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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찬탱의 아침은 질문이 아닌 전제로 시작된다. 합석은 선택이 아니다. 좁은 원형 테이블. 모르는 사람의 팔꿈치가 가슴을 스칠 듯 가깝다. 메뉴판을 펴기도 전에 머리 위로 목소리가 꽂힌다.
"What you want?"
주어와 예의를 발라내고 뼈만 남은 영어. 주인장의 손톱 밑에는 검은 때가 끼어 있고 앞치마는 기름에 절어 뻣뻣하다. 그는 대답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재촉하고 있다. 주문, 서빙, 계산, 치우기. 이 4박자의 리듬이 깨지는 것을 그는 용납하지 않는다. 나는 반사적으로 메뉴판 가장 위의 것을 가리킨다.
광동어는 의미 없는 타악기 소리 같다. 높고 낮은 성조가 쇠구슬처럼 쏟아져 내 귀를 때리고 바닥으로 흩어진다. 웃음인지 싸움인지 구분되지 않는 고성들이 허공에서 엉킨다. 나는 그 소음의 한가운데 앉아 입을 다문다.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건 투명인간이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주인장의 날카로운 파열음이 들린다.
"가단(加蛋)!"
계란 추가. 그 짧은 외침에 주방에선 기름 끓는 소리가, 홀에서는 접시가 카운터에 부딪히는 달그락거림이 화답한다. 소란스러움 속에 정교한 톱니바퀴가 돈다. 누구도 서로를 쳐다보지 않지만 누구도 부딪히지 않는다.
창가 쪽, 뼈마디 굵은 노인이 신문을 펼친다.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기도 전이다.
"보로바오, 나이차."
주인장은 대꾸 없이 주문서에 볼펜을 휘갈긴다. 그는 고개를 들지 않고 주인장도 그를 보지 않는다. 이십 년은 족히 넘었을 반복. 확인도 감사도 필요 없는 관계. 그 노인은 그저 그곳에 놓인 오래된 가구처럼 자연스럽다.
내 앞에 붉은 찻물이 놓인다. 홍콩식 밀크티. 혀끝을 조이는 떫은 홍차와 끈적한 연유가 한 잔에 담겼다.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두 액체가 좁은 잔 속에서 억지로 어깨를 끼워 맞추고 있다. 우아한 조화라기보다 치열한 엉겨 붙음이다. 목구멍으로 넘기는 순간 혀를 조이는 떫은맛이 지나가고 그 뒤를 묵직한 단맛이 빈틈없이 채운다.
옆자리 관광객이 메뉴판을 들고 머뭇거린다. 그 틈을 타 나는 허공에 대고 짧게 뱉는다.
"싸이도시 음거이."
홍콩식 프렌치 토스트. 어설픈 성조가 소음 속에 섞인다. 주인장의 볼펜 끝은 멈춤 없이 매끄럽게 미끄러진다. 그는 내 얼굴을 보지 않는다. 발음을 교정해주지도 다시 묻지도 않는다. 그저 주문을 처리하고 돌아선다.
등받이에 꼿꼿하게 세웠던 허리가 그제야 풀어진다. 내 존재감은 딱 그 주문서 한 장의 두께다. 얇고, 구겨지기 쉽고, 언제든 폐기될 수 있는 종이 한 장. 그 하찮음 덕분에 나는 비로소 의자에 엉덩이를 깊숙이 파묻는다. 누구도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뻣뻣한 목덜미를 부드럽게 주무른다.
창밖으로 웃통을 벗은 남자가 수레를 끈다. 바퀴 구르는 소리가 식당 안까지 진동을 전한다. 땀에 젖은 등, 햇볕에 그을린 목덜미들이 아스팔트 위를 구른다. 그 진동 위에서 나는 찻잔을 든다. 달고 떫은 액체가 위장으로 흘러든다.
주머니 속 전화기가 요동친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 한국말이 귓가를 흔든다. "휴가는 잘 보내고 계시죠?" 안부를 묻는 한국에 있는 변호사의 목소리. 이곳의 억센 소음 속에서 그것은 지나치게 둥글고 무르다. 연유처럼 끈적하게 고막에 늘어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서둘러 대답하고 전화를 끊는다. 검은 화면 위로 내 얼굴이 비친다. 입을 다문 채 눈을 내리깐, 이방인의 얼굴이다.
잔을 비운다. 바닥에 남은 얼음이 짤그랑 소리를 낸다. 이십 년 뒤, 내가 저 창가의 노인처럼 될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서툰 성조를 쓸 것이고 주인장은 늘 그랬듯 내 얼굴을 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완벽하게 섞이지 않아도. 떫은맛과 단맛이 각자의 성질을 세운 채 한 잔에 담기듯 나도 이 틈새에 끼어 있을 뿐이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플라스틱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날카롭다. 내가 덥힌 온기가 식기도 전에 누군가 그 자리에 엉덩이를 들이민다. 문을 밀고 나서자 끈적한 습기가 얼굴을 덮친다. 트램이 덩커덩 거리며 지나간다. 나는 인파 속으로 걸음을 옮긴다. 거대한 소음이 다시 나를 에워싼다. 나는 그 시끄러운 소용돌이 속으로 굴러간다. 바닥에 흩어지는 수만 개의 쇠구슬 중 하나가 되어, 섞이지 않은 채로 매끄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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