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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흥미롭게 읽은 책이 있다. 영국 저널리스트이자 국제 정치 전문 기자 출신 팀 먀살이 쓴 ‘지리의 힘’이다. 각 국가는 지리의 영향을 받아 발전이 이루어지거나 반대로 성장의 제한을 받아왔다는 내용이 골자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 된 배경에는 지리적 축복이 있었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양쪽에 두고 있어 완벽한 안보 환경 속에서 성장이 가능했던 것이다. 나는 이 책에 담겨 있지 않은 홍콩의 지정학적 조건을 생각해 보았다. 홍콩의 발전에 ‘지리의 힘’은 어떻게 작용했을까?
영국에게는 천혜의 지리적 조건을 갖춘 홍콩섬
모두 알고 있듯이 개항 전 홍콩은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다. 그리고 난징조약을 통해 영국이 홍콩을 할양 받은 후, 이 촌동네는 급격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럼 왜 홍콩이었을까?
국내에서 모든 물자 조달이 가능한 데다가 풍부한 내수 시장을 보유한 청나라. 이는 청나라 조정으로 하여금 해외 무역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했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와 서강 세력들이 중국에 눈독을 들이며 개항의 압박을 가해 왔다. 이에 청나라는 마지 못해 광저우 한 곳 만을 국제 무역항으로 지정한다.
하지만 영국 등 서구 세력에게는 성이 차지 않았다. 거기다 광저우는 커다란 배들이 드나들기에 불편한 항구였다. 영국은 중국의 다른 곳들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이들의 관심을 끄는 곳을 찾아낸다. 인구는 얼마되지 않고 중앙 정부로부터 뚝 떨어져 있어 거의 행정력이 미치치 못하는 지역이었다. 바로 홍콩섬이다. 영국은 국가의 관심과 보호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홍콩섬이 밀수품과 마약 등을 숨겨 놓기에 안성맞춤이라 판단했다. 또한 구룡반도와의 사이에 수심도 깊어 큰 배들이 다니기에도 적합했다. 홍콩섬은 이렇게 점차 영국의 무역 거점이 되어 갔다.
태풍을 막아주는 주변국, 지진대에서도 벗어나
자연재해 관련하여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국제 뉴스는 대만과 필리핀을 강타하는 태풍 관련 소식이다. 이에 비해 홍콩이 태풍 피해로 막대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뉴스는 접하기 힘들다. 남태평양에서 북상하는 태풍들은 1차적으로 필리핀이나 대만에서 걸러진다. 홍콩은 이 두 나라를 방패 삼아 숨어 있는 형국이다. 이들을 통과한 태풍이 홍콩까지 온다 해도 세력은 이미 상당 부분 약해져 있다.
그럼 지진은 어떨까. 지진 피해로 단골 등장하는 나라는 일본과 대만이다. 이들 두 나라는 지진대에 걸쳐져 있다. 이에 비해 홍콩에 20년 이상 거주 중인 필자는 단 한 번도 지진을 겪어 보지 못했다.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잘 감지할 수 없는 미세한 지진이 있긴 했지만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홍콩은 다행스럽게도 지진판 경계에서 600km나 멀리 벗어나 있다.
그럼 우리나라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홍수 피해는? 홍수는 주로 하천이 있는 곳에서 강물이 범람해 생기거나 지대가 낮아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홍콩에는 강이 없어 하천 범람 피해 소식 또한 접하기 힘들다.
홍콩이 세게 제일 장수 도시가 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로 자연재해가 없다는 것을 꼽은 분석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홍콩은 지리적 축복이 있다.
싱가포르과의 비교 우위 중 한몫하는 지리적 힘
홍콩과 싱가포르는 여러 측면에서 라이벌 구도를 이룬다. 땅덩어리가 좁고 자원도 없어 인력의 힘으로 경제가 지탱되고 있다. 특히 금융이 강하다는 특징도 두 곳이 지닌 장점이다. 그런데 2020년 코로나 사태는 경쟁 구도에 균열을 만들었다. 당시 홍콩의 강력한 방역 조치로 금융업체 등 많은 외국계 회사가 홍콩을 떠나 싱가포르로 옮겼다.
코로나 사태가 지난 몇 년 후의 지금은 상황이 반대가 되었다. 홍콩을 떠났던 기업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우리 학원의 중국어 저녁반에 수강 중인 한 금융인은 ‘싱가포르로 옮긴 회사들이 지금 엄청 후회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 막상 가 보니 제도와 환경 등에 있어 아쉬움이 많다는 것이다.
홍콩이 싱가포르보다 경제적 우위에 있는 주요 요인 중 하나는 중국과의 연계성이다. 홍콩은 중국 본토와 붙어 있어 이점을 누리고 있다. 무역, 물류, 기술 교류 등 경제 통합의 영역도 점차 넓어지는 추세다. 홍콩을 포함한 대만구 경제권은 세계 10위권으로 그 규모가 막대하다. 홍콩이 중국화된다며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이를 통해 얻는 경제적 이점도 있다. 이에 비해 싱가포르는 지역적으로 불리하다. 말레이지아 남부 끝단에 위치한 싱가포르는 주요 경제국들과는 뚝 떨어져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경제 단위와 활발히 교류가 이루어지는 홍콩과는 대조되는 환경에 놓여 있다.
그럼 지리적 불리함은?
위에서 보면 홍콩의 지리적 위치는 경제적, 자연적 측면에서 이점을 누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불리함도 없지는 않다. 이웃해 있는 선전 등 광동성 도시들은 비용 측면에서 경쟁적 우위를 바탕으로 홍콩 소비 시장에 타격을 주고 있다. 최근 많은 홍콩인들이 고속철로 13분 거리의 선전이나 인근 도시로 건너 가 식도락, 쇼핑, 의료 등 저렴하고 질 좋은 서비스를 즐기고 있다. 북상하는 고객들의 발걸음을 붙잡기 위해 오늘도 홍콩의 서비스업은 사투 중이다.
덥고 습한 홍콩의 날씨가 불만스러운가. 하지만 유리하게 작용한 ‘지리의 힘’ 덕분에 홍콩은 수혜를 누리며 발전해 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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