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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석호 (홍콩 교민)
2년여 전에 별로 반갑지 않은 백구가 아내의 품에 안긴 채 10살난 아들의 전폭적인 환영을 받으며 집에 첫발을 디뎠다. 아들이 강아지의 이름을 “코코넛”이라고 지었다고 했다.
그동안 아이가 몇 차례 강아지를 사달라고는 했으나, 집도 좁고, 털도 날리고, 돌봐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차일피일 미루다가, 동생을 못 만들어 준 미안함에 마지못해 한달된 ‘재패니스 스피츠'를 들인 것이다. 아내는 한국에서 말티즈를 키워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무척 좋았고, 아이의 정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내게 허락을 강요했다. 아무래도 집에 있는 사람이 아내여서 말을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강아지를 데리고 노는 것은 좋아하겠지만, 돌보는 것이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란 것을 당연히 짐작했다. 그래서 애완견을 사고 싶어했던 아들에게 매일 저녁 강아지 산책 시키는 것을 약속받았다. 물론 제일 수고스러운 사람은 당연히 아내이겠지만, 아들이 산책을 시키면, 책임감을 느끼는 교육적인 면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솔직히 아이가 어려 약속을 잘 지킬까는 반신반의 했지만, 그래도 믿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산책도 나가고, 잘 보살피더니 한 달 정도가 지나면서부터 산책이 뜸해 지면서, 모든 것을 엄마에게 미루기 시작했다. 그런 아들이 내내 못마땅했고, 집안 곳곳에 털이 날리지 않은 곳이 없었고, 밤에 인기척이 나면 짖어대서 잠을 설치기도 했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가족이 방학 때 한국에 갔을 때, 혼자서 한 달간 돌봐야 했는데, 코코넛과 내가 서로 힘들어서 가족이 돌아오기 전에 백구를 처분해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수개월이 지난 후, 이런저런 불편함과 더불어 아이에게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한 구실을 들어 코코넛을 그만 키우자고 말을 꺼냈더니, 자기는 “열심히 산책도 시키고, 돌봐주고 있다고 절대로 안 된다”고 나를 인정도 없는 아빠로 모는 듯 했다. 사실 엄마가 있을 때는 잘 안하지만, 집에 아무도 없으면 혼자 잘 돌봐주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그런데 걸림돌은 아이가 아니라 아내였다. 6개월정도 키우면서 코코넛에게 정이 푹 들어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코코넛은 아내를 제일 좋아하고 다음으로 아들 시훈이다.
처음에는 코코넛도 나를 잘 따랐었는데, 어느 날 술에 취해서 좀 심하게 장난을 쳤더니 그 다음부터는 술냄새만 나면 어디론가 숨어버려 눈치만 보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코코넛에게 서운했다. 애완견을 키우는 재미가 집에가면 꼬리를 흔들면서 주인을 맞는 것인데, 오히려 피하다니…. 이건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이란 걸 깨닫고, 술마시는 횟수도 줄이고, 집에 와서도 쓰다듬어주기만 했다. 아직까지는 경계하는 모습이지만, 피하지않는 것을 보면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지고 있는 듯 했다.
요즘 문득 코코넛의 얼굴을 보고 내게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궁금해 하며 눈으로 교감을 나누곤 한다. 그럴 때면 개를 달가워하지 않았던 나도 오래 함께하다 보니, 어느덧 동물과 친구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에 겁많은 코코넛을 아이가 장난으로 괴롭힐 때,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었는데, 지금은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을 보며 애완견의 장점을 발견하곤 한다. 아이가 코코넛에게만큼은 항상 아빠엄마에게는 하지 않는 감성적이고 인정어린 말투로 대한다.
이제 2년을 같이 살았고, 언제까지 살지는 모르겠지만, 같이 사는 날까지는 한가족처럼 많은 사랑을 주고, 한편으로는 아들이 코코넛으로 인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인격체로 성장한다면 더할 나위없을 뿐이다.
내 직업이 해외이사인데, 얼마전에 한 고객의 짐을 한국으로 보내면서 특별한 부탁을 받은 물건이 있었다. 한 상자안에 죽은 애견을 화장한 뼛가루와 사진액자를 각별히 주의해서 운송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그 할머님의 정서가 십분 이해가 갔으며, 정성껏 포장하여 보낸 기억이 있다.
홍콩에서 많은 사람들이 애견을 키우는데, 산책시키다보면 길거리에 배설물의 뒷처리를 잘 하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있듯이 코코넛을 키우면서 핵가족시대에 삶의 정서적인 부족한 면을 조금이나마 채워주는 긍정적인 기능이 더 크고, 그것이 소중함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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