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의 숫자,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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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해린

 

36.5도의 체온에서 사람은 최적의 건강한 상태를 유지한다. 체온이 1도만 내려가도 몸의 신진대사는 12%, 면역력은 30%, 그리고 체내 효소 활동은 무려 40%나 감소된다. 역으로 40도 이상의 온도로 넘어가면 정상 활동에 지장이 생기고 체내 효소가 변성 된다. 새내기 교사로서의 지난 1년 동안 이 36.5도의 적정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 나에게 가장 큰 도전 과제였다. 너무 차갑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은 사랑의 온도 36.5도에서 나는 아이들과 마음을 가장 잘 나누며 수분과 촉촉한 보드라움을 간직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서 나의 체온 36.5도가 아이들에게까지 온전히 전달되었을 때 이론적으로만 익혔던 진정한 “눈높이 학습”이 이루어진다는 소중한 깨달음을 얻은 한 해였다.

 

“어떤 선생님이 되고 싶으세요?” 교편을 잡은 뒤 꽤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선생님들이 한 번씩은 곱씹어 보아야 할 본인의 직업 정신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나도 그 질문을 받은 순간 만큼은 내가 나의 위치에서의 역할을 제대로 잘 소화하고 있나, 놓치고 있거나 미흡한 부분은 없나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다. 그 와중 범한 일련의 실수들은 대부분 내가 36.5도의 적정 체온을 유지하는 데 실패한 순간에 일어났다. 욕심이 지나쳐 전날 밤 너무 늦게까지 수업 준비를 하느라 기력을 뺀 나머지 정작 다음 날 아이들 앞에서는 준비한 자료의 반도 사용하지 못하였을 때 무기력한 나의 몸은 충분한 온기가 없는 상태였다.

 

반면에, 아이들 학습에 너무 열을 올린 나머지 학교 기타 행정이나 담임 업무를 소홀히 하였을 때 내 체온은 불필요할 정도로 올라가 있었다. 공직자로서 보직을 맡는다는 것은 내게 주어진 학교 내 여러가지 책무들을 기본적으로 잘 수행해 나가면서, 동시에 맡은 수업까지 잘 하는 것임을 학교 현장에서 몸으로 깨쳤다.  지난 4년 간 대학교 강의실 속 갈고 닦은 교육 이론 만으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교사로서의 자질들을 배운 것이다. 이처럼 교사가 안정적인 온도를 지키며 반 아이들 얼굴 하나하나를 마음에 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애써 준비한 콘텐츠의 건강한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사명은 혼자서 이루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나보다 더 안정적으로 이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던 몇몇 아이들 덕분에 내가 도리어 은혜를 입었다. 작년 여름 교사 임용이 되는 순간은 ‘막연히 꿈꿔왔던 교육자 장래희망을 이루었다.’는 안도의 해피 엔딩이 아니라, 길고 긴 자기 수련 여정의 출발선일 뿐이었다고 생각한다.

 

 

많은 교육학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아 입지가 굳혀진 “눈높이 학습법”을 이 적정  체온 36.5도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야기 해 본다. 우리 홍콩한국국제학교 영어 이머전 프로그램에서는 초등 저학년과 고학년생들이 3개의 수준별로 반을 나누어 영어 수업을 받는다. 이 교육과정의 장점은 자신의 수준과 비슷한 친구들과 같은 공간에서 학습하며 최적의 수업 효율과 학업에 대한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선생님을 만나서 그 진단을 바탕으로 제 눈높이에 딱 맡는 체계적인 학습자료를 꾸준히 건네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행운이라 생각한다. 나도 수준별 수업의 한 반을 맡게 되면서 필연적으로 “눈높이” 학습에 대해 고찰 할 기회가 주어졌고, 이는 ‘내가 배우고 싶은 입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법’을 고민하는 역지사지의 자세로 이어졌다.

 

홍콩한국국제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초등교육과정부터 한국어, 영어, 중국어 3개 언어를 정규 수업 과정으로 배우는데, 어린 아이들에게는 외국어 학습에 대한 부담감이 클 수도 있는 환경이다. 이에 대한 우려를 방지하고자 최대한 즐겁고 활동적인 학습법을 바탕으로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더 영어에 친숙해지고 자신감을 가지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내가 제공한 콘텐츠가 너무 어려우면 아이들이 시작하기도 전에 거부감을 들지는 않을지?  반대로 너무 쉬우면 금방 흥미를 잃을 까봐 신경을 곤두세워 가며 학습 자료를 꾸리던 차 어느 새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매의 눈으로 아이들의 학습 태도, 그리고 건네 준 학습 자료에 대한 반응과 성과를 하나하나 점검하다 보니 나도 전보다는 교수법에 더 체계가 잡힌 느낌이다. 설사 눈높이를 살짝 틀리게 맞추었을 때에도 나와 학생들이 공유하고 있는 36.5도의 체온을 바탕으로 금방 제 눈높이로 맞춰올 수 있었다.

 

 

“Good morning, class!” 매일 아침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을 반갑게 맞으며 습관적으로 건네는 말이다. 어느 새 우리 교실에서 하루가 열리는 소리가 되었다. 매일 밤 잠들기 전, 나와 같은 눈높이에서 미소 짓고 웃음을 건네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를 때면 내 입가는 미소로 번진다. 현재 내 삶의 소소하지만 최고로 보람되고 행복한 순간들이다. 이따금 찾아오던 슬럼프, 그리고 이어지는 인내와 극복의 하루하루는 지금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어느 새  더 안정적으로 유지하게 된 36.5도의 체온은 나를 교사로서 뿐만 아니라 더 따뜻한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는 행복한 한 인간으로 빚어 주고 있다. 갓 졸업한 교육학도였던 나에게 아늑한 학습 공간과 그 속 사랑의 온도계를 제공해 준 홍콩한국국제학교는, 지난 28년의 세월 속에서 수많은 선생님들이 함께 지켜온 훌륭한 재외국민학교이다. 앞으로도 이 곳에서의 시간들을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들로 온전히 채워가며 교사로서의 나의 초심, 36.5도의 온도를 학생들과 나누어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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