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홍콩의 역대급 재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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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홍콩의 역대급 재난들

얼마 전 한국의 이태원에서 발생한 사고 소식은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였다. 

한국뿐만 아니라 홍콩에서도 이 소식을 주요 뉴스로 비중 있게 소개하였다. 

 

홍콩 역시 비슷한 인재가 발생했었고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역대급 재난들도 있었다. 

오늘은 홍콩의 주요 대형 사고들을 소개한다.    


1. 역대 최악의 화마, 해피 밸리 경마장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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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홍콩인들이 즐겨 찾는 해피 밸리의 경마장에는 아픈 역사가 새겨져 있다. 

영국인들은 자국에서 사랑받는 경마 경기를 그들의 식민지 홍콩에서 즐기기 위해 해피 밸리에 경마장을 건설하였다. 

1918년 2월 26일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곳을 찾은 관중들은 경마를 관람하고 있었다.


이때 관람객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관중석이 무너지며 여러 사람들이 압사당하거나 부상당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그런데 더 큰 참사는 이때부터였다. 당시 관람석 아래에는 식당들이 있었다. 무너진 관중석의 목판에 불이 붙은 것이다. 

이는 곳 순식간의 대형 화재로 번지게 된다. 수많은 관중들이 대피하지 못해 큰 인명 피해를 입었는데, 사망자만 600명이 넘었다.


당시의 참사를 계기로 해피 밸리에는 오늘날의 현대식 경마장이 세워진다. 보다 안전하게 경기를 즐기기 위한 스포츠 시설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2. 156명의 목숨을 앗아간 6.18 폭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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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지류가 없는 홍콩에서 폭우나 홍수로 인한 피해 소식은 접하기 힘들다. 하지만 수재가 가져온 대형 피해가 없지는 않았다. 

1972년 6월 16일부터 18일까지 홍콩에는 역대급 폭우가 쏟아졌다. 3일간 내린 비의 강수량은 652.3밀리미터로 기록되어 있다.


이 폭우로 구룡 쿤통의 추이핑(Tsui Ping)가의 목재촌과 홍콩섬 미드 레벨의 육워 빌딩이 흙더미에 덮히고 만다. 

쿤통 추이핑가의 경우 소방국, 홍콩 주둔 영국군, 홍콩 의용군 등이 총출동하여 구조 작업을 벌였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목숨을 건진 사람들도 있었지만 결국 사망자 71명, 부상자 52명의 비극으로 마무리되었다.


산 중턱에 위치한 미드 레벨도 같은 시기의 많은 비로 큰 피해를 입었다. 

파도와 같은 홁더미가 육워 빌딩을 무너뜨린 것이다. 

 

소방대원들은 구멍을 파고 구조 활동을 벌였는데, 대법관 헨리 데니스 등 많은 사람들을 구조해낸다. 

하지만 인명 피해 또한 적지 않아 총 67명의 사망자가 발생되었다. 

이 참사는 홍콩 역대 최악의 붕괴 사고로도 기록되어 있다.


3. 이태원 참사로 소환된 란콰이퐁 압사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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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태원에서 들려온 안타까운 소식은 홍콩인들로 하여금 20년 전 발생한 란콰이퐁(Lan Kwai Fong) 압사 사고를 떠올리게 했다. 

 

1992년 12월 31일 밤, 홍콩섬의 란콰이퐁은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인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당시 이곳을 찾은 인파는 약 2만명으로 추산되며 경찰 인력 118명도 이 일대를 순회 중이었다.  

 

참사는 해를 넘겨 1993년 1월 1일 이후에 발생한다. 카운트 다운이 끝나고 나서 인파가 해산되는 와중에 사람들이 밀리며 넘어지기 시작한다. 

발생 지점은 디아길라 스트리트와 워온 레인의 교차 지점 약 17미터 도로이다. 

약 150~200명이 5겹으로 쓰러져 인간 장벽을 이뤘다. 새해를 맞은 후 불과 7분 동안에 일어난 사고였다.


이 사고로 21명이 사망하고 63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패튼 홍콩 총독은 독립 조사위원회를 꾸려 사건의 진상 규명을 명령한다. 

이후 경찰 당국은 조사위원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주요 행사가 있는 곳에서는 인파 제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4. 기타 참사들 – 태풍, 동사, 교통사고, 인질극, 그리고 사스


홍콩의 대형 사고들 대부분은 사회 정비 시스템이 미비했던 20세기 초에 일어났다. 

홍콩에 매년 2, 3회 지나가는 8호 태풍만 하더라도 2000년대 들어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발생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1906년의 갑오 태풍은 최소 4천명에서 최대 1만 5천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갔다.


1995년 12월부터 1996년 2월까지 홍콩에는 역대급 한파가 닥쳤다. 이로 인해 150명이 동사했다. 

최저 온도가 영상 5~6도에 불과했지만 난방 시설이 부족한 홍콩의 경우 이는 한국의 영하 15~16에 해당한다. 

참고로 홍콩의 12~2월 연평균 기온은 14~20도이다.


가장 많은 사망자를 기록한 차량 교통사고는 2003년에 일어났다. 7월 10일, 265M이층버스가 튄문 고속도로의 고가 도로에서 추락했다. 

이 사고로 21명이 사망하고 20명이 중상을 입었다. 당시 사고는 중앙선을 침범한 트럭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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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기억하는 홍콩인들의 안타까운 사고 중 하나는 필리핀의 마닐라 인질극이다. 

얼마 전 파산 선고를 한 홍타이 여행사의 단체 관광객들에게 12년전 마닐라 여행은 끔찍한 악몽이었다. 

 

2010년 8월 23일, 마닐라 시내에서 홍타이사의 관광 버스에 무장을 한 괴한이 차에 오른다. 

전 엘리트 경찰 출신으로 자신의 해고에 대한 분노와 부당함을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표출한 것이다. 

 

결국 무고한 홍콩 여행객들이 인질로 잡혀 15명의 인질 중 8명이 목숨을 잃고 7명은 부상을 당했다. 

인질극을 펼친 범인은 저격수에 의한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2003년 사스는 299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다. 

사스의 교훈은 홍콩의 위생 상태를 개선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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