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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카프(Alex Karp)는 2026년 1월 다보스(Davos) 연단에서 자신의 모교를 조롱했다. “나를 예로 들자면 엘리트 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그 전공은 앞으로 팔기 어려울 것이다.” 옆에 앉은 블랙록(BlackRock)의 래리 핑크(Larry Fink) 회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 최대 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Palantir)의 창업자가 인문학의 사형을 선고한 장면이었다. 카프는 해버퍼드 대학(Haverford College)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Stanford) 로스쿨을 거쳐 독일에서 신고전 사회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다. 장면은 인상적이나, 논리는 빈약하다.
숫자를 살펴보자. 2026년 3월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발표한 전공별 실업률은 충격적이다. 컴퓨터공학 전공자 실업률 7.8%, 컴퓨터사이언스 전공자는 6.1%. “취업 안 되는 전공”의 대명사였던 미술사는 3.0%였다. 두 배가 넘는 격차다. 영국 테크 채용 공고는 2019년 이후 절반이 사라졌고, 스탠퍼드 디지털경제연구소는 22-25세 미국 소프트웨어 개발자 고용이 1년 사이 20% 감소했다고 보고했다.
“코딩을 배워라(Learn to Code).” 지난 20년 세계가 외운 주문이다. 한국 부모들은 의대나 공대 전공을 시키기 위해 아이를 이과반으로 밀어넣었고, 대학은 인문대 정원을 잘라냈다. 그 모범답안이 지금 가장 먼저 무너지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희소하면 비싸다. 경제학의 출발이다. 지난 30년 동안 코딩과 정량분석이 고임금이었던 까닭은 하나뿐이다. 드물었기 때문이다. 생성형 AI는 그 희소성을 허물고 있다. 이제 전 세계 코드의 90%를 AI가 만들어낸다. 카네기멜런(Carnegie Mellon) 경영대 제프 갈락(Jeff Galak) 교수의 진단은 냉정하다. “시니어 한 명이 AI로 두세 배를 해내면 주니어가 설 자리가 없다.” 사다리의 맨 아랫칸이 잘려 나간 것이다.
필자는 이 현상을 희소성의 역전이라 부른다. 어제 “흔한 사유, 드문 코딩”이던 질서가 오늘은 “흔한 코딩, 드문 사유”로 뒤집혔다. 맥킨지(McKinsey)가 2026년 채용 기준을 ‘AI와 협업하는 능력’으로 바꾸고 그간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던 인문학 전공자를 다시 본다고 공식화한 것은 각성이 아니라 계산이다. 기업은 철들지 않는다. 값을 매길 뿐이다.
그래서 카프는 틀렸다. 팔란티어의 간판 직군은 전진 배치 엔지니어(Forward Deployed Engineer, FDE)다. 고객사 현장에 투입되어 기술 플랫폼과 현실 문제 사이를 번역하고 며칠 단위로 해법을 고안해낸다. 그들의 가치는 코드에 있지 않다. 고객의 언어를 기술의 언어로 바꾸고 기술의 언어를 경영의 언어로 옮기는 데 있다. 한 소프트웨어 평론가의 정리가 정곡을 찌른다. “AI가 일상적 개발을 자동화할수록 가장 값비싼 자질은 문제 자체에 대한 이해(problem knowledge)가 된다.” 최근 영미 로펌들은 바로 이 FDE 모델을 변호사의 새 업무 방식으로 고민하고 있다. 카프의 회사가 가장 높은 값을 치르는 능력이 인문학적 역량이라는 사실을 정작 본인은 시인하지 않는다. 시끄럽게 죽었다고 선언되는 그 자리에서 인문학의 가치는 조용히 오르고 있다.
법정으로 가보자. 본인의 분야에서 경력 20년 된 증인이 단정한 양복에 확신에 찬 목소리로 증언한다. 재판부가 귀를 기울인다. 그때 반대신문이 시작된다. 날카롭게 진실을 벗겨내는 질문이 더해지자 증인의 전제가 흔들리고 기억이 어긋나며 논리에 금이 간다. 훌륭한 변호사의 무기는 답이 아니라 의심할 줄 아는 질문이다. 영미 법정이 300년 동안 변호사들을 훈련시켜온 방법이다. 명예훼손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홍콩의 대다수 민사 소송과 국제중재에는 배심원이 없다. 단 한 명의 판사 혹은 중재판정부를 설득해야 한다. 감정을 흔드는 웅변은 통하지 않는다. 오직 전제를 허무는 질문만이 판결을 움직인다.
AI는 세상에서 가장 박식한 증인이다. 어떤 주제에 관해서도 주저 없이 진술한다. 그러나 환각(hallucination)과 편향이 존재하며 맥락의 미묘함을 놓치곤 한다. 이때 인간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더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더 잘 의심하는 것이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는 근사한 이름도 법정의 언어로 옮기면 단순해진다. 반대 신문의 설계다. 2025년 미국 의학 논문 한 편은 심심한 결론에 도달했다. AI와의 대화에서 점진적으로 심화되는 질문 논리를 구사한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유의미하게 높은 성과를 냈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다. 법정이 수백 년 동안 반복해 온 방법론이다. 실험실이 뒤늦게 확인했을 뿐이다.
인문학이라고 다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카프의 말 속에도 한 줌의 진실은 있다. AI가 가장 먼저 밀어내는 것은 역설적으로 지식을 외우고 요약하는 형태의 인문학이다. 독서 감상문, 연대기식 역사, 개괄식 철학사는 이미 1초에 생성된다. 살아남는 인문학은 다른 종(種)이다. 전제를 의심하는 인문학. 맥락을 건너뛰어 19세기의 법리를 21세기의 AI 규제로 옮겨 읽는 유추의 인문학.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을 가르는 판단의 인문학. 미국 대학이 liberal arts라는 이름으로 길러 온 바로 그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다. 요컨대 기술을 심문할 줄 아는 인문학이다. 카프가 장례식을 치른 것은 박제된 교양의 인문학이다. 그가 봉급을 지불하는 것은 살아 있는 비판적 사고의 인문학이다.
한국으로 시선을 돌리면 풍경이 무겁다. 아이들은 여전히 이과반에 줄을 서고 부모는 코딩 학원 수강료를 감내한다. 대학의 인문대는 해마다 정원을 잃는다. 그러나 바로 그 모범답안이 가장 먼저 AI에 의해 상품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외면한다. 10년 전 모두가 영어를 배웠듯 이제 모두가 AI와 데이터의 기본을 알아야 한다. 여기까지는 맞다. 그러나 차별화는 그 위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 위의 언어는 인문학이다.
학부모와 교실이 바꿔야 할 것은 전공이 아니다. 질문이다. 우리 아이가 무엇을 잘 외우는가에서 우리 아이가 무엇을 의심할 줄 아는가로. AI 시대의 승부는 여기서 갈린다. 희소성은 이미 자리를 바꿨고, 남은 것은 우리가 언제 그 사실을 받아들이느냐다. AI는 갈수록 말이 많아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답이 아니라 더 좋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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