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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文化 트레일 - 溫故知新 : 北京의 도시계획

기사입력 2008.08.13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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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올림픽이 개최되는 北京시를 보면 옛것을 살리고 새로운 것을 조화시킨 도시계획의 溫故知新을 느끼게 된다. ] 아시아에서 중국고대의 황성배치도에 따라 건물을 짓고 그것이 지금까지 제대로 파손되지 않고 내려오는 도시는 北京과 우리의 서울 정도로 알려져 있다. 북서쪽으로 산을 뒤로 하고 거대한 평원에 동서남북의 선을 그어 과거 周 나라의 궁궐배치 규정대로 도시계획이 이루어져 있다. 남북 중추선에 중요한 궐문과 궁궐을 배치한다. 남쪽으로 우리의 남대문 같은 정양문이 있고 북쪽으로 일직선으로 나가면 우리의 광화문 같은 천안문이 나온다. 서울의 경우 북악과 남산이 마주보고 있어 남북 중추선이 짧아 남대문이 남서로 비껴나 있지만 北京은 우리의 남산 같은 것이 없어 정양문이 정남으로 일직선에 위치한다. 천안문을 지나 몇 개의 문을 거치면 자금성이 버티고 있다. 자금성은 서울의 경복궁을 국가 규모에 맞추어 확대해 놓은 감이 있다. 자금성의 동쪽에 역대 군왕을 모신 종묘가 있고 그 서쪽에 농업관련 여러神을 모신 사직단이 있다. 우리나라도 경복궁 동쪽에 종묘가 있고 서쪽에 사직단(지금의 사직공원)이 있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자금성 뒤쪽에 景山이 있다. 평야인 北京은 背山이 없어 인공으로 山을 만든것이 景山이다. 서울은 북악이 자연적으로 背山 역할을 하고 있다. 자금성 밖으로는 宮을 보호하는 양반(지배층)이 사는 내성(동성구, 서성구) 그리고 밖으로 일반 백성이 살았다. 서울의 경우 경복궁 인근에 동서로 안국동, 효자동 등이 이러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서울의 4대문 밖으로 일반 백성이 살고 있었다. 베이징 전체가 성벽으로 둘러싸여 과거 4대문 안의 서울처럼 하나의 성곽도시였다. 이러한 베이징성이 明의 영락황제 때 완성되어 한번도 파괴되지 않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1860년 제2차 아편전쟁시 영불연합군은 베이징성을 공격코저 하였다. 당시 함풍제는 열하(지금의 승덕)로 피신한 후였다. 北京성곽위에 포를 설치하고 자금성을 겨누고 있었다. 대포 몇 발로 목조 건축물 자금성이 잿더미로 될 수 있는 위기였다. 당시 함풍황제의 동생이었던 공친왕의 기지로 위기를 벗어났다. 그 후 40년 후에 의화단 난으로 8개국 연합군이 진격해왔을 때는 광서황제와 서태후가 자금성을 버리고 西安으로 달아났다. 8개국 연합군이 자금성 안에 사령부를 두었다. 국공내전 당시에는 北京은 국민당이 지배하고 있었다. 베이징을 포위한 공산군과 국민당군의 합의로 총 한번 안 쏘고 베이징성은 인도되었다. 중국은 베이징의 남북 중추선의 북단에 올림픽시설을 만들었다. 陸上의 경기중심 메인스타디움과 水上의 경기중심 수영장을 좌우로 건설하였다. 그리고 장안로 동서로는 상업(무역)중심지와 금융의 중심지를 각각 완성시킨다. 동쪽의 무역중심(國貿)과 서쪽의 금융가(월가)가 그것이다. 인민대회당 뒤쪽에는 하늘을 떠오르는 거대한 새의 알(국가대극장)이 놓여 있다. 새집의 의미인 니아오차오(鳥巢)는 메인스타디움이지만 알은 남쪽에 낳았다. 알이 부화되면 동서남북으로 옛것과 새것이 질서 있게 정리된 베이징을 안고 세계로 비상하게 될 것이다. 올림픽 이후 北京의 새로운 모습이 기대된다. 加油! 김치 13억 중국인의 염원인 베이징올림픽이 개막되었다. 올림픽이 개최되는 금년은 과거 국민당 정부에 의해 北平으로 버림받은 이 곳이 다시 수도(北京)로 된지 거의 60년이 되는 해이다. 그리고 몽골의 영웅 징기스칸의 손자 쿠빌라이 칸이 이 지역에 수도를 옮기고 “세계의 서울”이라는 의미의 大都를 건설한 후 735년 만이다. 北京은 짧은 기간이나마 세계 80여개 국의 국가 원수가 찾아오는 이름 그대로 21세기의 大都가 된다. 8월의 北京은 정말 덥다. 그냥 더운 것이 아니고 습도가 높아 찌는 듯한 더위이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이러한 더위 속에도 모든 선수들이 조국을 위해 열심히 뛰지 않으면 안 된다. 선수들을 볼 때 안쓰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가 없다. 北京올림픽 선수촌에서는 선수들을 위해 준비된 스태미나식품이 있다. 北京의 8월 찜통더위를 날려 보낼 식품이 바로 “김치”다. 지금은 본고장인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도 맛있는 김치가 많이 생산되어 오히려 한국에 역수출(2006년도 1억불 상당) 할 정도다. 세계 어디를 가든 김치공장이 있고 그곳에는 반드시 우리 민족이 있다. 우리민족이 세계인에 기여한 식품 중의 하나가 김치가 아닌가 생각된다. 중국의 동북3성에 주로 거주하는 동포(조선족)들이 김치를 담궈 이웃과 나누어 먹는 등 중국에 김치를 보급하였다. 그리고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 우리 민족은 현지에서도 김치를 만들어 이웃과 나누어 먹고, 어려움을 극복하였다. 해외거주 700만 한민족은 김치의 전도사이다. 김치는 올림픽의 공인식품이다. 1996년 미국 애틀란타 올림픽 때 김치가 처음으로 선수촌의 정식메뉴로 등장하였다. 미국에서도 덥기로 유명한 애틀란타 시의 선수촌에서 김치의 인기는 대단하였다. 많은 나라들이 김치의 신비성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왔다. 사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한국의 황영조가 마라톤에서 우승한 후, 그 비밀이 김치에 있다고 크게 알려졌다.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에서 한국인 손기정의 우승으로 마라톤 같은 끈기가 필요한 운동에 김치를 늘 먹는 한국선수들이 특출하다는 평이 나 있었다. 한국은 국토가 작고 인구도 적지만 스포츠에서 항상 상위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비법이 \"김치파워\"에 있다고 믿었다. 김치는 沈菜라고도 불렸다. 야채를 소금에 오래 절여 발효시킨 식품이다. 처음에는 고춧가루가 없었지만 17세기 경 멕시코 원산지인 고추가 소개되면서 지금과 같은 매운 김치가 만들어졌다. 泡菜라고 부르고 있는 중국 내에서의 소비는 매년 증대되고 있다. 8월의 北京올릭픽, 선수들이 수년간 훈련된 기량을 펼쳐 자신의 기록을 올리고 싶을 것이다. 올림픽 선수촌에 잘 만들어져 제공되고 있는 김치를 충분히 먹는다면 北京의 8월 더위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의 기록이 갱신될 것으로 생각된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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