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뉴스목록
-
글로벌어린이재단홍콩(GCFHK) 바자회를 마치고...사랑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누구나 사랑의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저는 사랑이란 ‘기억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억해 주고 마음을 정해서 시공간을 넘어서 무엇인가 전해 주고자 애쓰고 수고를 아끼지 않고 실천해 내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글로벌 어린이 재단 홍콩지부에서는 2024년 3월 27일 두란노 문화원에서 그 사랑을 표현해 보고자 소박한 바자회를 열었습니다. 글로벌어린이재단은 한국의 IMF 사태로 인하여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이 많아졌다는 소식을 접한 먼 미국 땅에 거주하던 한국의 어머니들이 마음을 모아 1998년부터 시작해서 24개의 지부로 발전시켜 올해로 어느덧 25주년이 되었습니다. 홍콩지부는 2001년에 출발하여 홍콩의 한국 교민분들과 지금까지 함께 하며 어린이 돕기를 이어 오고 있습니다. 현재 홍콩지부가 돕고 있는 곳은 두 곳입니다. 첫째, 아이티 공화국은 불법이 무성하고 기아 문제가 심각함이 오래된 곳입니다. 무법천지에서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거리로 내몰아지고 있는 현실에 처해 있습니다. 이 아이들에게도 배고픔이 해결되고 공평한 교육을 받도록 도우며 아이티 국가의 건강한 젊은이들로 성장할 수 있도록 후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인도의 빈민에 처한 어린이들이 기아에서 벗어나고 배움이 지속되어 궁극적으로는 그 인도 땅에 꼭 필요한 청년들로 세워지도록 후원하고 있습니다. 이번 바자회를 기억하고 방문해 주신 모든 분들이 바로 어머니의 마음으로 수고로움을 마다하고 원근 각처에서 찾아와 주셔서 글로벌어린이재단 홍콩지부의 바자회 자리는 즐겁고 웃음꽃이 만발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바자회를 통해서 이미 회원으로 동참하시는 분들을 한자리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보람되고 뜻깊은 좋은 일을 찾는 분들께 저희 바자회를 통해 글로벌 어린이 재단을 소개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자회는 봉사해 주시는 ‘회원의 날’이기도 합니다. 바자 당일에 회원에 가입하고 다음 바자회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이 땅에 어미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기억하는 사랑이며 큰 기쁨과 힘입니다. 협찬해 주신 분들의 기관들과 사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올해도 발전과 번창이 있기를 기원합니다.(거상 Sally Lee 대표, 덕산, 민주평통홍콩지회 송세용 회장, 코윈홍콩 정도경 담당관, 한맛&한아름 이종석 대표, 홍콩한인상공회 신성철 회장, 홍콩한인회 탁연균 회장, Bacha Coffee by Blue Chip Ltd Flora Lee 대표, Balzano 정도경 대표, K-Town 최영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저희 모두가 기억하는 것은 바로 인도와 아이티 땅에 열악한 빈곤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을 기억해 주며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사랑의 몸짓을 서로 했을때 그 땅의 아이들은 먹을 것이요 희망의 하루가 내일의 비전으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진심으로 함께 동참해 주신 분들께 저희 임원분들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글로벌어린이재단홍콩(GCFHK) 회장 한승아 올림
-
홍콩 교민에게는… ‘과거를 물어봐 주세요’글 손정호 편집장 (이글은 2014년 2월에 쓴 것을 다시 가다듬은 글입니다.) 몇 년 전 재외동포기자대회 때 미국에서 오신 어느 신문사 사장님께 들은 얘기입니다. 미국 어느 도시에서 한국 교민들 사이에는 과거에 대해서 먼저 물어보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말했습니다. 새로 이사온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신변에 대해 너무 일일이 물어보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는 것입니다. 이유인 즉, 한국이나 타도시에서 도피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종교단체나 한글학교, 한인관련 장소에서 만나더라도 너무 자세히 묻지 않는게 실수를 줄이고 서로 편하다고 합니다. 한때 ‘아메리카 드림’이란 말을 유행시켰던 미국에서 그런 씁쓸한 현상이 있는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중국 심천에서 생활한 적도 있어 광동 지역 한인사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중국 역시 한국에서 도피성으로 오시거나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정착하신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그런 분들께는 과거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지 않고 따뜻한 눈으로 인사만 나누는게 지혜롭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홍콩은 어떨까요. 제가 홍콩에서 만나 뵌 분들을 생각해 보면, 홍콩에는 과거를 물어봐주기 바라는 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습니다. 주로 사업 성과와 관련해 ‘잘나가던 때’를 말씀하는 경우가 많으십니다. 건강하고 패기있을 때, 자랑하고 싶은 추억들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런 칭찬은 남들이 거들어줘야 감칠 맛 나는데, 아쉽게도 홍콩에는 칭찬을 거들어줄 교민들이 많지 않습니다. 교민 수가 그렇게 많지도 않을 뿐더러 각자가 다 칭찬을 들을 만한 분들이시니까요. 홍콩 교민들이 적다보니 교민들의 활동이나 교류의 장도 적어서 자신의 과거를 꺼내는 것에 서투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때문에 자신의 성공담이나 개인사를 꺼내면 자랑처럼 보여질까, 주저하는 경우도 봅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진짜 자랑하시는 경우도 있지만요.) 어찌됐던 홍콩은 예나 지금이나 강력한 경쟁도시이기 때문에 과거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것은 후배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유지하고 또 발전해 나가는 모습들은 젊은 한국 교민들에게 꿈을 키워줄 것으로 확신합니다. 주위에 계신 오래된 교민분들께 물어보시고 들어보세요. 다양한 직종과 사업장에서, 그들만의 분명한 노하우가 살아있을 겁니다.
-
한국 손님 안 반기는 한국 식당들글 손정호 편집장 (이글은 2014년 2월에 쓴 것을 다시 가다듬은 글입니다. 당시 한식당 오픈 붐이 일어날 때이기에, 지금은 상상도 하기 힘든 내용입니다.) 일부 한식당에서의 일입니다. 시내의 어느 한식당 주인은 한국인 손님이 식당에 들어오면 표정이 바뀌면서 좌석배정부터 구석자리로 안내합니다. 주인에게 한국말로 메뉴에 대해 물어보면 대답없이 자리를 뜨면서 홍콩인이나 필리핀 직원들이 대신 대답을 합니다. 그 식당에서는 기본적인 서비스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밥값 만큼의 서비스를 받아가는 것이 다행일 정도입니다. 손님이 ‘내가 착각했나?’ 싶어서 일단 밥먹기 시작하면, 다른 홍콩인 고객을 반갑게 반기며 안내하는 그 주인장의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홍콩인에게는 영어, 광동어를 섞어가면서 친절하게 메뉴를 설명하는 모습에 이 주인장이 한국사람 아닌가 의심을 하게 될 정도입니다. 혹은 한국사람에게 큰 상처를 받아서 외면하는 것인가 엉뚱한 상상까지 하게 만듭니다. 또 다른 한식당은 매니저가 손님보다 먼저 메뉴를 권합니다. 메뉴를 권하는 것이야 도리어 적극적인 모습에 괜찮겠지만 문제는 주문 이후의 태도입니다. 손님이 고른 메뉴가 저렴하거나 너무 평범하면 찬바람 쌩하니 일으키고 가버립니다. 처음 주문양이 적더라도 나중에 더 주문을 할 수 있을터인데 두번 더 보지 않을 얼굴처럼 차갑게 돌아섭니다. 저는 광고주 한식당 뿐만 아니라 업주들이나 매니저와 안면이 있다보니 이런 차가운 대접을 직접적으로 경험해 보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주위 교민분들께서 적지 않게 이런 비슷한 경험을 토로하시는 것을 자주 듣습니다. 식당뿐만 아니라 일부 식품점도 비슷한 불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유독 우리 한국사람끼리 불친절한 걸까요? 제 생각으로는, 아마 한국식당에 홍콩인 고객들이 증가하면서 생긴 안타까운 부작용이지 않나 싶습니다. 친철한 응대에 익숙한 한인 고객들은 한식당이 친절하지 않으면 불쾌감이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홍콩인들은 친절 여부에는 크게 개의치 않죠. 게다가 한인 고객들은 음식맛에 너무 잘 알아서 ‘공짜로 주는’ 반찬에서부터 이런저런 평가를 합니다. 거기에 비하면 홍콩사람들은 한국 음식 맛을 잘 모릅니다. 그러니 불평이 적을 수 밖에요. 그리고 다 먹지 못하더라도 이것저것 많이 주문하고 봅니다. 보통 저녁 식사로 한인 고객 2~3명이 1000달러의 매상을 해준다면 홍콩인들은 2000달러가 족히 넘을 수 있습니다. 한 테이블을 남겨두고 두 배가 넘는 매상을 올려줄 홍콩 고객이 있다면, 당신은 누구를 먼저 모시겠습니까? 음식 맛에 대해서 불평이 없고 매상을 올려줄 고객이라면? 식당 주인들의 마음을 들여다 본다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 '우리 맛, 우리 향수를 느끼려는 교민들이 왜 한식당에서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지...' 구본주 / 눈칫밥 30년(To Eat a Person's Salt for 30 Years) / 브론즈, 철 / 70x70x20cm 1999작품 한편으로는 한식당에서만큼은 ‘한국 수준의 서비스’를 요구하는 교민들의 심리도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여러분 중에서 중국식당이나 얌차집에 가면 까다롭게 주문할 수 있으신지요? 광동화도 안될 뿐더러 낮은 서비스에 대해서 한마디 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아마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외국인으로서 홍콩에 살면서 유일하게 한국말이 통하고, 음식 주문도 편하게 하는 곳이 한식당입니다. 복잡한 한자와 영어 간판들 사이에서 한국식당 간판을 보면 왠지 반갑고, 그곳에서 만큼은 허기진 육체와 정서적 외로움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때문에 한식당에서는 한국말로 편하게 떠들고, 한국말을 하는 종업원과도 농을 건네기도 합니다. 현지 식당에서는 음식에 대해 한마디 불평을 못하던 사람들도 한식당에 와서는 ‘짜다, 맵다, 싱겁다, 맛있다, 저번보다 못하다…’ 쉽게 말할 수 있지요. 어쨌든 반가운 마음으로 한식당을 방문했는데 한국인 주인의 싸늘한 외면과 불친절, 필요 이상의 매상요구를 한다면 많이 서운할 것 같습니다. 일반 홍콩 식당보다 높은 비용을 감수하고 ‘우리의 맛, 우리의 분위기’를 느끼려고 찾아왔는데 말이지요. 최근 수년간 홍콩에 한식당들이 급속도로 늘어나면서도 망했다는 식당은 미미합니다. (이 글을 쓴 이후 10년사이 시위와 펜데믹, 저성장 경제 영향으로 유명했던 곳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요식업과 전혀 관계가 없던 사람도 어느날 ‘뚝딱하고’ 식당을 차려서 ‘잘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업에는 철학과 신념이 있어야 영속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시장과 양적 성장에만 집착할 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흥망성쇠의 변화가 올 수 있습니다. 가장 잘 될 때가 위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홍콩인들의 한식 소비 증가로 한식당과 식품점들이 풍년을 누리고 있을 때, 현지인들과 스킨쉽을 가장 많은 한식당 업주들이 ‘무엇이 한국적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 음식만이 상품이 아니라 한국 서비스도 엄청난 상품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759’ 같은 수입전문 체인점은 홍콩내 한국 식품점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을 파격적인 가격(30~50%)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홍콩인이 따라할 수 없는 ‘한국적인 것’이 있어야 진정한 ‘한국’이란 이름을 붙여서 사업할 수 있지 않을까요?
-
[새책소개] 사라진 홍콩 - 우리가 ‘홍콩’이라 불렀던 것들의 시작과 끝에 대하여▶당신이 알고 있던 홍콩은 사라졌다. 우리가 기억하는 ‘홍콩’의 시작과 끝을 찾아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홍콩’은 어디서 시작되었고 어떻게 형성되어 왔을까. 홍콩 사회와 홍콩인 정체성 형성에 관심을 두고 30여 년간 홍콩을 연구해온 류영하 교수는 1840년 아편전쟁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홍콩의 정체성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정리한다. 『사라진 홍콩』을 통해 중국과 홍콩의 정체성은 각기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왜 두 정체성은 충돌할 수밖에 없었는지, 두 나라 간 갈등의 해법은 있는지 모색해보고자 한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영국의 통치 아래 만들어진 홍콩의 역사는 1997년 중국으로의 주권 반환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2020년 6월 발효된 홍콩보안법으로 홍콩 역사는 한 번 더 나누어진다. 홍콩보안법 발효는 중국 입장에서는 골치 아픈 홍콩을 납작하게 만든 신의 한 수였고, 홍콩 입장에서는 통한의 한 수였다. 홍콩보안법 발효 이후 홍콩의 인구 감소와 두뇌 유출 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외국 세력과의 결탁’이라는 죄목으로 활동가들이 체포되고, 인문학 관련 세미나들이 사라졌으며, 홍콩 정체성을 다룬 책의 출판은 중지되었다. ▶ 그 시절 우리를 매혹했던 애매함과 남다름의 홍콩 정체성 ‘제3공간.’ 홍콩의 정체성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개념이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공간, 누구도 누구에게 사상이나 이념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며 선택하라고 강요받지 않는 공간. 홍콩이야말로 아시아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작동하는 곳이라고 여겨졌다. 아편전쟁 발발 이전까지만 해도 인구 8천 명 정도의 어촌이었던 홍콩은 1842년부터 1997년까지 155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일본의 통치 3년 8개월 포함) 시절을 지나며 ‘남다른’ 정체성을 갖게 되었다.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홍콩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특성이 공존하는 곳이었고, 홍콩인들의 사고방식 역시 혼종적으로 만들어졌다. 홍콩 특유의 애매함과 남다름은 많은 사람들에게 홍콩을 매력적으로 느끼게 했다. 그러나 중국으로의 주권 반환을 기점으로 홍콩인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정확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나아가서 더 이상 애매한 공간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의지가 점점 강해졌다. 그러나 애매한 공간에 두지 않으려는 중국의 의지 역시 강했다. 중국은 중국대로 홍콩의 ‘분명함’을 원했고, 홍콩 역시 자신의 ‘남다름’ 즉 정체성을 인정해달라는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중국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의식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중국인, 영국식 자유를 맛보고 스스로 ‘영국인’이라고 생각한 홍콩인의 갈등은 예견된 일이었다. 중국과 홍콩은 서로를 모르고 있었고, 알려고 하는 노력도 부족했다. ▶ 집단기억이 만들어낸 오늘날 홍콩인 정체성 저자는 『사라진 홍콩』에서 오늘날 홍콩인 정체성이 몇 가지 주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지나며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그 사건들에 대한 ‘집단기억’이 중국과 구별되는 홍콩인의 정체성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홍콩인 정체성이라 부르는 것들은 1970년대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 1950년, 60년대 대륙에서 벌어지는 살벌한 정치 운동을 바라보는 홍콩인들에게 정치적인 안정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홍콩의 소중함은 더욱 크게 다가왔다. 홍콩(영국)정부는 중국 전통문화를 존중하면서도 서구의 대표적인 가치인 자유와 법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홍콩(중국)인을 통치했다. 1925년 상하이에서 발생한 530참안으로 파생된 홍콩 대파업이 장기간 지속되자 파업에 반대하는 흐름이 생겼고 이는 강고한 중화민족 정체성에서 이탈하여 식민 주체인 홍콩정부와 일체가 되는 홍콩인 정체성을 확인시켰다. 문화대혁명의 영향으로 발생한 67폭동에서 과격해지는 좌파 시위를 목격한 홍콩인들은 보수화되었고, 탈중국화 정체성이 견고해졌다. 1989년 천안문사건은 문화대혁명에 이어 중국으로부터 홍콩이 완전히 이탈하게 된 사건으로 홍콩인들의 집단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이 집단기억은 오늘날 대륙 중국과는 구별되는 홍콩인 정체성을 만들게 된다. ▶ 주권 반환 그 이후, 홍콩 사회와 홍콩인은 변화하고 있다. 아니,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민주는 없고 자유만 있는 사회, 그것이 바로 홍콩식 자유였다. 정부의 규제와 간섭을 배제하고 민간에게 맡기는 불간섭주의로 돌아가던 홍콩 사회에서 1997년 이후 행정을 지배하는 것은 정치라는 사실이 새삼 확인되었다. 중국 정부는 중국을 사랑하는 ‘애국자’만이 홍콩 지도자가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2021년 4월부터 충성 서약을 거부한 129명의 공무원에 대한 해임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문화대혁명의 영향으로 홍콩의 학교 수업에서는 정치적인 노래, 무용, 구호 등이 허용되지 않는 홍콩교육법(1971년)이 공포되어 교육이 정치로부터의 자유를 보장받았었다. 현재 홍콩 사회를 이끌어가는 두뇌는 이러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주권 반환 이후 홍콩인들은 텔레비전 뉴스를 시청하기에 앞서 ‘마음과 조국은 하나’라는 국가홍보영상을 시청해야 했으며 2015년 중국 정부는 ‘국가 안전 교육일’을 제정했다. 2021년부터는 초등학교에서부터 국가안보에 대한 교육을 받는 등 홍콩인들의 두뇌는 완전히 다른 교육 환경에 노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 우산운동 그 이후, 이제 홍콩은 어디로 가는가. ‘사라진 홍콩, 새롭게 만들어지는 홍콩’ 그 길목에 서서 역사를 돌아보다 주권반환 2년 뒤부터 홍콩인들의 불만은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1999년부터 시작된 시위는 2003년 보안법 입법 반대 시위, 2004년 보통선거 요구 시위, 2015년 중국의 밀수꾼을 반대하는 게릴라 시위, 2016년 경찰과 시위대 사이에 격렬한 충돌이 일어난 ‘어묵혁명’ 등으로 이어지며 홍콩의 정체성을 정치적으로 결집시켰다. 2014년 직접선거 쟁취를 위해 홍콩 도심을 점령한 ‘우산 운동’이 79일간 전개되었고, 2018년 대만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에서 촉발된 송환법 반대 시위로 홍콩 시민 2백만 명이 거리로 나섰다. 이 시위에서는 송환법 반대와 함께 홍콩의 민주화를 요구되었고, 정부가 송환법을 공식 철회했음에도 시위는 계속되었다. 2020년 초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사태는 홍콩 민주화운동에도 영향을 미쳤고, 2020년 6월 중국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홍콩특별행정구 국가보안법을 공포했다. 홍콩 역사는 2020년 6월 30일을 기준으로 다시 나누어진다. 그날 이후 홍콩에서 정치적 시위는 사라졌고, sns에서조차 홍콩인들은 조용하다. 중국은 홍콩을 확고한 중국 정체성으로 포섭하기 위해, 홍콩은 자기 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요지부동인 중국 정체성에 비해 홍콩 정체성은 더욱 빠른 속도로 분화되어갔다. 홍콩은 이제 망한 것인가? 분명한 건 우리가 알던 ‘홍콩’은 사라졌다. 하지만 아편전쟁 이후 새로운 홍콩의 역사가 시작되었듯, 어쩌면 이전에 없던 새로운 홍콩이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속으로 p.31홍콩섬(香港島)은 1800년대 중엽인 아편전쟁 발발 이전까지만 해도 매우 애매한 곳이었다. 홍콩을 표현할 때 ‘애매한 신세’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뚜렷한 정체성이 없다는 말이다. 당시 홍콩섬은 중앙정부 통제권이 미치기도 하고, 해적들이 드나드는 곳이기도 한 인구 8천 명 정도의 어촌이었다. 그런 홍콩섬을 제국주의 영국이 주목했다. 홍콩섬과 주룽반도(九龍半島)가 얼마나 중요한 교통의 요충지인지는 동남아시아 지도나 세계지도를 놓고 들여다보면 바로 알 수 있다. 홍콩섬은 중국 대륙과 동남아시아를 연결하는 관문임과 동시에 태평양을 향하는 길목이다. 나아가서 유럽,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의 해운을 연결하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광둥성(廣東省)의 젖줄인 주강(珠江) 입구에 위치하고 있어 중국 내륙으로 진출이 쉽다. 게다가 황해로 거슬러 올라가는 길목을 차지하고 있다. 오늘날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핵심 정책인 세계를 띠(帶) 하나와 길(路) 하나로 연결하자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의 그림이 그대로 보이는 곳이다. 홍콩섬은 수심이 깊어 큰 배가 정박하기 좋은 천혜 항구였다. 일찍이 바다를 오가는 세계인들에게 생필품을 보급하는 보급기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홍콩은 아편전쟁으로 ‘역사 전면에 등장’했다. 아니,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고 일반적으로 서술된다. _1장 「아편과 전쟁과 역사」 p.100-101홍콩인들이 지금까지 영국 통치에 대해 연연해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교육의 자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문화대혁명의 영향으로 1971년에 공포된 홍콩 교육법에 의하면 수업이나 관련 활동에는 정치적인 노래, 무용, 구호 등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 법은 정치교육을 하지 않겠다는 홍콩 정부의 의지를 더욱 추동했다. 교육이 정치로부터의 자유를 보장받았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 학문의 자유일 것이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학문의 자유는 사회 발전으로 이어졌다. 홍콩인들 두뇌(유전자)는 이런 환경에서 성장했던 것이다. (…) 하지만 1997년 중국으로 주권이 반환될 즈음부터 국가와 민족은 홍콩인 두뇌를 향해 시시각각 도발해 오기 시작했다. ‘국민교육센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이 전개되고 있는데, 그즈음부터 홍콩인들은 텔레비전 뉴스에 앞서 ‘마음은 조국과 하나’라는 ‘국가홍보영상’을 보아야 한다. 2015년 중국 정부는 ‘국가 안전 교육일’을 제정했다. 매년 4월 15일 홍콩에서도 교육국과 보안국이 주축이 되어 강연과 전시 등 각종 활동을 전개한다. 2021년부터는 초등학교에서부터 국가안보에 대해서 교육을 받는 등 이제 그들 두뇌는 완전히 다른 (교육) 환경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두뇌(유전자) 구조도 다시 만들어질 것이다. _5장 「체제와 교육」 p.192-193문화대혁명에 이어서 홍콩인들의 마음은 다시 중국으로부터 완전히 이탈되었다. 홍콩이라는 정체성이 다시 힘을 얻었다. 홍콩에서 중국공산당이라는 어휘는 금기시되었다. 홍콩인들의 두뇌에 ‘너희 중국’은 독재, 잔혹, 야만으로, ‘우리 홍콩’은 민주, 인도, 문명이라는 이분법이 자리 잡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집단기억’에는 반드시 타자가 등장한다. 타자화는 ‘미워하기’와 ‘구분 짓기’, ‘편 가르기’라고 할 수 있다. 타자는 나와 ‘더불어 같이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 천안문광장에서의 유혈진압에 대한 집단기억은 홍콩인 정체성을 구성하는 첫 번째 요인인지도 모른다. 시기적으로나 규모 면에서 홍콩인들에게는 그만큼 큰 충격으로 와닿았다. 홍콩인들 유전자에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공산당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를 확인하고 다시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홍콩인들은 공황에 빠졌다. 주가지수와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다. ‘너는 어떻게 할래?’라는 말이 서로의 인사가 되었다. ‘64천안문민주화운동’이 일어난 1989년에만 4만 명이, 다음 해인 1990년에는 6만 5천 명(홍콩 인구의 1%)이 홍콩을 떠났다. 홍콩의 정체성이 다시 전환되고 재편되고 있었다. _11장 「64 천안문 민주화 운동」 p.352-353‘중국-홍콩 체제’는 전근대와 근대, 다수와 소수, 특수성과 보편성의 대립구조이기도 하다. 어쩌면 모든 갈등이 근대와 전근대라는 도식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홍콩이 민주와 과학으로 무장하고 있다면, 중국은 국가와 민족을 앞세운다. 중국이 여전히 국가나 민족 이데올로기를 숭상한다면, 홍콩은 말끝마다 합리성을 내세우는 정체성이다. 중국 정부는 중국적인 정체성을 주입해야 문제 해결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중국은 홍콩을 향해 국가와 민족 이데올로기 주입에 총력을 기울였다. 홍콩인들을 빠른 시간 내에 국민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중국과 홍콩이라는 정체성은 다시 작은 정체성으로 나누어진다. 중국에도 홍콩에도 각각 여러 개의 작은 정체성이 있다. 즉 작은 정체성들이 모여서 큰 정체성을 구성하는데, 중국과 홍콩은 각각 작은 정체성들의 총합이다. 그 작은 정체성들의 변화는 큰 정체성의 변화와 직결되며, 큰 정체성은 다시 작은 정체성에 영향을 준다. 책 앞에서부터 살펴보아 왔듯이 정체성은 외부의 충격 또는 내부의 갈등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한다. 1997년 주권 반환 이후 ‘중국-홍콩 체제’는 수많은 갈등을 보여주었다. 중국은 홍콩을 확고한 중국 정체성으로 포섭하기 위해, 홍콩은 자기 정체성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요지부동인 중국 정체성에 비해 홍콩 정체성은 더욱 빠른 속도로 분화되어갔다. 홍콩 정체성의 역사가 생성, 분화, 재조립되듯이, 정체성으로 보면 망하는 역사는 없다. 역사는 부단히 재편되고 재조립될 뿐이다. _「에필로그」 저자 소개 류영하 柳泳夏 백석대학교 중국어학 전공 교수. 한국에서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홍콩에서 중국현대문학이론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대만대학(國立台灣大學) 인문사회고등연구원과 미국 UC버클리 중국학센터 방문학자를 경험했고, 중화민국 정부 초청으로 국립칭화대학(國立清華大學) 대만문학연구소(대학원)에서 한 학기 동안 강의했다. 저서로 『대만 산책』, 『방법으로서의 중국-홍콩체제』, 『홍콩 산책』(문학나눔 우수문학도서), 『香港弱化-以香港歷史博物館的敘事為中心』, 『중국 민족주의와 홍콩 본토주의』, 『홍콩-천 가지 표정의 도시』, 『이미지로 읽는 중화인민공화국』(문화부 우수교양도서), 『홍콩이라는 문화 공간』(문화부 우수학술도서) 등이 있으며, 역서로 『포스트 문화대혁명』, 『상하이에서 부치는 편지』 등이 있고, 편저로 『중국 백년 산문선』 등이 있다. 그 외 논문 30여 편을 발표했다.
-
백용천 총영사 귀임에 즈음하여-조성건 홍콩한인회장 회고- 2022년 2월 제가 한인회장에 취임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백용천 총영사는 코로나19 5차 확산 조짐을 엄중하게 판단하고 한인사회 주요 인사들을 소집하여 긴급 대응 회의를 주최했습니다. "만일에 있을지도 모르는 락다운 등 비상사태를 염두에 두고 만반의 준비를 같이 할 시기입니다"라며 구체적 준비 사항에 대해 논의하였습니다. 코로나 확산 위기를 막연하게 느끼고 불안해 하던 저와 한인회 회장단은 긴급 회의 후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인회는 교민들의 건강과 안전에 대비하여 비상약품, 비상식품, 자가 테스트기를 대량 구입했습니다. 고립된 자가격리자와 취약계층 등 180여 가정에 물품을 보내드려 선제적 조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백용천 총영사의 예견대로 연일 확진자 수가 5만명을 넘으며 주요물품이 동이나고 우체국 및 배송업체가 폐쇄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비상 물품을 적시에 필요한 분들께 전달 할 수있었던 것은 백용천 총영사관의 리더쉽과 한인 단체와 한국 기업들, 종교단체와 교민들이 함께 힘을 모은 결과였습니다. 한인회에서는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작년 4월 21일 총영사께 감사장을 전달했습니다. 이 사실은 펜데믹이 마치는 시점에 알려드리고자 하였습니다. 마침내 홍콩 정부에서는 지난 주 엔데믹으로의 전환을 선언하며 격리시설을 폐쇄했습니다. 이 시점에 백용천 총영사님은 임무를 완수하고 귀임합니다. 이제야 당시 감사장을 전달하게된 정황을 교민 여러분들께 알려드립니다. 총영사님, 어려운 시기에 수고하셨습니다. 장도에 영광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
신문에 게재되지 못하는 사람(홍콩수요저널 손정호 편집장) 혹독한 제목이다. 신문에 게재되고 싶은 분들에게 말이다. 깍쟁이 같은 손 편집장에게 인터뷰는 이중적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한없이 들어주고, 걸러주고, 정리를 잘 해준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이름 한 자 없다. 위치에 있는 사람일 수록 더욱 그러하다. 가끔 본인 이름이 없다고 따지는 전화도 있다. 스스로 높이는 사람은 나의 머리속에서 조용히 삭제된다. 몇년 전 한 단체의 직원이 수요저널 신문 배송을 보이콧 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 그의 이름이 기사에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내가 공론화하겠다고 하자 전직 현직 회장들이 나서서 말렸다. 그의 사과문을 받는 선에서 마무리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뒤로 그 단체에 회비를 내지 않고 있다. 어떤 이는 스스로 자랑거리를 전하기도 한다. 내용을 읽기도 전에 이미 피곤해진다. 대부분 무시하거나 안 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 남아있는 기록물만으로 판단해야 할 시기가 오면, 결국 돈을 들인 사람, 권위를 남용하여 기록한 사람의 뜻대로 역사가 왜곡될 수 있다. 기회가 된다면 수요저널에서 인터뷰 한 사람들의 이름을 보시길 바란다. 어떤 사람들인지. 유명인 뿐만 아니라 단체장, 소모임, 자영업자, 평범한 이웃을 망라한다. 광고주도 포함된다. 나는 작은 한인 커뮤니티를 위해 열심히 홍보하는 사람들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매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인들을 경시하는 업체들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한인 커뮤니티에 신경쓰는 업체를 더욱 장려하고 있다. 새해에는 우리 사회에 소개할 사람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세계에서 생활비가 가장 비싼 홍콩에 거주하는 평범한 승리자들을 만나고 싶다. 평범하지만 작은 생활 속에서 일궈낸 지혜를 담아내고 싶다.
-
어른에게 공경받는 어른글 손정호 편집장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연말 칼럼을 준비하던 중 '불편한 전화'를 받았다. 아침 일찍 걸려온 모르는 번호. 받고보니 아니나 다를까, 피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불쑥 재작년에 쓴 내 칼럼을 치켜세우더니 특정인을 거론하며 그에 대해 쓴소리를 써줄 것을 부탁했다. 자신이 쓰기에는 평판과 신뢰가 부족하니 날더러 써보라는 것이었다. 그와 특정인은 한 배를 탔었지만 지금은 원수지간이나 다름 없어 보였다. 단칼에 거절했다. 예전부터 숨어서 음흉한 모략을 꾸미더니 역시나.. 면박을 날리고 끊었다. '어른 김장하' 새해 첫 날 MBC경남 방송국에서 걸작을 내놓았다. '어른 김장하'라는 2부작 방송이다. 진주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평생 번 돈을 교육재단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 사회단체를 조용히 지원하고 최근 은퇴하신 분이었다. 그는 인터뷰는 절대 사절이다. 자신이 돋보이기보다 늘 자세를 낮추는 사람이었다. 방송이 제작될 수 있었던 건 한 베테랑 퇴직 기자가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방법으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방송은 의도적으로 영웅화 하지 않았고, 꾸미지 않았다. 2부작을 시청하는 내내 감동이 있었다. 서론이 길었다. 새해 첫 신문에 부정적인 기운을 써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결심을 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어른 김장하'를 시청한 후 맑은 기운을 빌려 글을 쓴다. 재작년 한인 단체장 패턴에 대해 쓴 적이 있다. [한인 사회는 어려울 때 일수록 좋은 일꾼 발굴해야..수요저널 2021년 12월 1일자] 홍콩 한인 단체장들의 당선과정, 행동 패턴을 취재 경험에 비추어 썼다. 어려운 시기에 자기 이익 챙기는 사람은 물러나고 경험이 부족하더라도 새로운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칼럼을 쓴지 1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한인사회에 그 패턴은 남아있는 듯했다. 팬더믹 시기에 인재가 부족하니 학연 지연 중심으로 급급하게 찾아내고, 회원들이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은퇴한 분들이 나서서 리더를 찾는.. 회원들도 모르는 임원의 등장으로 아래 사람이 일을 가르쳐 주거나, 경험 부족을 지적하며 원로들이 뒤늦게 개입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펜데믹이 끝나고 있다. 희망의 시간이다. 무거웠던 짐을 털어내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다가올 '정상'은 예전의 '정상'과는 다르다. 펜데믹 이전처럼 예전 행사들을 다시 한다는 수준에 머물면 곤란하다. 지난 3년간 긴 터미널을 이겨낸 사람들에게 더 깊은 사색과 고민으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방역 조치로 인해 한 때 오프라인 행사가 전무했지만, 온라인으로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행사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목표를 재설정했다. 그 결과 한인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지혜롭고 날카로워졌다. 무엇이 허례허식이고, 필요없는 행사 요소였는지 구분하게 됐다. 이젠 어떤 인재가 팬데믹 기간동안 수고했는지 분명한 평가를 해야 한다. 개인 삶에 힘들어 단체에 무관심한 틈을 타 이익을 챙긴 이들은 누구인지, 닫혀진 네트워크 환경을 핑계삼아 자신들만 실리적으로 이용한 사람은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다. 회원들에게 질 낮은 정보만 열심히 제공하고 정작 중요한 일은 자기들끼리 결정짓는 못된 행위는 지적 받을 것이다. 가장 악한 리더는 어려운 시기에 고생한 사람의 공을 가로채는 사람들이다. 한가지 더. 일부 한인 리더들이 회원들의 직접적인 지지를 받도록 선거 구조 변화가 있으면 좋겠다. 당당하게 지지를 받아야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추진할 수 있다. 투표없이 '킹메이커'들에 의해 발탁된 일부 리더는 온전한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무투표로 당선된 리더는 과연 누구에게 당선 감사 인사를 전할까. 회원을 소중하게 생각할까. 차기, 차차기 리더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까. 한 리더는 본인은 전혀 원하지 않았다며 자리 욕심이 없는 것처럼 일년 내내 말했다. 무능력을 그런 말로 겸손한 척 했지만, 많은 유능한 인재를 흩어지게 만든 것 같다. ‘어른 김장하’는 이 시대의 어른에 대해 많은 메시지를 던진다. 어른들이 어른으로 공경하는 인물이 어떤 상인지 보여준다. 등이 굽고 차도 없이 출퇴근 하던 어른의 이야기를 추천 드린다. [어른 김장하 1부] 시청하기 [어른 김장하 2부] 시청하기
-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크리스마스_최영우 고문(前 홍콩한인회장)절망은 끝까지 견디는 자에게 희망으로 바뀐다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된 지 벌써 2년이 되어간다. 백신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되면 연말에는 일상으로 돌아갈 것을 기대 했는데 연말의 현실은 기대와는 정반대이다. 올해는 정말 고난이 많았고 힘들었던 한 해였다. 고난은 우리 인생에 아무런 통보나 예고 없이 찾아오는 가장 잔인한 불청객이다. 그러나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리더는 고난이 올 때 원망하지 않는다. 독일의 속담에 고난은 기도의 선생이라는 말이 있다. 절망은 끝까지 인내하는 자에게 희망으로 바뀐다는 영국의 역사학자 칼라일의 말처럼 고난 가운데 불평과 원망 대신희망을 갖고 기도 하면 기적과 같이 고난을 극복하게 될 것을 믿는다. 크리스마스는 모닥불과 같은 존재이다 팬데믹은 마치 춥고 어두운 날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긴 겨울 같다. 춥고 깜깜한 들판에서 긴 밤을 보내야 한다면 모닥불을 피워야 할 것이다. 모닥불은 온기를 주고, 몸을 말릴 수 있으며, 어둠을 몰아낸다. 크리스마스는 우리들에게 모닥불 같은 존재다. 일터에서 절망할 수도 있지만 끝까지 참고 견디면 절망이 희망으로, 희망이 축복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참을 것은 참고, 인내할 것은 인내하며 어려움을 극복할 때 우리 인생에 더 큰 축복과 기적이 임하게 될 것이다. 올 한 해를 보내면서 도중하차하거나 낙심하지 말자. 지금 달리고 있는 사람은 계속 달리고, 일하고 있는 사람은 계속 일해야 한다. 인생의 때가 되면 우리가 감당치 못할 정도로 큰 결실들이 넘칠 것이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희망을 갖자. 지금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한 것은 인내라는 두 글자뿐이다. 결국 인내하는 사람이 마지막에 성공과 승리를 얻게 될 것이다. 열심을 다해 일터에서 더 많은 결실을 맺는 리더가 되자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총장을 지낸 니콜러스 머레이는 세상에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 부류는 언제나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소수의 사람들이다. 세상의 중요한 일은 언제나 소수의 몇 사람들이 이루어 간다. 두 번째 부류는 일을 그르치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어느 사회나 일을 그르치는 부류가 존재한다. 역사학자 토인비 교수는 몇 사람의 정신병자 때문에 온 인류가 망한다고 했다. 몇 사람의 독재자, 사기꾼, 아첨꾼, 이기주의자들이 바로 이 부류에 속한 사람이다. 세 번째 부류는 잘못된 것을 보고도 수수방관하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분명히 잘못된 것을 알고도 고치려고 하지 않고 마치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방관하는 사람, 나 몰라라 하는 이기주의자들이 세상을 망가뜨리고 있다. 우리들은 이 세 부류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부정적인 부류에 속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곳에 그냥 주저앉아 있지 말고 나의 부정적인 모습을 인정하고 깨달아 긍정적인 리더의 모습으로 변화하려는 결단과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변화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붙잡아야 한다. 사람은 사명을 깨닫고 살아야 한다. 아무리 평범하고 작은 사명이라도 자기의 사명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크리스마스 리더십 2021년을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연말이다. 올 한해 일터에서, 인간관계 속에서 얼마나 섬기는 삶을 살아왔는가? 성탄절에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캐롤이나 산타클로스를 가장 많이 떠올린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의 정신은 섬기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들 자신이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어 가까운 우리 주위의 사람들을 섬기고 사랑하는 크리스마스가 되기를 기대한다. 화려한 약속은 많지만 담백한 실천이 없는 시대에,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는 크리스마스 리더십은 우리 모두에게 절실하다. 행동하는 리더가 되자. 그리고 열심을 다해 큰 결실을 남기는 리더가 되기를 기도한다. 최영우 박사 | 아시아 한인 CBMC 증경총회장. 한국 CBMC 중앙회 증경부회장. 홍콩한인 회 고문. yuchk42@naver.com
-
한인 사회는 어려울 때일 수록 좋은 일꾼 발굴해야..한인 사회에서 미디어 업종으로 20년 가까이 일을 하다 보니 매년 많은 단체장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기사, 사진, 영상 등으로 취재하고 기록하기 때문에 자세히 볼 기회가 많습니다. 감사하게도 홍콩, 마카오 뿐만 아니라 심천, 광저우, 광동성의 유수한 분들을 뵐 기회도 있었습니다. 한인 단체장 임기는 대부분 2년 정도인데 그들의 처음과 끝에서 매우 비슷한 패턴이 보입니다. 취임 직전에는 우선 지인을 총동원해 인사를 개편합니다. 당선 후 부지런히 신임 인사를 다닙니다. 단체 업무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개선, 차별화를 위해 고민합니다. 1년 정도 지나면 동원된 인력은 사라지고 소수의 핵심 인사만 남습니다. 마지막 6개월 정도는 차기 임원단을 구성하도록 돕고 이임 수순을 밟습니다. 단체장 선임 방식은 기본적으로 선거입니다. 2인 이상 등록하면 투표를 진행합니다. 후보자가 1인일 경우에는 보통 자동 당선입니다. 가끔 후보자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고문들이 나서서 인재를 물색해 권면하고 세우기도 합니다. 단체장 직책은 영예로운 자리입니다. 가장 높은 자리이고 단체를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회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모으고, 대변하며, 권리를 찾아줘야 합니다. 회원들을 위해 가장 열심히 뛰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의욕만 있다고 출마하기는 어렵습니다. 임원이 될 일정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동이 많은 해외 교민들이기에 출마 후보 수가 정말 적습니다. 자금력도 필요합니다. 일정 금액을 단체에 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희생정신과 경제력이 기본이기 때문에 쉽게 도전하기는 어렵습니다. 최근 몇년간 반정부 시위, 펜더믹 시기를 겪으면서 자연스레 한인 단체를 위해 봉사하려는 분들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결국 지연, 학연, 군대, 종교 등의 인맥을 찾게 됩니다. 임기 시작을 앞두고 허겁지겁 지인들에게 손을 내밉니다. 단체 회원도 아닌 사람을 급하게 회원으로 가입시켜 중직을 맡기기도 합니다. 단체와 아무 연관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납니다. 기존 회원들은 단체장이 데려온 ‘뉴페이스’와 화합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립니다. 심한 경우에는 단체장의 임기가 마칠 때까지 ‘낙하산’ 꼬리표를 벗지 못하기도 합니다. 중간에 사라지기도 하구요. 여기까지는 그래도 아주 일반적인, 평범한 단체 임원들의 패턴입니다. 전문 행정가나 정치가가 아니고 일반 자영업자, 사업가 출신이기에 이 정도의 시행착오를 겪는 것은 교민사회 수준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불편한 마음이 생기는 풍경은 따로 있습니다. 누구도 쉽게 봉사할 수 없는 어려운 시기를 기회로 삼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진 상황을 기다리는 분들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적을 때 조용히 당선, 추대, 또는 연임되길 바라지요. 선거를 피해 경제적, 정신적 비용도 줄이구요. 과거, 선거 때문에 한인사회가 시끄러웠던 것이 재발되지 않기 위해 그러는 것이라고 이해됩니다. 그러나 회원이 직접 뽑지 않은 회장이라면, 선거를 거쳐 당선된 경우보다 더욱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헌신해야 합니다. 본인 스스로 된 것으로 오산하면 회원들의 관심과 더욱 멀어질 뿐입니다. 또 한 가지 불편한 점은, 참신한 젊은 인재가 별똥별처럼 사라지는 광경입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에너지로 단체에 영입되어 활동하다가도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스스로 떠나기도 하고 제명되기도 합니다. 이런 갑작스런 인사의 변화는 그 단체가 얼마나 영속성이 부족하고, 존재 자체의 위기감도 존재하는지 보여줍니다. 때로는 사람이 없다고 걱정하는 리더들이 있습니다. 주제넘게 한 말씀 올리자면 그 자리에서 내려와 보시기 바랍니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경험은 부족해도 좋은 사람들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좋은 인재가 사라진 이유는 기존 리더와 함께 가고 싶어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인들과 오랫동안 인터뷰를 해보면서 느낀 점은 정말 대단한 인재가 홍콩 한인사회에 많이 숨어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쓴 소리를 달갑지 않게 여기실 분도 계실 줄 압니다. 그 동안 신문사를 운영하면서 광고 보이콧이나 여러 경험을 겪기도 했습니다. 수요저널은 한인 사회를 바로 보길 바라는 독자들과 커뮤니티를 위해 계속 정진할 것입니다. 연말연시 역대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한인 사회를 위해 각기 단체에서 좋은 인재를 찾아야 할 시기입니다. 동문, 문화체육, 종교 뿐만 아니라 작은 동우회까지도 리더 선출이 쉽지 않은 시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찾고, 권면하고, 새로운 인재를 발굴해 그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내년에도, 코로나19가 끝날 때까지 묵묵히 수고할 미래의 여러 단체장님들에게 미리 박수를 보냅니다. 글 손정호 편집장
-
“먹는 것도 운동이다?” 우리 몸도 튼튼한 집 짓는 것 처럼 잘 가꿔야우리는 현재 평균수명을 생각할 때, 이제 100세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리 100세 또는 120세까지 수명이 연장된다고 해도 오래된 지병과 각가지 통증으로 하루 하루를 아프고 괴로운 삶을 오랫동안 산다고 하면 이세상에서 그것보다 고통스러운 삶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집의 뼈대를 아무리 튼튼하게 세웠다고 해도 집을 감싸고 있는 지붕과 벽돌들의 칠이 벗겨지고 녹이 슬고 부서져서 외부로부터의 충격을 막아주지 못한다면 그러한 집은 뼈대를 지지할 수 없어서 결국 뼈대도 꺾일 뿐 아니라 추후에는 작은 충격에도 견디지 못하고 집까지 와르르 무너질 것입니다. 주위에 건강한 삶을 누리고 계시는 70~ 80대 분들을 보면 대다수가 40대에서 60대 사이에는 당뇨병이나 허리디스크 및 관절염 등 지병을 앓고 사시다가 확고한 결심으로 운동을 시작한 분들이십니다. 심지어 그 분들 중에는 보디빌딩을 나이 들어 시작하셔서 선수로까지 활동 중이신 분들도 있는 것을 봅니다. 즉, 이러한 분들은 자신의 몸의 이상 신호를 감지하여 자신의 집의 뼈대에 심각한 영향력이 미칠 것으로 판단하고 새롭고 튼튼한 지붕과 벽돌로 지혜롭게 Renovation 을 한 예이기도 하죠.‘이러한 Renovation 이 어떻게 가능하였나? ‘ 를 잠시 생각해보면 우리의 몸은 모든 관절마다 ‘Stabilizer 근육’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근육을 단련하지 않으면 젊은 사람이든 노인이든 일상 생활을 할 때 또는 운동을 할 때에도 관절을 다친다 거나 여러 디스크 관련 부상의 위험에 항상 노출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성장호르몬’이라는 것이 필요한데 이 호르몬은 사춘기와 젊었을 때만 생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이 노화가 진행되고 100세가 넘을지라도 근육을 단련할 때만 이 성장호르몬이 다량 생성이 가능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조물주의 완벽한 신체창조의 신비성을 통해, 근력운동으로 근육량을 계속 유지하고 몸을 계속 자극한다면 중년과 노년의 시기가 온다고 하더라도 청년때처럼 활발한 활동과 젊었을 때 취미로 하던 여러 유산소운동들도 부상 없이 계속 할 수 있어 더 건강한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요즘 유명 헬스관련 연예인이 한 말 중에 “먹는 것도 운동이다” 라는 말이 휘트니스 업계에서는 유행어처럼 돌고 있습니다. 그 말의 의미는 근력운동에 있어서 식단도 매우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위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집을 우리의 몸 즉 근육으로 표현하자면, 이 집을 짓기 위해 우리는 벽돌을 하나 하나 쌓아 올려야 할 것입니다. 이 벽돌을 우리는 단백질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단백질을 쌓기 위해서는 시멘트를 벽돌 사이 사이에 발라주어야 하는데 이것을 우리는 지방이라고 하고, 이 일들을 하기 위해서 벽돌을 날라야 하는 인부가 필요한데 이를 우리는 탄수화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탄수화물이 단백질을 빨리 운반해야 할 트럭이 필요할 때가 있으니 이 트럭을 비타민이라고 하고, 이 트럭이 잘 달릴 수 있는 도로를 물이라고 할 때 트럭 안에 있는 네이게이션 시스템 즉, 단백질을 어느 쪽으로 빨리 먼저 보내줘야 할지를 나타내 주는 역할을 무기질이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필수 5대 영양소(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비타민, 무기질)들과 물은 근육생성을 위해 각각 너무 중요한 역할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운동강도와 각 개인의 몸무게에 비례한 필수 5대 영양소 섭취비율로 각자가 원하는 스타일의 몸매를 만들기 위해 맞춤형P.T. 프로그램을 짜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위의 몇몇 안타까운 케이스들을 듣다보면, 다이어트를 위해 저탄고지로 알려져있는 ‘삼겹살 다이어트’ 또는 ‘단백질 다이어트’ 등 한 영양소에 너무 치우친 다이어트를 하면서 살이 빠졌다는 경험담을 듣습니다. 살이 빠졌다고 해서 신체 내에 근육량이 증가한 것은 아닙니다. 근력운동을 안하시고 마른 체형을 가진 분들도 체지방률이 초과하신 분들이 많은 원인도, 이러한 불균형적인 다이어트는 면역력의 저하 및 다양한 질병에 노출되는 것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근육량을 감소시키고 노화진행을 촉진시키기 때문입니다.세상의 많은 의사들도 약과 수술은 그저 우리의 생명을 조금 더 연장시킬 뿐이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궁극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근육이 줄고 그 자리에 지방이 채워지면 체중에는 변화가 없어 근감소를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근육량이 줄면 내적으로는 면역력 저하와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등 대사증후군 및 암의 위험과 뼈를 단단히 지탱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여러 디스크와 관절염에 노출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모든 의사들 또한 재활과 노년의 건강을 위해 근력운동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하나 같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