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군사 기지에서 슬럼가로, 다시 공원이 된 구룡성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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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권 원장의 생활칼럼] 군사 기지에서 슬럼가로, 다시 공원이 된 구룡성채

오늘은 파란만장한 세월의 파고를 거쳐 온 역사적 장소를 소개하려 한다. 까우룽시티(Kowloon City 九龍城)에 위치하였던 구룡성채(九龍城寨)다. 청나라 말, 군사적 용도로 지어진 성채가 훗날 범죄의 소굴이 되어 방치되다가 훗날 공원으로 탈바꿈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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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섬 할양 후 구룡 방어를 위해 세워진 구룡성채

1842년, 홍콩섬이 영국에 할양되면서 맞은편 구룡 지역에 주둔한 청나라군은 방어 태세를 강화한다. 또한 인근에서 활약하던 해적으로부터의 보호 등 군사적 목적으로 1847년에 지어진 곳이 구룡성채다. 

 

폭 792미터, 길이 429미터, 성벽의 높이 7미터의 요새가 만들어진 것이다. 동, 서, 남문에는 32대의 대포가 설치되었다. 

 

홍콩섬을 차지한 영국과 구룡성채가 지어진 구룡반도의 청나라는 이후 15년간 대치하며 불안한 평화를 유지한다. 그러다 1856년에 제 2차 아편전쟁이 터지면서 영국군은 바다를 건너 구룡성채를 공략한다. 

 

당시의 청나라군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였기에 구룡성채는 영국군에 의해 손쉽게 함락당하고만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구룡성채는 폐허가 되어 빈터만 남게 된다. 이때 많은 이민자들이 이곳으로 유입된다. 특히 유랑민들이 대거 몰려들자 영국 정부는 약 2천명의 불법 거주자를 강제 추방시키고자 행동에 나섰다. 

 

하지만 주민들은 격렬히 저항하였고 심지어 영국대사관에 방화를 저지르며 폭동을 일으킨다. 결국 영국 정부는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타협한다. 이후 구룡성채는 점점 범죄로 얼룩진 어둠의 소굴로 변해간다.


버려진 범죄의 소굴로 변한 구룡성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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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역사에서의 구룡성채는 소위 3불 간섭의 도시로 낙인찍힌다. 즉, 영국 정부, 홍콩 정부, 중국 정부가 모두 방치하여 버림받은 곳이 되었다. 가난한 이들이 몰리며 슬럼가를 형성하였고, 세계 어느 나라의 슬럼가가 그렇듯 범죄의 온상이 되었다. 안에서는 폭력, 마약, 매춘, 그리고 불법 공장과 의료 시술이 넘쳐났다. 

 

어둠의 역사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의 구룡성채는 6개 부문에 걸쳐 1위를 기록했다. 

 

1. 세계 최고 밀집 지역 (26제곱미터 안에 5만명 거주)

2. 홍콩 최대 불법 건축물 보유

3. 홍콩 최대 무면허 의사, 치과 밀집 (홍콩에서 치과 비용이 제일 싼 곳)

4. 홍콩 최대 무면허 식당, 공장 밀집 

5. 홍콩 최대 범죄 지역 (매춘, 도박, 마약)

6. 훗날 홍콩 최대 규모의 철거 공사 지역 (1987년)

 

필자가 유튜브 자료를 찾아보니 구룡성채에 관한 많은 영상들이 올라와 있었다. 내부는 좁은 길들이 거미줄처럼 엮여져 마치 미로 같았다. 8개의 주요 도로가 20~30여개의 교차로로 연결되어 있다. 이곳에 들어가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할 듯 했다. 

 

그러나 내부가 공포로 가득한 곳만은 아니었다. 위생 시설은 좋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고 조직폭력배들도 나름의 질서와 도의가 있었다. 

 

한때 경찰의 대대적 단속이 진행되기는 하였다. 1970년대, 3천명의 경찰이 투입되어 범죄의 소굴을 와해시키기 위한 행동에 나선다. 하지만 거센 반발에 부딪히게 되며 이후 범죄 집단의 규모가 경찰보다 커지는 결과까지 초래된다. 

 

구룡성채의 범죄는 영화의 좋은 소재가 된다. 2017년 개봉된 홍콩 영화 ‘추룡 (追龍, Chasing the Dragon, 2017)’이 대표적이다. 추룡은 용을 쫓는다는 뜻인데 유덕화와 견자단이 주연으로 출연하였다. 유덕화는 경찰 반장으로, 견자단은 범죄 조직에 가담하는 밀입국자로 나온다. 이 영화는 CG를 통해 구룡성채의 모습을 되살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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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987년, 정부는 구룡성채의 철거를 발표한다. 이는 홍콩에서 진행된 가장 큰 철거 사업으로 기록된다. 1987년 시작된 철거는 1, 2차 철거 및 이주 사업을 거쳐 5년 후인 1992년에서야 완전히 마무리된다.


지금은 공원의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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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구룡성채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1994년, 이곳이 완전히 철거된 후 같은 자리에는 공원이 들어선다. 

 

바로 구룡채성 공원이다 (구룡성채는 예로부터 구룡채성이라고도 불리웠는데 공원 이름은 구룡채성으로 지어졌다). 

 

이 공원은 청나라 초기의 정원 건축 양식으로 설계되었다. 1993년 국제원예박람회에서 우수 설계상을 받았다. 내부는 크게 2곳, 그 안에서 다시 8곳으로 나뉘어진다. 

 

공원 건립 시에 대량의 유물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역사적 유물은 현장에 보존되어 방문객을 맞이한다. 아울러 곳곳에 전람실을 배치하여 구룡성채의 옛날 모습을 재현한 모형과 당시의 사진도 둘러볼 수 있다. 

 

지금은 공원으로 바뀌었지만 예전의 역사를 간직한 채 후세 사람들에게 구룡성채의 옛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군사적 요새로 지어진 후 범죄의 소굴로 악명을 떨치다가 공원으로 탈바꿈한 구룡성채. 홍콩에서 이렇게 파란만장한 역사를 거쳐간 곳이 또 있을까 싶다. 구룡성채를 배경으로 한 영화 ‘추룡’이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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