자를 모집하기 위한 목적이 다분해 보입니다. 심지어 한인들을 '영업하기에 불편한 대상'으로 폄훼하고 홍콩 고객에만 집중한다고 하니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홍콩은 그동안 많은 한인과 한상기업들이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 홍콩 현지 시장을 개척해 왔습니다. 작은 골목부터 홍콩 금융 중심지 센트럴까지 우리 한인들은 여러 사업의 형태로 성장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성공은 선배들의 실패를 바탕으로 성장한 것은 아닐는지요. 우리는 매년 영사관과 한인회, 상공회는 함께 모여 서로를 격려하며 한인들의 삶을 끈끈하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는 사람이어서, 고향 사람이어서, 같은 한인이어서 서로 힘이 되려고 합니다. 한인들에게 친숙한 아리랑, 서라벌, 신세계식품, 한국국제학교, 수요저널 등은 그렇게 한인들이 오가며 30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홍콩은 여전히 기회의 땅입니다. 누구든 도전할 수 있고 우리 한국인이 새롭게 정착하기를 환영하는 마음입니다. 다만, 우리 한인 사회를 기록하는 입장에서, 한인상공회 50주년의 역사를 기록하는 입장에서 되돌아봅니다. 우리는 미래의 한인 후손들을 위해 어떤 메시지를 남기겠습니까. 미래의 한인들과 함께 웃을 만한 이야기를 오늘 만들고 계십니까. 우리 아이들이 존경할 그런 분들을 더 많이 만나 뵙고 싶습니다. 더 많이 기록하고 싶습니다. -
소금 이야기- 홍콩우리교회 서 현 목사갑자기 더워졌습니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주르르 흐릅니다. 예년보다 더위가 늦게 왔다고 합니다만, 체감상 더위의 기세는 더 강해졌습니다. 저의 막내는 연신 땀을 닦으며 “아빠, 이제 더위 시작이에요? 그러면 여름에는 얼마나 더운 거예요?”라며 지레 겁을 먹습니다. 땀을 많이 흘리니 수분 섭취를 잘 해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수분 뿐 아니라 미네랄, 특히 염분 섭취도 중요합니다. 평소엔 잊고 지냈는데, 땀 흘리는 여름이 오니 군대 행군과 소금 생각이 나네요. 행군하기 전, 아스피린처럼 생긴 알약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소금과 미네랄 정제였습니다. 그것을 가볍게 여기고 먹지 않은 병사들은 행군 중 픽픽 쓰러졌고, 지휘관이 혼냈던 기억도 있습니다.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소금은 매우 중요합니다. 현대 사회를 유지하고, 지구의 많은 인구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소금을 얻는 방법은 세 가지 정도입니다. 하나는 바닷물을 증발해서 만듭니다. 다른 하나는, 땅에서 암염을 캡니다. 히말라야 핑크솔트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지요. 세 번째 방법은 ‘용해채굴법’이라고 하는데, 지하로부터 소금물을 추출합니다. 일반적인 바닷물의 염도는 3% 정도인데, 이 소금물의 염도는 30% 입니다. 땅 속에 있는 암염층을 탐색하고, 시추공을 뚫습니다. 시추공에 물을 흘려 암염을 녹여낸 뒤 추출합니다. 현재 산업과 식용으로 사용되는 대부분의 소금을 이 방법으로 얻습니다. 우리는 첫째, 둘째 방법은 잘 알지만 세 번째 방법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훨씬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통해 많은 소금을 추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영역에서,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산된 소금은 단지 음식에만 사용되지 않습니다. 소금, 즉 염화나트륨은 오늘날 화학 산업과 제약 산업의 기반을 이루고 있습니다. 소금을 원료로 한 화학제품으로 물을 정화하는 데 사용하기도 합니다. 세계 각국이 중요한 서류나 미술품을 소금 광산 깊은 곳에 보관합니다. 썩거나 곰팡이가 피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 에너지부는 ‘전략 비축유’를 텍사스주와 루이지애나주 지하의 오래된 소금 동굴에 보관합니다. 자연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저장하고 대기 중 온실가스를 지하에 집적하는 공간도 있습니다. 소금이 가진 특성으로, 다양한 것들을 저장할 수 있습니다. 배터리를 만드는 전해질의 원료로도 사용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알게 모르게 소금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 유지에 필요할 뿐 아니라, 사회와 문명 유지에 필요한 재료입니다. 홍콩의 식당에서 소금을 달라고 하니, 소금 병 안에 무엇인가 들어 있습니다. 무엇인지 물어보니, 볶은 쌀이라고 합니다. 습기를 머금어 못쓰게 되는 일이 없도록, 천연 제습제로 쌀을 볶아 넣어두었답니다. 사람들의 지혜에 놀랐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소금은 귀한 존재입니다. 현대에 들어 그 쓰임새가 더 넓어져, 더욱 귀한 존재가 되었지요. 저 같은 사람들은 잘 모르는 채로, 소금의 혜택을 받으며 살고 있는 셈입니다.성경도 소금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심판이 임할 때, 미련을 품고 뒤를 돌아본 롯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어리석은 행동이 박제되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여러분은 땅의 소금입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어버리면 무슨 수로 짠맛을 되찾겠어요? 아무 데도 더는 쓸모가 없어서 오직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마구 밟힐 뿐입니다.”(신약성경 마태복음 5:13 새한글성경)예수님은 우리의 본질을 지키며 살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본질을 잃은 소금은 의미가 없습니다. 다양하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소금이기에, 더욱 본질이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화학적으로 소금은 금속 양이온과 비금속 음이온이 이온 결합한 이온 화합물입니다. 전해질의 대표적인 물질이지요. 전기가 통하도록 하고, 흘러가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당시 이런 지식을 사람들이 몰랐기에 맛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만, 사실 본질을 생각하면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흘려보내고, 흘러가게 함으로 살아나게 하라는 뜻. 생명을 유지시키고, 전하라는 뜻까지 모두 포함하는 말씀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금의 다양한 영역을 우리가 알면 알수록 더욱 새롭게 다가오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소금 비유도 생각하고 묵상할수록 다양한 의미와 깊이로 다가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은 인생의 본질과 목적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하루하루 힘쓰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생각보다 여러분의 존재는 귀합니다.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이 더 좋은 목표와 의미를 갖고 살기 원하십니다. 더운 여름, 미네랄 보충을 하시며 소금과 삶을 잠깐이라도 생각해보시는 시간을 갖는 것도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겠지요. 모두 더위 속에서도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한 주도 모두 힘 내십시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내용 참고 : “물질의 세계”-에드 콘웨이 저, 이종인 역) -
펜싱 선수의 요통(허리 통증) 이해하기 - [칼린 박사 건강칼럼]지난 수년간 스포츠 부상과 근골격계 질환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저는 척추와 사지, 심지어 발의 건강까지 서로 어떻게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깊이 체감해 왔습니다. 특히 펜싱(제가 즐기는 취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같은 반복적인 스포츠 활동이나 일상 업무가 몸에 무리를 주기 시작할 때 이러한 연관성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더욱 통합적이고 개인 맞춤형인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척추지압치료(Chiropractic)와 족부의학(Podiatry)적 접근법을 결합하여 진료하는 이유입니다. 펜싱 선수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며, 저 역시 직접 경험해 보아 그 고충을 잘 아는 문제가 바로 '요통(허리 통증)'입니다. 플뢰레, 에페, 사브르 등 어떤 종목을 수련하든, 펜싱이라는 스포츠 특유의 '신체 비대칭성'은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몸을 찾아와 피스트(Piste, 펜싱 경기대) 위에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드는 만성 통증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일반적인 허리 피로와 무엇이 다른가요? 일반적인 허리 피로와 달리, 펜싱으로 인한 요통은 펜싱의 생체역학적 특성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앙가르드(En Garde) 자세: 이 기본 자세는 척추를 장시간 동안 비대칭적으로 하중을 받는 상태로 둡니다. 이 때문에 심부 요추 안정화 근육(다열근, 요방형근 등)은 몸을 곧게 유지하기 위해 과도한 일을 하게 됩니다. 폭발적인 런지(Lunge) 동작: 순식간에 엉덩이 관절을 확장하고, 상체를 안정시키며, 충격에 반응해야 하는 이 동작은 앞발과 뒷발 모두에서 심부 고관절 굴곡근(장요근 등)과 요추(허리 척추), 골반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줍니다. 이 두 영역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큰 런지 동작을 할 때 코어 근육과 둔근(엉덩이 근육)이 허리를 제대로 안정시켜주지 못하면, 요추와 그 주변 연부 조직에 미세한 손상이 지속적으로 쌓이게 됩니다. 흔히 나타나는 증상 다음과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면 주의가 필요합니다. * 훈련 중이나 훈련 후에 허리에 둔한 통증이나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지며, 특히 폭발적인 런지나 장시간의 대전(Bout) 후에 증상이 심해집니다. * 고관절 앞쪽(고관절 굴곡근 부위)이 깊숙이 뭉치거나 뻐근하며, 스트레칭을 해도 풀리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 아침에 일어날 때나, 훈련 사이에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은 후 요추 부위가 뻣뻣해집니다. * 피스트 위에서 빠르게 방향을 전환하려고 할 때 상체(몸통)가 불안정하거나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듭니다. 통증이 발생하는 잠재적 원인 이러한 부상은 대개 한 번의 심한 낙상이나 충격보다는 반복적인 기능적 불균형에서 비롯됩니다. 물론 잘못된 자세나 과도한 훈련(과사용)도 부상의 주요 원인이 됩니다. 펜싱은 고속으로 한쪽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신체 활동입니다. 코어와 골반을 통제하는 능력이 약해지면, 우리 몸은 상대적으로 더 작고 취약한 구조물들을 동원해 자동으로 보상 동작을 취하게 됩니다. 즉, 약해진 상체를 보충하기 위해 요추 안정화 근육들이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척추를 보호하려고 굳어버립니다. 동시에 고관절 굴곡근은 적절한 골반의 지지 없이 하체를 이끌고 런지를 하려고 하기 때문에 만성적으로 긴장하고 과로하게 됩니다. 저 역시 펜싱을 하면서 몸이 균형 잡힌 하나의 단위로 움직이지 않으면, 갑작스럽고 반복적인 하중이 허리에 얼마나 쉽게 과부하를 주는지 직접 경험하며 배웠습니다. 일반적인 관리 및 대처 조언 증상이 경미한 대부분의 경우는 적극적인 회복(Active Recovery)과 '타깃 구조 지원(Targeted Structural Support)을 결합하여 완화할 수 있습니다. 1. 무리한 동작 제한: 1~2주일 동안은 격렬한 런지나 경쟁적인 대전(Bout)을 쉬고, 관절의 움직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충격이 적고 신체 대칭을 맞출 수 있는 가벼운 교차 훈련(Cross-training)으로 대체하세요. 2. 근육 활성화 루틴: 장비를 착용하기 전, 매일의 루틴에 심부 안정화 근육을 깨우는 전용 근육 활성화 운동(Drills)을 포함시키세요. 3. 고관절 스트레칭: 훈련 후에는 골반을 잡아당기는 긴장감을 해소할 수 있도록 부드럽고 동적인 고관절 굴곡근 스트레칭에 집중하세요. 주의: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소염진통제는 단기적인 급성 통증을 관리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통증의 근본적인 생체역학적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합니다. 만약 2~3주 동안 적절한 휴식과 자가 관리를 했음에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거나, 통증이 악화되어 밤에 잠에서 깰 정도이거나, 일상적인 풋워크에 지장을 준다면 미루지 말고 전문가를 찾으셔야 합니다. 의료진의 조기 개입은 예후에 큰 차이를 만듭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통한 근본적 해결 척추지압치료(Chiropractic)를 통해 우리는 펜싱의 비대칭적인 요구로 인해 발생한 척추의 정렬 불량과 관절 제한을 바로잡고, 골반과 허리의 정상적인 가동성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개인 맞춤형 근력 및 재활 프로그램이 결합되면, 코어 안정성을 구체적으로 강화하고 고관절 굴곡근과 요추 안정화 근육 간의 균형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나아가 신체 비대칭성과 발의 역학(Foot mechanics)을 포함한 전체적인 운동 사슬(Kinetic Chain)을 면밀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모든 치료 계획은 환자 개개인의 라이프스타일, 훈련량, 그리고 목표에 맞춤형으로 수립됩니다. 취미로 펜싱을 즐기는 동호인이든, 장시간 앉아 일하는 사무직 직장인이든, 혹은 통증 없이 피스트 위에서 날카로운 기량을 유지하고 싶은 전문 선수든 상관없이 말이죠. -
선전 여행, 이건 알고 가자~ (2) - [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지난주 칼럼에서는 선전의 경제 특구 지정 배경에 대해 소개하였다. 덩샤오핑은 1978년 11기 3중전회 이후 개혁개방 노선을 추진하면서 광동성의 선전, 주하이, 산터우와 푸지엔성의 샤먼 4곳을 경제특구로 지정했다. 이는 홍콩, 대만 및 해외 화교 자본 유치를 목표로 한 실험적 조치였다.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 천윈의 새장 경제론 경제특구는 향후 중국의 개혁개방 성공 여부를 가늠할 실험적 성격을 띠었다. 경제특구 메커니즘은 다음처럼 도식화된다. 먼저 중앙이 정책 목표(개방·성장)를 제시한다. 다음으로 특정 지역에 제도적 예외성(유연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외자 유치 및 운영이 돌아가는지 검증한다. 마지막 단계로 성과를 확대 적용하고 실패 요소는 조정한다. 덩샤오핑은 경제특구를 통한 개혁개방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몇가지 이론을 내세운다. 그중 유명한 것은 ‘흑묘백묘론’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주장이다. 파리와 벌레가 집안으로 들어올까 봐 창문을 닫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도 비슷한 입장을 담고 있다. 중국이 결국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냐는 대내외적 시각과 비판에 대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즉 중국만이 지닌 독특한 사회주의라 말한다. 하지만 개혁개방을 추진하는과정에 있어 부작용과 몇몇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경제 특구가 선전을 비롯하여 주로 광동성 및 푸지엔성에 집중되다 보니, 중국내에서 경제 격차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는 모두가 평등해야 하는 사회주의 체제에서는 모순되는 현상이다. 내부적으로도 급격한 개혁개방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았다. 특히 경제학자 관료 출신인 천윈은 중국이 사회주의 궤도 이탈로 불안성을 맞이할 수 있음을 경계하였다. 그의 ‘새장경제론’은 이와 같은 우려에서 탄생하였다. 새(시장 메커니즘)가 움직이되 새장(계획 경제, 통제의 틀)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이론이었다. 속도 조절의 필요성과 궤도 이탈의 위험성을 경고한 천윈은 일종의 레드팀이라 할 수 있다. 속도를 내야 한다는 개혁파 덩샤오핑, 새장경제론을 주장하는 보수파 천윈의 의견 차이는 극한의 대립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논쟁을 해소시키기 위해서는 추진 중인 개혁개방의 성과를 확인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덩샤오핑이 선전을 다녀간 남순강화는 이러한 배경으로 추진되었다. 그래서 찾아간 선전 ! – 역사적 남순강화 덩샤오핑은 1984년 1월에 광동과 푸지엔 시찰에 나섰다. 이는 1992년 남순강화와 구분되는 ‘작은 남순’으로 불리며, 개혁개방 초기 특구 정책을 점검, 지지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남순강화(南巡講話)’는 남쪽을 순회(시찰)하며 개혁개방이 옳으니 계속 밀고 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한 것이다. 1984년의 남순강화는 1월 24일 시작되었다. 먼저 선전, 주하이, 샤먼을 시찰했다. 양상쿤, 왕전 등 군, 정 실세들이 동행해 정치적 무게를 더했다. 선전을 방문해서는 ‘선전의 발전과 경험은 중국이 경제특구를 설립한 정책이 올바른 것이었음을 입증했다’는 휘호를 남겼다. 지난 칼럼에서 소개한 리엔화샨 공원의 덩샤오핑 동상에 새겨진 문구가 바로 이때 쓰여진 것이다. 그리고는 특구를 기술, 관리, 지식, 대외개방의 창구로 규정하고, ‘한 지역이 먼저 부유해져야 한다’는 ‘선부론(先富論)’의 초기 아이디어를 밝혔다. 선부론은 개혁개방이 추진되는 광동성 등 연안에서 먼저 부를 이루고, 이후 점차 중국 내륙으로 부를 확대해 나간다는 뜻이다. 개혁개방으로 인한 지역적 경제 격차를 인정한 셈이기도 하지만, 이는 개혁개방 초기에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으로 결국 장기적으로는 모두가 잘 살게 될 것이라 주장이다. 이 시찰 후 1984년 3~4월, 중앙이 14개 연해 도시를 추가로 개방하기로 결정하는 등 개방 정책이 가속화되었다. 1984년의 남순강화는 특구 정책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남순강화는 1992년 한 번 더 진행된다. 당시 덩샤오핑의 나이는 87세의 고령이었다. 이때의 남행은 8년전의 것과는 배경이 다르다. 1989년 천안문 사태 후 개혁이 위축된 상황에서 이를 재점화한 승부수였다. 반면 1984년 방문은 개혁 초기 불씨를 지피고 확대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개혁개방의 상징과도 같은 선전 시진핑 주석은 2012년과 2020년, 두 차례 리엔화샨 공원의 덩샤오핑 동상을 찾아 추도하였다. 특히 2020년은 선전 경제특구 지정 40주년을 맞아 방문한 것이라 의미가 컸다. 여기서 시 주석은 개혁개방의 성과를 기념하고, 새로운 시대에도 이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하였다. 덩샤오핑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선전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선전 방문 시 곳곳에서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이유다. 개혁개방 초기 최초의 경제 특구로 지정된 선전은 이에 보답하듯, 발전 성과를 보이며 덩샤오핑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선전을 방문한다면 한 번쯤 리엔화샨 공원에 들러 개혁개방의 아버지라 불리는 덩샤오핑을 만나보도록 하자. -
선전 여행, 이건 알고 가자~ (1) - [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최근 평일, 주말을 가리지 않고 홍콩 교민의 선전행이 잦아지고 있다. 이것은 홍콩 현지인들도 마찬가지다. 고속철로 불과 십여 분 남짓한 거리에 홍콩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가격과 서비스, 상품의 다양성 등에서 선전은 홍콩 대비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 선전을 방문하며 이 도시에 대해 궁금증을 품어본 적은 없는가?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도시가 된 선전이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해 왔는가 하는 것이다. 선전 발전의 배경을 알고 가면 도시가 다르게 보일뿐더러 지인에게 할 얘기도 많아진다. 이에 선전의 성장 배경을 알아보는 지식 교양 시간을 마련했다. “선전의 발전과 경험은 우리가 경제특구를 설립한 정책이 옳았음을 증명한다” 선전의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인 리엔화산(연화산) 공원에는 중국 개혁개방의 아버지 덩샤오핑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동상 뒷면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선전의 발전과 경험은 우리가 경제특구를 설립한 정책이 옳았음을 증명한다. (深圳的发展和 经验证明,我们建立经济特区的政策是正确的)." 리엔화산 공원을 다녀온 우리 학원의 중국어반 수강생 한 명도 이 글의 뜻을 물어본 적이 있다. 선전과 덩샤오핑은 무슨 관계가 있길래 그의 동상이 주요 공원 한 곳을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위의 문구는 어떤 배경으로 쓰여졌을까? 개혁개방 전의 선전 선전의 현대사는 크게 1978년 전후로 구분된다. 1978년은 중국의 개혁 개방이 발표된 해이다. 개혁개방 이전의 선전은 주로 어업에 의존하는 인구 3만 명의 작은 마을이었다. 선전의 ‘전(圳)’은 광동어 방언으로 '도랑'을 뜻한다. 그 이름처럼 수로가 많은 소박한 농어촌이었다. 현지 주민은 농업과 어업 및 소규모 산업에 주로 종사했다. 지역 단위 생산 형태가 특징이었다. 근현대사 이전에는 홍콩과 같은 행정구역에 편입되기도 했었다. 선전의 산업 기반은 1980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드문드문 공장과 작업장이 있었지만 규모가 작고 기술적으로도 낙후되어 지역 경제를 든든하게 지탱할 수 없었다. 게다가 선전은 지리적으로 외진 곳에 위치하여 교통 및 통신 여건이 열악했고, 이는 경제 발전을 더욱 저해했다. 수산물와 소비재 등 단순 유통 비중이 컸다. 또한 선전은 홍콩과 맞닿아 있어 밀수 무역, 비공식 교역이 활발했다. 홍콩으로 밀입국하는 주요 경로이기도 했다. 이와 같이 별볼일 없던 선전은 개혁개방 발표 후인 1979년 시로 승격되며 대도약의 기회를 맞이한다. 덩샤오핑의 복권, 개혁개방 실용주의 노선 선언 1976년 9월,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같은 해 10월 4인방이 실각하며 문화대혁명이 막을 내린다. 중국을 암흑의 20년으로 몰아넣었던 문화대혁명은 경제에 있어서도 처참한 흔적을 남겼다. 오로지 사회주의 이념에 매몰되어 자급자족 형태의 낙후된 상황에 발목이 잡혀 파탄 상태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물이 덩샤오핑이다. 그는 주자파(자본주의 노선을 걷는 자)로 마오쩌둥과 4인방의 눈밖에 나 실각한 상태였다. 장시성 난창의 한 트랙터 수리 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덩샤오핑은 문화대혁명이 끝을 향해 내닫는 시점, 당 원로들의 강력한 입김으로 중앙에 복귀한다. 두 번의 실각을 거치며 세번째로 복귀한 덩샤오핑은 ‘부따오웡(오뚜기)’라를 별명을 달며 실권을 장악하였다. 경제 살리기에 우선 순위를 둔 덩샤오핑은 복귀 이듬해인 1978년 12월, 제11기 3중전회를 통해 개혁개방을 발표하며 중국은 실용주의 노선을 걷게 된다. 1980년, 중국 최초의 경제 특구로 날개를 단 선전 중국이 개혁개방을 본격화하던 흐름 속에서 1980년을 전후해 경제 특구 네 곳이 지정된다. 중국의 전 지역을 일시에 개방하기에는 너무나 큰 부담이 있었기에, 시험적 성격의 특구를 제정한 것이다. 최초의 경제특구로 선정된 도시는 광동성의 선전, 주하이, 샨터우와 푸지엔성의 샤먼이었다. 광동을 서서히 열고, 성과가 나오면 더 넓게 확산한다는 전략의 구체적 형태였다. 이들은 모두 중국 남부의 연해 도시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그런데 선정 이유에는 중요한 의도가 공유되어 있었다. 바로 화교 자본 유치이다. 선전은 홍콩과, 주하이는 마카오와, 샤먼은 대만과 인근해 있다. 샨터우는 5백 만 화교의 고향이었다. 해외에 퍼져 있는 화교들에게 중화권 공동체 의식을 호소하여 투자를 유치하고자 함이었다. 선전 역시 홍콩이라는 이웃을 잘 둔 덕에 대박을 터뜨릴 기회를 포착한 것이다. 경제 특구는 단순히 세금을 깎아주는 사업장 수준이 아니라, 행정•제도•투자•대외무역•노동 및 시장 운영 방식을 비교적 유연하게 적용해 자본과 기술이 들어오면 어떤 효과가 나는지를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즉, 계획 경제 중심 체제에서 시장 경제를 도입하는 실험을 하되, 실패 위험은 상대적으로 제한된 범위에서 통제하려는 목적이 컸다. 그래서 일부 지역에서 먼저 시험하고, 성과가 확인되면 확장하는 방식을 취하고자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모두 순탄히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중국의 경제학자 출신 지도자 천윈은 새장경제론을 들고 나오며 덩샤오핑의 실용주의 노선에 제동을 걸고자 했다. (다음호 계속) -
00를 기다리며- 홍콩우리교회 서 현 목사지난 24일 일요일은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불교의 부처님 오신 날과 기독교의 성령강림절이 같은 날에 겹쳤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서로 다르지만, 두 날 모두 ‘찾아오심’의 의미를 기념하는 점은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 ‘오는 것’을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좋은 소식, 뜻밖의 만남, 어둠 속에서 빛을 경험하는 순간이 오기를 바라지요. 개인적으로 사무엘 베케트의 작품 ‘고도를 기다리며’를 접했을 때의 여운이 지금도 있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다 지쳐 떠나고자 하는 ‘고고’와 그를 붙잡는 ‘디디’. 고도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그저 기다리는 두 사람. 막연하지만 간절한 기다림에 지쳐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기념하는 성령강림절은 실체 없는 막연한 기다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 후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지내셨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시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한 성령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잡으러 올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락방에 모여 기도했습니다. 마침내 성령님이 사람들에게 오셨습니다. 그 이후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성령강림절이 의미 있는 이유는, 약속이 실제로 찾아올 때 인간과 공동체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어둠과 절망, 두려움 속에 있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약속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 땅의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위협에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신분을 뛰어넘어 종과 주인이 하나 되었습니다. 민족을 뛰어넘어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생각지도 못한 일을 자연스레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온다’는 것은 단순한 공간의 이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안의 굳은 틈에 스며드는 변화입니다. 딱딱한 마음이 풀어지고, 굳었던 생각이 유연해집니다. 한 개인이 우리 삶에 오면, 우리는 그의 영향을 받습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성경은 성령이 오심으로 서로 다른 언어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마음을 열고 하나 되는 일이 일어남을 말합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2장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44믿는 사람 모두가 한곳에서 지내며, 모든 것을 공유했다. 45모은 재산이든 있는 재산이든 팔아서 모두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었다. 46또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모이는 데 힘을 쏟았고, 집집이 모여서는 빵을 떼어 나누었다. 그러면서 기쁨에 벅차 거짓 없는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었다.(신약성경 사도행전 2장44-46절. 새한글성경)지난 24일이 특별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홍콩우리교회에서 같이 신앙생활 했던 한 집사님 가정이 베트남으로 거처를 옮기는 인사를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 홍콩에 왔을 때 정착을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교회서 여러 일들을 드러나지 않게 잘 섬겨주셨습니다. 그 가정이 새로운 곳에서도 잘 정착하시도록 기도하는 중,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고 목이 메었습니다. 그만큼 사랑했기 때문이고, 홍콩에서 처음 맞이한 이별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홍콩은 이동이 잦은 도시라 헤어짐도 많다는 이야기는 늘 들었지만, 직접 헤어짐을 경험하니 울컥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다시 마음을 다잡습니다. 이별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연결의 시작입니다. 그분과의 헤어짐은 언젠가 베트남에서 또 만날 만남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인생은 오고 가는 호흡과도 같습니다. 만남이 있고 헤어짐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만남을 기대합니다. 만나서 사랑합니다. 또 새로운 만남을 꿈 꿉니다. 제가 홍콩에 오지 않았다면 그 집사님을 만나지 못했겠지요. 그 집사님 가정은 홍콩에서 받은 사랑과 정을 짐칸에 싣지 않았습니다. 마음 속에 새기고, 새로운 땅에서 또 사랑할 사람들을 만날 일을 기대합니다. 그것을 교회 성도들이 모두 기대하기에 축복하며 보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그를 만나 사랑하고, 그 사랑을 가슴에 품고 살아갑니다. 헤어지더라도 또 만날 것을 기대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갈 힘이 됩니다. 그저 막연한 기다림 자체가 아니라, 기다리는 대상이 분명히 있는 그 기다림을 통해 힘을 얻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무엇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더워지는 여름 날씨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기쁨으로 맞이하기보다 번거로움으로 여기며 마음을 닫곤 합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기보다, 열을 내는 덩어리로만 생각하며 짜증내고 거부하곤 합니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그가 내게 찾아옴으로 내 인생이 변할 수 있습니다. 기다렸던 그를 만남으로 내 삶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그런 일들을 이루십니다. 이번 한 주 여러분은 무엇을, 누군가를 기다리시나요? 하나님께서는 항상 여러분을 기다리십니다.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홍콩우리교회도 언제나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이번 한 주간도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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